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앞에 ‘막’이라는 단어가 붙은 걸 보면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닌듯하다. 막걸리가 그러하고 막과자가 그러하듯. 생생정보통에서 나온 한 전통 막국수집주인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주문 들어오자마자 지금 막 만든 국수라는 의미에서 막국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음식명에 들어간 “막”에 대하여 쓴 이병기 논문이 있는데 여기서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의 의미의 “막” 쪽에 조금 더 손을 들어주고 있다.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음식으로 메밀가루가 주재료다. 겉껍질만 벗겨낸 거친 메밀가루는 끈기가 없어 ‘막 부서져서 막 먹는 국수’라는 뜻을 가졌다고도 한다.
음식의 맛은 사람으로 기억된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는 슴슴한 막국수 같은 사람이었다. 막국수 면발처럼 슴슴하고 슴슴한 아버지는 알싸하게 혀끝에 매운맛 나게 하던 양념 같은 자식 여럿을 차별 없이 다독이며 타는 속을 달래며 살다 가셨다.
농사일로 햇빛에 그을린 막국수 면발처럼 거무스레한 피부를 지니셨던 아버지는 옷은 허름했지만 정갈한 몸가짐으로 평생을 사셨다. 집안에 큰일이 생겨도 잔잔한 물결처럼 크게 일렁거리지 않으며 그 자리를 지키셨다. 당신을 닮아서였을까. 아버지는 생전에 슴슴한 막국수를 참 좋아하셨다.
막국수는 거친 메밀가루로 면을 뽑는데 면발 그 자체로는 심심하고 구수한 산골 맛이 난다. 메밀반죽으로 뽑은 면발에 얹힌 양념이 강해지면 강한 맛을 내고 양념이 순박해지면 순박한 맛을 낸다. 알싸하고 맵거나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은 입에 넣는 순간 느낄 수 있지만 슴슴하고 구수한 산골 맛은 혀에 닿자마자 느껴지는 맛이 아니다. 추억이라는 양념이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막국수 면발 위에 얹힌 양념을 한쪽으로 슬쩍 밀어내고 거무스레한 면을 몇 가닥 집어 올려 혀끝에 얹는다. 그런 다음 입안에서 날카롭게 씹지 말고 뭉개듯이 잘라 넘겨보는 것이다.
처음 먹어보는 밍밍하고 맨숭맨숭한 면발이 툭툭 부서지는 맛에 실망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막국수는 양은냄비에 재빠르게 후루룩 끓여낸 칼칼한 찌개처럼 호들갑스럽거나 요란하지 않다. 밍밍하고 심심하고 끈기라고는 없어 막 부서지는 면발을 혀가 잡아채 후루룩 씹을 것도 없이 삼키듯 그릇을 비우고 명치 아래 깊숙한 곳에 다다라야 제대로 느껴지는 맛이다. 요즘같이 바쁘고 빠르게만 돌아가는 이 시대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꼭 함께 먹어봐야 할 맛이다.
마음이 허허로운 날 아무나 불러내 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말없이 마주 앉아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