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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by 햇빛마루

오늘 아침 8시 20분쯤. 여느 날처럼 정수기 물을 받아서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우려 왔다 갔다 하는데, 싱크대 한가운데 있는 작은 창문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가 창밖을 보자 저기 건너편 아파트들 사이로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고, 그 햇살이 뒷마당 축대 위 작은 숲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무줄기와 가지들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사이에 늘어진 넝쿨들은 마치 금실로 짠 금관들을 올려놓은 것처럼 나무들 사이에서 한층 더 찬란하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빛과 작은 숲의 하모니가 아닐 수 없다. 아침 시간과 태양과 작은 숲이 만들어낸 연금술이 아주 신비롭다. 넋을 놓고 바라본다.

사실 이 작은숲은 원래 뒷산의 한 자락이었다. 다른 부분들은 아파트 공사로 모두 사라졌지만, 여기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나무들도 산에서 보는 그대로 이리 엉기고 저리 엉겨있다. 큰 나무도 있고 작은나무도 있고 소나무도 있다. 사람들이 가져다 심어서 꾸며놓은 그런 정원들과는 다르다. 그냥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싱크대 위의 작은 창 하나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항상 다른 그림으로 꽉 채워준다. 봄에는 산수유도 보여주고, 여름에는 무성한 녹색으로, 가을에는 짙은 갈색으로, 흐린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모두 다른 그림들을 보여준다. 나한테는 꽤 고마운 숲이다. 그렇긴 하지만 한겨울에는 보통 앙상하고 헐벗은 모습이어서 괜히 민망한 마음에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오늘 그 작은 숲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보란 듯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아파트에 산 지가 15년이 되었다. 아침마다 커피에 토스트를 구워 먹으면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 지도 꽤 오랜 습관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풍경을 본 것도 같다. 어렴풋이 기억에 있다. 그런데 왜 오늘 아침, 그 작은 숲과 햇살의 영광스러운 하모니를 처음인 것처럼느끼게 되는 것일까. 코로나가 한창인 이 겨울에 말이다.

환상적인 연금술은 약 5분가량 내 시야에 머물다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환하던 창문도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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