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8년 차 프리랜서의 번아웃 극복기
23년 2월, 세 번째 나 홀로 여행을 떠나다.
1년 계약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이 업(業)으로 먹고 산 지도 8년 차가 됐다.
방과 후 강사는 연휴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공휴일이나 여름방학 때 겨우 일주일 정도 쉴 수 있을 뿐.
직장인처럼 연차도 없지만, 2월 중순 수업일수가 끝나면 1년 계약이 끝난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내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유독 이번 해는 힘들었다.
마음 한편에서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져 갔다.
하지만 남편과는 좀처럼 휴가 날짜를 맞출 수 없었기에, 오사카에 사는 동생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잘 지내? 너 보러 갈까?”
“언니! 언제든지 좋아!”
남편은 농담처럼 동생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지만, 정말로 동생이 허락하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정이었다.
그러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혹시 국제 미아가 되면 어쩌지?'
30대 초반이 됐지만, 20대를 일하기 바빴던 나는, 혼자 여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한 뒤 걱정이 산더미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이내 걱정도 잠시뿐이었다. 출발이 다가오자 설렘이 조금씩 불안을 극복했다.
혼자 있을 남편을 위해 반찬으로 소시지 볶음과 카레를 대량 만들어두고, 여행 당일에는 남편이 출근 전에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잘 다녀올게!”
공항에 도착하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새벽 일찍 출발한 탓에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김밥을 먹으며 인천공항에 앉아 있으니,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 홀로 여행이 시작됐다.
세 번째 오사카, 나만의 방식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매우 협소했다.
혼자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기에, 여행 자금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10만 원대의 숙소를 골랐다.
그래서인지, 숙소에 캐리어를 펼치면 발 디딜 곳이 없을 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잠자리가 바뀌면 잠들지 못해, 유난스럽게 애착 배게를 챙겨 다니곤 했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예민함도 사치로 느껴졌다.
짐을 풀고 호텔 방에서 호로요이를 마시니 비로소 ‘아, 일본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새벽부터 이어진 긴장이 천천히 풀려갔다.
무엇이 나를 또다시 일본으로 이끌었을까.
이번 번아웃의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8년 차, 직장인이라면 어느 직급에 있을까?
프리랜서 일하며 내가 계획한 일을 하나씩 해내는 성취는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경기대회에서 상을 타고, 급수시험에 합격하는 순간마다 진심으로 기뻤다.
8년 동안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했었다.
그러다 문득 돌이켜보니, 나의 성장은 멈춰 있었다.
교습소, 학원으로 확장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목표가 아니었다.
내가 이 일을 사랑했던 이유는 '성장'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정작 나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5년, 처음 오사카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다시피 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친구들이 앞서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첫 여권을 만들고 떠난 여행이 내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스스로 일을 만들고 생활을 일궈왔다.
주변에서는 익숙한 길을 권했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실내건축자인과, 영문과를 거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주산 강사라는 길을 개척했다.
많은 길을 돌아온 끝에, 마침내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본도 그랬다. 좋아하는 일본어를 전공하는 쉬운 길 대신,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했다.
사람마다 선택지는 무수히 다르고, 누군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짧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힘들 때마다 일본을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당시 내가 유일하게 선택했던 일본 여행으로 답을 찾은 것처럼, 이번에도 또 하나의 정답을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은 직장 동기와 함께였고,
두 번째 여행은 남편과 함께였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은, 온전히 나 혼자였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새로운 보금자리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국에서는 풀리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여행의 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시야를 넓혀준다.
오사카뿐 아니라, 이번에 후쿠오카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번아웃의 끝에 선 나는, 과연 어떤 답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