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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넓은 평야의 대전, 길목에 담긴 이야기들

대전역, 18세기의 삶이 지나던 풍경들

by 한 마디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진짜 한겨울이네."


한, 한이라. 순우리말로 '아주', '중간', '커다란'같이 풍족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대전의 옛 이름인 '한밭'도 이런 어원에서부터 시작했다.

‘한밭’은 순우리말로 ‘넓고 큰 밭’이라는 뜻을 지닌다. 대전의 지형적 특징을 그대로 담아내는 단어다. 대전(大田)이라는 한자어 역시 이 의미를 반영하며, 처음 등장한 기록은 1486년 조선 초기의 인문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이다. 충청도 공주목의 산천조를 보면 대전천(大田川)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으며, 이는 오늘날 대전의 도시 이름으로 이어진다.

대전(大田)은 사람이 살면서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천혜(天惠)의 복지(福地)이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알맞은 고도(高度)에 광활하게 펼쳐진 한밭들과 동서남북은 병풍처럼 두른 산들이 풍해를 막아 준다 또한 수해도 거의 없는 등 천재(天災)가 없는 낙원이다. 거기에다 역사의 젖줄인 금강이 도시의 등뒤로 유유히 흐르고 도시 한복판에는 세 가닥의 큰 내가 흐리니 한밭내(대전천(大田川))에서 먼저 만나 하나되고 다시 성천(省川)과 만나 갑천(甲川)을 이루어 금강으로 가나니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전(大田)의 산천(山川)은 과연 장관이 아닐 수 없다.
- 《大田地名誌》(大田直轄市史編纂委員會,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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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이름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만큼, 대전의 역사는 넓은 평야 위에서 형성된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대전리는 일제강점기에 대전면으로, 1931년에는 대전읍으로, 1935년에는 대전부로 성장하며 충남의 핵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전시는 독립된 도시로 기능하게 되었고, 1989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광역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근대와 대전역, 삶을 담는 장소들

1898년, 일본이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경부철도 부설권을 확보하면서 대전은 철도 공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산이 많지 않아 철도를 놓기에 적절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1904년 대전역이 세워지면서 철도를 기반으로 한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행정 시설과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1914년 대전군이 탄생하고, 1932년 충남도청이 이전되면서 대전은 빠르게 근대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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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1920년 우리나라 철도 역사 중 처음으로 지하도를 설치하며 현대적인 철도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후 1958년 3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신축되었다. 경부선과 충북선을 연결하는 교차점 역할을 하며 철도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했고,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현대적 철도망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이유로 꽤 많은 근대 소설에 대전이 등장한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1924년 4월부터 6월까지 시대일보에서 연재한 중편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3·1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조선과 일본을 배경으로 청년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나'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술집 여급인 정자도 만나고 고베도 들르며 늑장을 부린다. 귀국하는 배 안에서, 기차 안에서 마주한 한국의 식민지 상황에서 울분을 느끼며 느지막이 도착한 집에는 죽어가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병을 충분히 고칠 수 있었지만 시기를 놓쳐버린 '나'는 몇 달 정도 아내와 시간을 보낸 뒤 장례를 치른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나'는 귀국을 계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 사이 술집 여급 '정자'에게 일본에서 대학을 가기로 했다는 편지를 받는다. '나'는 정자에게 돈을 부치고, '공동묘지'같은 조선을 떠나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동경을 향한다.


만세전은 주인공이 여정 중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상황을 묘사한 여로형 소설이다. 혹독한 현실을 대하던 지식인의 방식이 살을 에는 듯 차갑기도, 쉬이 귀속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들에 뜨겁게 울분이 치솟기도 한다.


자정이나 넘은 뒤에 차는 대전에 와서 닿았다. … 대합실도 없이 이론 벌판에 세워둘 지경이면 어서 찻간으로 들여보낼 일이지. … 정거장 문밖으로 나서서 눈을 바삭바삭 밟으며 큰길 거리로 나가니까 칠 년 전에 일본으로 달아날 제, 오정 때 대전에서 내려서 점심을 사 먹던 그 집이 어디인지 방면도 알 수 없이 시가가 변했다. 길 맞은편으로 쭉 늘어 선 것은 빈지를 들였으나 모두가 신축한 일본 사람 상점이다. 길 맞은편으로 쭉 늘어선 것은 빈지를 들였으나 모두가 신축한 일본 상점이다. 우동을 파는 구루마가 쩔렁쩔렁 흔드는 요령소리만이 괴괴한 거리에 처량하다. … 찻간 안으로 들어오며 나는 혼자 속으로 외쳤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 염상섭, '만세전' 중


채만식의 '탁류'는 1937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장편 소설로, 1930년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어낸다. 주인공인 초봉은 청순한 처녀로서 군산시 미두장 주변에서 기생하고 있는 정주사의 딸이다. 남승재라는 인물이 자신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타락한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한다. 유부녀와 간통하던 남편이 발각되어 살해당하던 날 초봉은 곱사인 장형보에게 강간당하고, 군산을 떠난다. 서울로 가던 길에 아버지의 지인인 박제호를 만나고, 그의 유혹에 넘어가 관계를 갖고 서울에 살림을 차린다. 초봉은 임신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밝히며 장형보가 나타나자 박제호로부터 바로 버림받는다. 아이가 있는 데다 위협에 못 이겨 장형보와 동거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초봉은, 마침내 증오의 대상인 장형보를 죽이고 자수한다.


이런 '탁류'에서도 대전역이 등장한다. 온천을 처음 마주하는 초봉의 모습에서 주입된 근대에 대한 시대의 상황을 블랙 코미디처럼 그려낸다.


"목간은?”
“목간? 아무렴, 인제 해야지…… 가만있자, 옷이나 좀 갈아입어야 목간을 하지.”
“옷을?”
“하하하, 첨으로 와서 모르는군?…… 온정에선 빌려 주는 유카다가 있으니깐, 그걸 갈아입어야 편한 법이어든.”
그것도 미상불 그럴듯하기는 그럴듯했다. 마침 하녀 둘이 하나는 찻쟁반을, 하나는 유카다를 받쳐 들고 들어온다. 들고 날 때면 으레 쪼그리고 앉는 것이 민망해서 볼 수가 없다. 하녀가 차를 따르는 동안 제호는 양복을 훌러덩훌러덩 벗어던지면서 유카다를 갈아입는다. 초봉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얼른 외면을 하고 말았으나 내심에는, 제호라는 사람이 그렇진 않던 사람인데 어쩌면 이다지도 무례할까 보냐고 대단히 불쾌했다.
하녀가 유카다를 펴 들고서 초봉이더러도 어서 갈아입으라고 속없이 연방 눈웃음을 친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제호가 유카다를 다 갈아입고 돌아서다가, 초봉이의 곤경을 보고는 꺼얼껄 웃으면서 하녀더러 설명을 한다. 우리 아낙은 온천이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또 조선 가정에서는 아낙이 남편 앞에서 남이 보는데 함부로 옷을 벗거나 하지 않는 법이라고, 그러니 그대로 놓아두라고…….
‘우리 아낙이라니?’
초봉이는 단박 면박이라도 주고 싶게 제호가 괘씸했다. 그의 눈살은 졸연찮게 꼿꼿해서 제호를 거듭떠본다. 그러나 제호는 초봉이의 그러한 눈치는 거니를 챘어도, 어째 그러는지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채만식, '탁류' 중


대전역은 호남선과 경부선이 만나는 교차 지점이다.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세워진 철도로, 사람이 서로 만나고 수많은 관계가 생겨나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대전역에 당도했는가. 그 이야기가 18세기 초반의 소설들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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