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9세에 영어강사 되기.
이사 전후로 너무 쓸고 닦았는지 허리가 아팠다. 이사오기 전부터 고질병이었다. 회사 다니면서도 정형외과에서 척추에 몇 번 주사를 맞은 적이 있는데 이사 이후로 도졌다. 다시 그 주사를 맞는 건 무서워서 근처 통증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더니 어떤 삶을 살았냐며 측만증에 협착증까지 심한 편이라고 했다. 그냥 회사를 다니며 일을 했을 뿐인데 남은 건 노화된 몸이었다.
일상은 조용해졌다. 출근하는 남편 과일을 챙겨주고 나면 나무만 보이는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 말고는 급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후 즈음 마트에 가서 저녁반찬 할만한 재료들을 사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한상을 차려내는 일 말고는 중요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이 시간을 즐기라고.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달려오기만 했다고 쉬라고 했다. 이사한 지 이주쯤 지나 결혼하는 전 직장 동료 청첩장을 받으러 서울로 나갔다. 즐겁게 맥주와 안주를 먹고 또 보자며 헤어지고 오는 길에 마음에 뭔가가 뭉클거렸다. 남들은 아직 앞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급정거로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는 느낌이었다. 직장동료를 만나러 두 번째 서울에 다녀온 날 급기야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꺼이꺼이 울었다. 나만 멈췄어... 무용한 인간이 된 거 같아!!
남편은 나의 감정변화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집에 있는 게 그렇게 갑갑하면 피트니스에 나가서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효용가치를 찾고 싶었다. 지역 알바를 뒤지기 시작했다. 머리 쓰며 스트레스받는 일 말고 단순한 알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무직만 해봤던 내가 할 수 있는 알바는 많지 않았고 거의 최저시급에다가 그나마 나이제한에 걸리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정리해 보다가 동네 영어학원 강사 구인에 눈이 갔다. 초등학생만 다니는 작은 학원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냐며 대학교 때 교직이수도 안 했던 데다가 과외도 고등학생 이하는 해본 적이 없는데 초등학생이라니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들을 예뻐하며 가르칠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생겼지만 답은 내가 직접 부딪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시강을 해보라고 했다. 교재를 하나 받고 10분간 준비해서 영영 수업을 했다. 며칠 후에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은 해보고 안 맞으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응원해 주었다. 평일 오후 세 시간만 일하는 알바니깐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만두면 된다고 마음을 가볍게 먹으라고 했다. 학원에 나가면 책상과 바닥을 청소하고 자리에 앉아 도착하는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고 시간이 되면 리딩과 문법 수업을 했다. 한 반은 적으면 두 명에서 많아봤자 여섯 명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문법을 쉽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다시 영어문법을 공부했다. 생각보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잘하는 아이들은 레벨이 올라가면 학원가로 학원을 옮겼고 점점 내성적이고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이 주를 이뤘다.
회사에서 계속 영어를 사용하며 일을 했기에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학원에 오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영어로 말을 걸면서 자연스럽게 회화를 잘하게끔 만들어주고 싶다는 게 내 목표였는데 학원 생활 6개월이 지나면서 깨달은 점은 여기는 그걸 원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오전시간에 영어 스피킹을 원하는 아이들을 찾아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과외앱을 깔고 인터뷰를 보고 기본 교육 이수를 받고 처음 만난 아이는 영어유치원 2년 차 6세 여자아이였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자기 의견을 어느 정도는 의사 표현할 수 있는 아이였다. 신세계였다. 그 이후 만난 두 명의 남자아이들도 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했고 회화과외를 원하는 경우였다. 그 아이들을 만나서 대화하듯 공부를 하면서 학원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가셨고 영어유치원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곳이구나 깨달았다.
안 가본 길을 두드려보고 도전하는 그 과정이 한두 줄의 글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기 의심이 생길 때마다 확신을 주고 지친 몸에 맛있는 음식과 좋은 풍경을 넣어주고, 무릎이 꺾일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주는 남편의 칭찬을 무럭무럭 먹고 나는 지금 3년 차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틴더에서 처음 만나 2년 연애 후에 5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향에 불활실한 미래가 무섭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앱에서 만났지만 가슴 벅차게 사랑하고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게끔 지지해 주며 살고 있습니다. 틴더에서 만난 남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앞으로는 영어강사로서의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