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첫날, 1학년 교실 속으로

by 낙훈

책 읽어주는 1학년 선생님으로 복직 첫 날을 채우려는 나의 계획은 완벽하게 무너졌다.


2월 28일. 입학식 준비를 위해 1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모두 출근했다.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고 준비물은 모두 교실에 가져다 놨다. 개학날 나눠줄 인쇄물은 학생별로 L자 파일에 모두 담았다. 그런데 겨울방학부터 새 교실 공사 중이라 창문에 유리도 없었다. 인터넷과 노트북-티비 연결은 기자재 기사님이 겨우 해주셨는데 여전히 다른 곳은 정리 공사 중이었다. 3월 1일에서야 교실 공사가 마무리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교실 점검을 하지 못했다. 대신 입학식 행사가 10시니까 8시 10분까지 학교에 가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개학을 맞이했다.


8시 10분. 학교에 도착하고 노트북을 다시 연결했다. 인터넷 연결부터가 말썽이다. 메신저 실행도 안 되고 답답했다. 손을 찔려가며 피를 본 끝에 인터넷은 해결했다. 핏방울이 묻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닦으려는데 교실에는 화장지도 없었다. 화장지는 교실 4칸을 지나야 있는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출발부터 삐걱삐걱.


밀린 팝업 8개를 읽으며 관련 첨부파일은 일단 저장했다. 새 학기 안내장 수정 사항이 있어 이를 반영해 출력하려고 했더니 프린터는 양면 인쇄가 안 된다고 경고창이 난리다. 낱장으로 출력해서 학년 연구실 복사기로 양면 인쇄를 하려고 갔더니 부장님께서 출력을 해주고 계셨다. 엇박자 속에 내 피 같은 시간은 줄어만 갔다.


8시 50분. 다시 교실로 돌아와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미리 끼워뒀던 인쇄물을 L자 파일에서 꺼내 수정한 출력물로 교체했다. 책상 위에 맨 먼저 명찰을 놓았다. 입학 선물로 준비한 색연필, 사인펜, 종합장 두 권, L자 파일을 하나씩 놓으며 아이들 이름을 외웠다. 다섯 바퀴를 돌았다. 시간 순삭이다.


9시 20분. 4반에는 벌써 학생이 둘이나 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입학식 당일 현관문에 각 반별 학생 이름을 적은 플래카드를 붙이러 부랴부랴 내려갔다. 미리 붙이면 훼손될까 봐 당일에 하기로 결정했던 사항이다. 실무사님들께서 1학년 학생들을 현관에서 맞이하며 반별로 이름을 확인하고 명찰을 걸어주고 2층 교실로 올려 보내 주시기로 했다. 난 명찰 가져오는 것을 또 잊어버렸고, 바람을 가르며 올라가서 명찰을 가져왔다.


9시 30분. 다시 교실이다. 이제야 노트북 앞에 다시 제대로 앉았다. 10시 20분쯤에 교장선생님 입학식 축하 방송을 한다고 해서 티비 연결을 확인했는데 4번 채널이 켜졌다. 일단 됐고. 1교시에는 입학식 행사, 2교시는 준비한 ppt로 책을 보여주며 실감 나게,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읽어줘야지 다짐했다.


9시 40분. 첫 학생이 들어왔다. 곧 연달아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실내화 주머니를 달랑달랑 가지고 오는데 그곳이 신발을 넣어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굳이 신발을 넣고 교실에 놔두기엔 통로가 좁을 것 같아서 신발은 신발장에 놔두고 실내화 주머니만 책상 오른쪽에 걸기로 했다. 숫자를 잘 몰라 멈칫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신발장 번호를 손으로 짚어가며 자리를 알려줬다.

난 왜 교실에서 이름표 보고 찾아서 앉아라,라고 말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다고 자리배치표를 만들어서 붙였다고 한들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을 알려줘도 소용없었다. 낯선 교실에서 아이들은 그대로 얼음 했다. 한 명씩 자기 자리로 배달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복도에는 또 새로운 손님이 와 계셨다. 신발과 신발장, 실내화 주머니와 책상 자리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학생의 입장이 끝나고 나니 10시 5분이었다.


바로 시작했어야 했다. 내가 준비한 ‘처음 학교 가는 날’을 얽어줬어야 했다. 그런데 확실히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 책을 실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읽어주기에는 가장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림이 잘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실물화상기로 보여주며 읽기에는 아이들의 시선과 반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었다. 책상을 다 밀어버리고 도란도란 앉아서 읽어주기에는 지금은 코로나 시기였다. 결국 칠판에 붙여 놓은 “입학을 환영합니다” 플래카드 이야기와 함께 입학식 관련해 주절주절 하다가 15분이 금세 흘러갔다.


10시 20분. 예고했던 교장선생님의 입학식 축하 방송이 시작됐다. 그런데, 잉? 왜 채널은 4번 맞는데 방송이 안 나오지? 티비로 4번 채널이 켜지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정작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반만 나오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은 “왜 우리 반만 안 나와요?”, “티비가 고장 났나 봐요”하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는 게 없는 날이 있나 싶을까 정도로 여러 가지가 말썽이었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누르다가 나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화면이 나왔다. 귀신이 곡할 일이다. 그렇게 교장선생님의 덕담은 절반밖에 듣지 못했다.


1교시쯤은 그렇게 날아갔다. 2교시는 담임선생님 소개를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이야기 도중 한 아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학년 같으면 “다녀오세요.”하고 말았을 텐데, 1학년이다. 화장실이 어딨는지 모른다. 한 명만 데려다주고 오기엔 나머지 학생들이 교실에서 무엇을 할지 걱정됐다. 결국 이참에 모두에게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려고 교실 뒤로 줄을 서라고 했다. 번호대로 서, 하면 될 일인데 1학년이다. 그리고 첫날이라 자기 번호도 모른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나와서 뒤에 서라고 했다. 줄 서면서 5분이 순삭이다. 1 반인 우리 반과 화장실은 정반대.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뒷걸음치면서 화장실까지 도착했다. 화장실이 급한 아이들은 들어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뒤를 돌아 다시 교실로 왔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10시 45분. 그런데 마지막에 들어온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문을 닫고 너무 예쁘게 잘 들어갔다. 이때다 싶어 교실문 출입 교육을 시키려고 이야기한다는 게 10분. 10시 50분이 돼버렸다.


2교시는 분명 ‘선생님은 몬스터’를 ppt로 보며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했는데, 책 읽기는커녕 책상 위에 물건들 정리도 못했다. 색연필과 사인펜을 보자 물건에 이름 붙이기 교육이 생각났다. 또다시 10분 순삭. 11시다. “집에 가져가면 잃어버리기 때문에 사물함에 넣어주세요” 했다가 자기 사물함 번호와 위치 알려주고 물건 넣는 것까지 또 10분. 11시 10분이다. 11시 30분에는 정문 하교를 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안내장이 4장 더 왔다. L자 파일을 다시 모두 꺼내라고 해서 20명 사이를 4번이나 돌며 나눠줬더니 11시 20분. 나가야 할 시간이 됐다.


옷을 입히고, 가방을 싸고, 신발을 들고, 현관에 내려와서 신발을 갈아 신고, 정문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께 가기 위해 줄을 서고 도착하는 데까지 10분이 걸렸다. 그러고 나니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나버렸다.


분명히 난 계획이 있었는데 순간순간 일어난 일에 대처하다 보니 전혀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내일부터는 각 시간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교실로 돌아갔다.


1교시까지는 눈치 보며 조용히 있던 아이들도 2교시가 되더니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 쏟아내며 본색을 내비쳤다.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님이 돼서 규칙을 칼 같이 지키는 아이들이 되도록 할 것인가, 조금은 부산스럽지만 자유롭게 말랑말랑한 아이들이 되도록 할 것인가는 매년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진 뒤에 하는 고민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그 고민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1학년은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다소 엄격해 보이더라도 6년 생활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조금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어렵다. 교육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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