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쉼표마다 떠난 일본여행

01. 퇴직금으로 떠난 첫 일본여행

by 프리한 래몽



800만 원


1년 6개월 계약직을 마무리하면서, 통장에 찍힌 금액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권유받았다.


20대 초반, 허리디스크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찌릿한 신경통, 머리를 감으려고 숙였을 때 찾아오는 통증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두려움에 눈물이 났다.


결국 입원했고, 1년간 통원치료 끝에 간신히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했다. 하지만 내 손에 남은 건 2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잔고뿐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다






그때, 우연히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전무대 졸업 후에 바로 취직했고, 주말에는 엄마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강사, 일요일에는 회사의 업무로 가끔 교회의 성가대까지 나가야 했다.

결국 내 인생에서 처음 기절까지 하고, 허리디스크라는 병까지 얻게 됐다.


나의 20대 초반은 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해도 통장에 찍히는 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다.

짧은 청춘의 시간과 바꾼 돈을 병원비로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깝고 억울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고 선택한 것이 일본 여행이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 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문대 졸업 후 바로 취직했고, 주말에는 엄마 일을 도우며 보조 강사와 회사 업무로 늘 바쁘게 달리기만 했던 20대 초반. 결국 과로로 쓰러졌고, 허리디스크라는 병까지 얻었다.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는데도 한 달에 통장에 찍히는 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다.

청춘의 시간을 갈아 넣고 남은 건 병원비뿐이라는 게 억울했다. '이렇게는 안되겠어, 나도 하고싶은 거 할래!' 라는 생각의 대답이 일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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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은 내 10대를 지탱해준 배경 같은 존재였다.
중학교 때 우연히 본 드라마 고쿠센을 시작으로 애니, 드라마, 영화,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귀가 트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회화도 가능해졌다.


물론 드라마로 배운 탓에 반말만 하는 단점은 있지만, 그 시절의 몰입은 결국 나의 취향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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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로 떠나다



나에게 오사카는 언제나 부산과 비슷한 느낌의 도시였다.
사투리를 쓰는 유쾌한 시민들, 활기찬 거리.


일본 예능에서 보던 개그맨 대부분이 오사카 출신이었다. 그들이 구사하는 칸사이벤(関西弁, 오사카 사투리)의 자막을 통해 배우게 되면서 매력있다고 느껴졌다.

TV 속에서 사투리를 쓰는 연예인의 갭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사카라는 도시가 궁금해지고,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첫 오사카 여행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유였다.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해외여행은 서툴고 미흡한 것 투성이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 지도를 몇 번이고 확인했고, 무거운 캐리어를 끙끙 거리며 이동할 때는 전부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구세주가 되어준 것은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생이었다.

오사카에 살고 있던 동생은 흔쾌히 숙소를 내주었고, 심지어 연차까지 내서 2박 3일 동안 가이드를 자처했다.


동생의 배려 덕분에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만 찾는 마트에서 장바구니 가득 도시락, 과자, 호로요이를 사 들고 돌아오던 조용한 골목길의 저녁 풍경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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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첫 일본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었다. 퇴사 후, 내 자유 의지로 선택한 첫 행동이었다.

잘하는 것 하나 없다고 믿었던 10대 사춘기 시절, 일본 덕분에 취향이 생겼고, 외국어를 말할 수 있다는 작은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시작은 현실 도피였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을 시작했지만, 나는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로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여행을 다니면서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 추억은 앞으로의 일상에서, 필요할 때마다 다시 꺼내어 나를 버티게 해줄 힘이 될 거라 믿었다.
그래서 다시 오고 싶었다. 다음에 오게 될 내가 어떤 상황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이 감정을 만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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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남은 현금을 털어 동생에게 손편지를 썼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동생에게 전했다. 그 배려가 아니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을 오기 위해, 현실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여행의 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돌아온 뒤 나는 직장인의 길을 내려놓고 프리랜서의 길을 새롭게 선택했다.


여행에는 묘한 힘이 있다.
퇴사 후, 더는 머물 곳이 없어졌을 때도 새로운 도시와 낯선 경험이 나를 다시 현실로 이끌어 주었다.

돌이켜보면 이상하게도 내 인생의 과도기마다 늘 일본 여행이 있었다.

마치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불러주는 쉼표처럼, 그곳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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