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레시피에서 설탕을 줄여서 넣어도 될까?
어딘가에 나에게 꼭 맞는 역할이 있다고!
나는 머핀을 잘 만든다! 고 스스로 생각했을까?
어젯밤, 머핀을 만들면서 설탕을 넣지 않았다. 오! 마이! 갓!!!!!
그 사실을 오븐에서 한참 돌아가고 있는 머핀을 보다가 깨달았는데 아직 이런 순간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저 구워지고 있는 머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아, 뭐 달지 않은 머핀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이번에는 초콜릿 가루를 넣었으니 그래도 단맛이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냥 끝까지 구웠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 구운 머핀을 한 입 먹어본 순간!
어머나! 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좀 썼다. 왜 쓰지?
긴급하게 초콜릿 가루의 정체를 확인해 보니 "무가당 무첨가! 순수한 카카오 100%"라고.... 게다가 "코코아 향과 살짝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고 단맛이 없어 식이조절하시는 분들께 좋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흠... 하하 하하.
이 코코아 가루 정말 정직하게 잘 만들었구나! 신용 사회라는 것을 이 코코아 가루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설탕을 넣지 않고 만든 머핀. 거기에 무가당 무첨가의 코코아가루가 추가되어 지옥에서 온 맛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만든 머핀은, 초콜릿 가루가 들어가서 색도 캄캄하고 맛도 쓴.
지옥에서 온 머핀이 되었다.
이렇게 쓴 머핀은 어떻게 살릴 수 있는 건가?라는 잠깐의 고민을 해봤고,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아래 두 가지였다.
1. 코를 막고 먹으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2. 수프에 담가먹는다.
그리고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 같은데, 2번이 유력하다.
그런데,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 설탕의 역할은 뭘까? 단순히 단맛을 내는 것에 한정되는 건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제과제빵에서 설탕의 역할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
우선, 누구나 1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단맛을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설탕이 갖고 있는 보수성과 흡습성 그리고 착색성이라는 특성에 있다.
우선, 보수성(왜 보습성이 아니라 보수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분을 유지하는 성질인 보수성을 가진 설탕은 전분의 노화를 지연시켜줘(완성된 제품의 수분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제품을 오랫동안 촉촉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달걀 거품을 이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경우 달걀 거품의 안정성을 높여 거품이 쉽게 꺼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두 번째 흡습성은 수분을 빼앗아 오는 특성으로 재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버터에 설탕을 넣고 휘핑한 후 달걀을 넣었을 때 분리가 되지 않는 이유가 설탕이 갖고 있는 흡습성 때문인데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진 계란 흰자의 수분을 설탕이 뺏어와 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재료를 넣는 순서도 중요하다. 또한 반죽에서 수분을 먼저 흡수하여 밀가루에 수분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글루텐 형성을 방해하여 제품을 부드럽게 해준다. 그러니, 부드러운 쿠키를 굽고 싶다면 설탕을 너무 줄이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착색성. 오븐 속 온도가 160도로 올라가면 당의 갈변인 캐러멜화와 단백질의 갈변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데 제품이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즉, 좋은 구움색을 위해서는 설탕이 꼭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 구움색이 캐러멜화라고 하기도 하고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냥 내 생각에는.... 캐러멜 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설탕은 생각보다 베이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어진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양을 지키지 않는다면 최종 결과물은 내가 본 레시피의 완성형이 아닌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에게 항상 동일한 맛을 제공해야 한다면, 자신만의 정확한 레시피가 필요하다.
설탕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특정한 상황이나, 특별히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요리에서는 모르겠고 베이킹에서는 꼭 필요한 설탕처럼
누구나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자리가 어딘가에는 있다.
그러니 아직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포기하지 말 것.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발견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잘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 주어진 일, 뭐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을 잘 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
못 만나게 되더라도 나를 쫓아오지는 말고...
사실, 이런 희망조차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는가?
안 그런가요? 뭐 그런 거죠.
참고로 설탕을 넣지 않고 만들었던 머핀은 모두 부셔서 다시 가루로 만든 후 설탕과 계란을 넣고 다시 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