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틴더였나?
많은 데이팅 앱 중 틴더를 선택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무한대의 가능성이었다. 일단 짝을 찾기로 시작한 이상 미혼남녀는 마음이 바쁘다. 빨리 상대후보를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정오의 xxx 등 몇 개의 국내 앱을 비교검토한 결과 기본적인 소개글 포맷이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맞춰 자기소개를 써야 하고 그렇게 쓴 내 소개글이 나 자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에 단 1~2명과 매칭이 가능하고 그 매칭도 커플매니저가 하는지 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 글은 8년 전 데이팅 앱을 써본 소회이니 지금은 훨씬 높은 수준의 매칭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틴더는 무한대였다. 정글에 남녀를 풀어놓고 알아서 만나는 식이다. 나는 짝을 만나기 위해서는 총 만나본 사람의 수가 클수록. 즉 분모가 커질수록 '그 한 명'을 만날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이건 통계 게임이야 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틴더는 무료였다. 물론 앱을 쓰다 보니 상대의 환심을 얻기 위한 더 많은 슈퍼라이크를 쏘기 위해서 유료결제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을 만나는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뭔가 애잔한 자괴감이 들었다.
세 번째는 외국인들이 틴더를 많이 쓴다는 점이었다. 내 과거의 남자친구들 반정도가 외국인이었고 늘 교포나 외국인과의 교제에 대해서 열려 있었기 때문에 내겐 상대적으로 틴더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렇게 틴더앱을 깔고 활동을 시작했다. 성비 불균형 탓인지 모르겠지만 매칭이 너무 잦고 쉬었다. 매칭이 된 후 상대방이 말을 걸어오면 상대방의 사진과 프로필을 검열했다. 노출 있는 사진을 올렸는지, 차나 시계 등 허세 섞인 사진들이 있는지, 프로필에 성적목적이나 취향이 들어간 문구가 있는지 등을. 일차 필터링을 거친 다음에 대화를 시작했다. 무료했던 출퇴근길이 약간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이틀정도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은 실제로 만나서 대화해도 좋겠다 하는 감이 생겼다. 중간에 섹파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하는 자식들은 차단했다. 그리고 내 주말은 짧고 소중하기에 돌이켜보면 이주일에 한 명 정도와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
차만 마시고 일어난 적도 있고 좋은 호텔바에 가서 칵테일 한잔하고 헤어진 남자도 있었다.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젊고 싱싱할 때의 내가 아닌 40대 초반의 내가 남자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약간 비현실적일 정도로 연하에, 큰 키에, 준수한 남자와 썸을 타기도 했고 유학파 출신의 사업가 돌싱도 있었다. 강남에 집이 있고 타고 나온 외제 중형차는 반짝였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떤 사람과 만나고 싶은지가 점점 뚜렷해져 갔다. 나도 살고 있는 집이 있었고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조건만 좋은 남자들에게 잘 끌리지 않았다.
나와 함께 한쌍의 파발마처럼 들판을 달릴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