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할머니들의 허리는 굽으셨다. 까만 피부, 깡마른 손목, 움푹 들어간 뺨의 모습은 그들의 고단했던 일생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사시사철 밭일을 한다. 밭일이 끝나면 부엌에 들어가 턱없이 낮은 부뚜막과 아궁이 앞에서 쪼그리고 저녁밥을 짓는다. 출산 뒤에도 산후조리는커녕 바로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간다. 그런 인생이 그들의 허리를 다시는 필수 없게끔 망가뜨려 놓았다.
그들은 그렇게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 자식들은 도시에서 자리를 잡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할아버지들은 대체로 일찍 세상을 떠나 시골에는 할머니들이 많다. 할머니들은 굽은 허리를 겨우 펴고 담 옆 평상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본다.
강원도 ‘마차리’라는 곳에 탄광문화촌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들러보았다. 탄광이 없어지고 그 부근에 탄광촌에서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다. 전시장은 광부들의 채굴하는 모습,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 빨래하는 모습 등등 과거 탄광 마을의 풍경을 밀랍 인형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여자의 모습을 재현한 밀랍 인형이 세 명이 있었다. 한 여자는 부엌일을 한다. 작은 방안에서는 광부 남편과 그의 친구가 같이 밥을 먹는다. 한 여자는 식당일을 하는 모습이고 세 번째 여자는 빨래터에 앉아 있다.
그런데 한결같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묘사해 놓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실제 탄광촌 여인네들의 삶이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의식 속에서 과거 아낙네들, 아니 우리 어머니들의 삶은 언제나 그러했다. 그들은 언제나 허리를 굽히고 아궁이를 향해서, 땅을 향해서, 냇물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대가 흘러 박물관에서조차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요즈음 급속도로 길들이 새로 난다. 새로 난 길들은 시골길을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시골 길가에 앉아계신 할머니들의 모습을 잘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