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한 겹 나이테를 만드는 동안 풀들은 일생을 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촉촉하게 젖은 땅에서는 이제 겨우 뿌리를 내렸다 싶은 키 작은 나무 옆에서 마치 저도 차나무 인양 잎과 줄기를 엉큼스레 흉내 내는 풀들이 키를 훌쩍 키우며 차나무를 에워쌌다.
목마름에 시들 거리며 말라가던 차나무 사이에서 흠뻑 물을 머금고 더 빨리 더 푸르고 싱싱하게 풀이 자라고 있었다. 그냥 놔뒀다가는 풀이 차나무를 포위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고개만 쭈뼛쭈뼛 내미는가 싶더니 낮은 포복으로 하루가 다르게 점령지역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어린 나무들을 위한 젖줄과 남편의 고된 노동을 중간에서 가로챈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침입자들의 무리를 가만두지 않으리라. 마음속에서 적개심이 활활 타올랐다.
차나무들의 보금자리를 무단으로 침입한 그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전투 복장을 단단히 갖춰 입었다. 시시때때로 푸른 포탄이 터지는 최전선으로 발을 들였다.
침입자들은 우리의 매서운 공격에 맥없이 쓰러져나갔다. 일주일 만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우리 부부는 얼굴을 맞대고 통쾌한 승리를 선언했다. 침입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넓혀가던 점령지역을 빼앗긴 채로 잠잠해졌다.
그럼 그렇지 별 수 있겠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