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걷는 밴쿠버의 하루
밴쿠버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면, 나는 언제나 캐나다 플레이스(Canada Place) 쪽으로 향한다.
하얀 돛처럼 펼쳐진 지붕 아래로, 바다와 도시가 맞닿아 있는 이곳은 밴쿠버의 심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상징적인 장소다.
컨벤션 센터와 연결된 산책길에는 아침부터 커피 한 잔을 들고 걷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바다 건너편 노스 밴쿠버의 푸른 산맥이 배경이 되고, 그 사이로 오가는 수상비행기와 요트들이 도시의 일상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완성한다.
나는 늘 이곳 벤치에 잠시 앉아 바람을 맞는다. 바다 냄새와 커피 향, 그리고 잔잔하게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부드럽게 열어 준다.
지금은 밴쿠버 컨벤션 센터로 더 많이 불리지만, 캐나다 플레이스는 본래 1920년대 Pier B-C 부두에서 시작됐다.
1986년 엑스포(EXPO ’86)를 맞아 새롭게 재탄생하며, 그 하얀 돛 지붕이 밴쿠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 아래에는 Pan Pacific 호텔, 컨벤션홀, 전시장, 그리고 크루즈 선착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정오가 되면 이곳의 상징인 Heritage Horns가 울려 퍼진다. “O Canada”의 첫 소절이 도시 위로 흐르고,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엔 묘한 평화가 깃든다.
돛 아래 그림자 속엔 “Canadian Trail”이라 불리는 길이 이어지는데, 캐나다 전역의 도시 이름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밴쿠버의 바다 위에서 캐나다 전역을 밟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컨벤션 센터에서 스탠리 파크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내가 밴쿠버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다. 이 길은 Coal Harbour를 지나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도심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밴쿠버만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멀리서 보이는 컨벤션 센터의 돛과 크루즈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그 대신 눈앞엔 푸른 숲과 바닷길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길가엔 늘 커피잔을 손에 든 사람들, 조깅을 하는 시민들, 그리고 카메라를 든 여행자들이 함께 어울린다.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특별히 목적지가 없어도 좋은’ 산책로라는 것이다.
스탠리 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이 거대한 숲은 404헥타르(약 1,000에이커) 규모로, 북미 최대의 도심공원 중 하나로 꼽힌다. (정확히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크다.)
공원을 따라 도는 해안길, 즉 Seawall은 약 10km로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반 정도, 자전거로는 약 1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에 다 돌기보다는, 하루의 일부 구간만을 여유롭게 즐기는 편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전부 걷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밴쿠버 아쿠아리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그 주변의 숲길과 라군(Lagoon) 주변을 중심으로 1~2시간 정도 산책을 즐긴다.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해안선과 잉글리시 베이 쪽 풍경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밴쿠버의 주차비는 다소 ‘사악하다’. 캐나다 플레이스 주변의 공영주차장은 접근성은 좋지만, 요금은 시간당 5~6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 시간당 2달러대의 스트리트 파킹을 찾아 주차한다.
조금은 걷게 되지만, 그만큼 도시의 공기와 거리 풍경을 더 느낄 수 있다.
스탠리 파크 내부에도 여러 주차장이 있지만, 구역마다 요금이 따로 계산되기 때문에 이동할 때마다 다시 결제해야 한다.
그래서 한 곳에 세워두고, 산책이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다 돌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게 좋다. 나는 늘 이렇게 일정을 짠다.
오전 —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짧은 산책
점심 — 워터프론트 근처 카페나 푸드트럭에서 간단한 식사
오후 — 아쿠아리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스탠리 파크 일부 구간 산책
여유가 되면 — 차로 공원 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보기
이렇게만 해도 밴쿠버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모든 걸 ‘완벽히 보려는 욕심’보다, 걷는 순간의 바람과 풍경을 천천히 즐기는 것이 이 도시를 가장 밴쿠버답게 만나는 방법이다.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시작해 스탠리 파크로 이어지는 길은 도시의 경계와 자연의 리듬이 공존하는 길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밴쿠버의 속도를 배운다.
빠르게 움직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바람이 멈추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이 도시가 내게 속삭인다.
“이곳의 진짜 풍경은, 너의 걸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