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긴장한 눈빛이 슬슬 사라진다.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아말피’로 여행 갔을 때 일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과연 숙소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했다. 나폴리역에서 살레르노행 기차를 탔다. 살레르노 선착장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아말피 선착장까지 갔다. 대서양의 넓고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선을 따라 페리는 파도를 가르며 시원하게 달렸다.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말피 선착장에 도착하고, 구글맵 지도를 따라 겨우겨우 미리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해안의 작은 마을, 아말피를 누비고 다녔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마치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던 것처럼 동네 마트도 들락날락했다. 아침에는 현지인처럼 달리기도 하고, 해수욕장에 들어가 풍덩 몸을 담그기도 했다. 조금 익숙해지니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1학년 아이들의 입학식은 나의 아말피 여행과도 같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입학식은 낯선 세계인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나의 반을 찾아가는 긴장되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만나는 담임 선생님과 낯선 교실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지 모르는 친구들뿐이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는 있을지 걱정도 된다. 아이들은 온통 처음인 것 투성이라 긴장 한가득이다.
3주가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내가 여행지에 도착해서 하루 만에 친숙한 동네인 것처럼 휘젓고 돌아다닌 것처럼, 아이들은 교실을 활보한다. 큰 소리로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들, 책상과 책상 사이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교실 문을 휑하니 열어놓고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 등 각양각색이다. 물론 한쪽에서 조용히 도란도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앉아 있는 착한(?) 아이들도 있다.
입학초기적응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확실히 금세 학교라는 공간에 잘 적응한다. 교실과 복도, 화장실과 급식실에서 지켜야 하는 질서를 익힌다. 선 긋기, 색칠하기, 색종이 오리고 접고 풀칠하기 등의 활동을 하면서 수업 시간이라는 개념을 익혀간다. 초반에는 개별활동을 주로 했다면 2~3주 차에는 아이들이 함께 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아닌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이 처음 가지고 있던 긴장의 눈빛은 점점 사라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담임의 고민은 시작된다. 과연 어디까지 풀어주고 어디까지 조여야 할까?
초등학교에는 3월의 전설(?)이 떠돌아다닌다. 학생들을 처음 만나고 3월 한 달 동안은 절대 웃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웃는 얼굴을 보이는 순간, 아이들이 선생님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에 약간의 정색을 유지해야 학급의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생활지도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는 교실 모습은 이렇다. 아침에 학생들이 교실에 오면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자기 자리로 가서 책가방 정리를 한다. 사물함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오고 서랍 정리를 마치면 학급문고에서 책을 꺼내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조용히 스스로 독서를 한다. 9시까지 아이들이 하나둘 모일 때까지 교실은 계속 조용한 가운데 독서활동이 이어진다. 그리고 선생님은 9시 교실 앞에 서서 “자, 이제 읽던 책은 서랍에 넣어두고 1교시 국어책 꺼내주세요.”와 함께 수업을 시작한다. 과연 이 모습이 당연하게 나를 포함한 모든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을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이것은 그마저도 선생님이 아침 8시 30분부터 교실을 지키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처음 온 학생은 혼자라서 선생님이 말했던 대로 곧잘 행동한다. 두 번째부터 문제는 시작이다. “안녕!”하고 큰 소리로 인사는 애교다. 네다섯 번째 학생은 오자마자 옆자리 친구에게 “야! 내가 어제…”하며 짝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OO아, 쉿.”하고 손짓과 조용한 말로 부르면 그제야 선생님 눈치를 보며 말을 멈춘다. 인사를 하지 않고 들어가는 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문을 닫지 않는 아이,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라고 몇 번을 묻는 아이(아침 시간에는 제발 말하지 않고 그냥 다녀와도 된다고 수없이 말하는 중이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3월 3일부터 17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아침 일상이다. 조용하고 정돈된 아침활동시간을 보내기 위한 나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나타내긴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교사가 아침활동시간 내내 교실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분위기다. 준비물이라도 가지러 학년연구실에 다녀온다면, 내가 그렸던 교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이 그저 난, 장, 판이다. 하…
나도 애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아침활동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 고삐를 조금이라도 풀어버리면 아이들은 교실이 바깥의 드넓은 초원이라도 되는 양 날뛰는 양이 된다. 목동이 되어 양들을 수습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려 1교시의 절반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실이라면, 아침활동시간은 조용한 독서활동으로 해야 한다는 게 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그 효과를 무시할 수 없어서 여전히 아침독서활동을 고수하고 있다.(좋은 활동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제발!)
학교는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특히 1학년 아이들에게는 학교에 가고 싶은 즐거운 이유가 최소한 한 가지는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거나 놀이하기, 맛있는 급식 시간, 그리기나 색칠하는 활동,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활동, 발표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 뿌듯해하는 것 등 다양하다. 단 그 밑바탕에는 질서와 예절 지키기가 깔려 있어야 한다.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아주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밑바탕을 1학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이들의 밑바탕을 만드는 방법 중, 교사의 잔소리는 필수다. 단, 사랑을 담아 한 명 한 명에게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교사는 세심한 목수나 마찬가지다. 목수가 나무를 하나하나 대패로 다듬는 것처럼, 아이들 한 명, 한 명 어루만져 줘야 한다. 꺼끌꺼끌한 표면이 맨질맨질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 문질러 줘야 한다. 한 번 했다고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수차례 반복해야만 원하는 만큼의 부드러움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정말 그렇다. 내가 말 한 번 한다고 해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사실 말 한마디에 바뀐다면 그게 아이일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입에 단내가 난다고 느낄 정도로 아주 여러 번 말해줘야 한다.
첫 발령받았을 때가 떠오른다. 2학기 중간 발령으로 2학년 교실을 들어갔다. 교감 발령받으신 선생님을 대신해 들어간 반이었다. 떠나신 선생님께서 손수 편지를 남기셨다. 지도하기 힘든 아이들이 있어서, 아픈 손가락을 남기고 가시는 안타까움을 편지에 가득 담으셨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교사일 뿐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지 못하고 전체를 대상으로 지도를 했다. 좋게 말해서 지도지 사실은 화를 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다들 조용히 안 해! “였다. 정말 창피한 말이다. 아이들 모두가 떠든 게 아니었을 텐데 애꿎은 아이들까지 덩달아 혼을 냈다. 지금이라면, 가장 크게 떠든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선생님은 OO이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어. 지금 잘못한 점은 무엇이지? “ 조곤조곤 잘못한 행동이 무엇인지, 선생님이 바라는 모습은 무엇인지, 앞으로 잘 행동할 것인지 다짐도 들으며 한 명에게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주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해져 있다.
아이들의 밑바탕을 만드는 방법 중 두 번째는 긍정 언어를 사용하여 말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실수를 했던 터라 말을 할 때마다 주의하고 있다. “복도에서 뛰지 마라!”는 말은 ‘뛰는 것’을 주목하게 한다. 긍정 언어를 사용한다면 “복도에서는 천천히 걸어 다니자.”로 바꿀 수 있다. 복도에서 지켜야 할 바람직한 행동 모습을 직접 언급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금지해야 하는 목록을 늘리지 말고 해야 하는 목록을 직접적으로 꾸준히 아이들에게 제시해 줘서 따르도록 안내해야 한다. 물론, 이, 론, 적으로는 말이다. 이 말을 하면서도 ‘말은 쉽지. 이게 애들한테 말을 하면 제대로 듣고는 있나.’ 싶을 때가 많다.
입학 직후에는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얼음이었다. 마치 얼음땡 놀이 중인데 아무도 ”땡! “하고 풀어주지 않아서 가만히만 있었다. 다행히 3주간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땡!”을 해줬다. 얼굴에 웃음이 피고, 표정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아주 환영할 만한 모습이다. 이제부터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지키며 학교 생활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손에 대패를 들고,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화의 감정을 배제한 채 긍정적인 말로 생활지도를 시작해야겠다. 나의 긍정의 힘이 고갈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