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를 처음 만난 날
보통의 내 나이 또래의 남자는 과시한다. 어디 어디 네임드에 다니고 자기 명의로 어디에 집이 있고 모아놓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
그 어떤 남자와도 달랐다. 내가 살던 오피스텔 앞에서 처음 만난 날 강남 주차료는 너무 비싸다며 근처에 주차장을 봐뒀다며 CU 편의점이 어딘지 물었다. 우리 집 근처 CU는 네 개인데? 주차할 장소를 찾아 같이 차를 타고 한참을 돌았다. 내 앞에서 주차비가 비싸다는 얘기를 한 남자는 처음이었다. 신선했다.
식당 안에서 눈썹으로 앵그리 버드를 만들고 웨이브를 하면서 장기자랑을 했다. 닭볶음탕을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숟가락 위에 한입거리를 쌓아 입에 넣어줬다. 자기는 스쿠버다이빙을 오래 했다며 사진첩의 니모와 거북이를 자랑했다. 물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오리가 얼마나 큰지 해저동굴의 위엄이 어쩌고 저쩌고.. 저녁 6시에 만나서 12시가 넘도록 시간이 날아갔다.
네 번째 만남에 갈치조림을 앞두고 이 야생마는 갈치조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얼마나 술을 마시고 꽐라가 돼서 어느 주차장 방지턱을 베고 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생각했다. 너무 거칠고 무절제한 삶을 산 사람이구나. 삶의 궤적이 너무 달라 나와 안 맞을 것 같아..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매칭을 해제하고 연락처를 삭제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틴더에는 화수분처럼 남자들이 쏟아지고 나랑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주사이에 야생마가 내 안에 성큼성큼 들어와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초조해졌다. 연락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회사 점심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SK 대리점에 가서 지난 2주 동안의 통화내역을 뽑아 달라고 했다. 다시 전화했을 때 야생마는 세상 따뜻한 목소리로 잘 지냈어?라고 물었다. 그날 저녁에 만나서 내가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난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네가 왜 무서워졌는지.
내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