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은 여자
누구를 위한 통계자료인지 무엇을 느끼라는 정보인지 화딱지가 나지만, 한국에서 미혼의 40대 여자가 결혼할 확률은 번개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우리는 만난 지 정확히 일 년 만에 커플반지를 하고 그로부터 일 년 후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식은 생략했다. 둘 다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 문화가 초토화된 걸 핑계로 일단 신고하고 살겠다고 양쪽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결혼 일주년 기념일에 스튜디오에 가서 웨딩사진을 찍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동안의 나의 연애는 거의 2~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한순간에 갑자기 마음이 식기도 했고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늘 지속되지 못할 것 같은 관계에 풀베팅했다가 올 것 같은 후폭풍이 지레 겁이 나기도 했었다.
남편과는 물 흐르듯 스며들었다. 운동하고 바로 씻고 나갈 수 있는 실내 피트니스만 고집하던 내게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쳐 주고 주말이면 산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그렇게 자연을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산 정상에서 바닷속에서 늘 남편과 붙어있기 시작했다. 때마침 코로나가 터졌고 강제 재택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갇혀있던 내가 걱정되어 남편이 퇴근 후 들르기 시작했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반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식당에 가지 못하니 둘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에어프라이어, 마사지기 등을 공동으로 사기 시작했고 둘이 편안하게 자기엔 너무 좁은 침대를 퀸사이즈로 바꾸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사랑해 주는 남자.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남자. 나는 팍팍한 서울살이 20여 년간 떠도는 섬처럼 부유했다. 비로소 땅에 뿌리를 내린 기분이었다. 땅이 주는 물과 영양분을 흠뻑 받고 땅에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