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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하 Dec 21. 2023

#WPT4:항해사가 될것인가 말것인가

항해사와 비항해사의 갈림길에서

23살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을 만나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실습 항해사 시절이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3학년 1년동안 모든 학생들이 다른 배에서 실습을 마치고 4학년 개강을 하고 돌아왔을 때, 다들 군대 썰을 풀듯이, 다들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힘든 실습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실습 시절을 옆에서 본 것이 아니니, 모든 사람의 힘듦을 자로 재듯이 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어떤 일등 항해사님이랑 탔어?


   어떤 회사든 다 그렇듯이 사회 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좌지 우지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과 일하면 그곳은 아무리 힘든 곳이더라도 조금은 기댈 곳이 있고, 나쁜 사람들과 일하면 그곳이 아무리 천국이더라도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그때 친구랑 말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있던곳은 지옥이었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실습 항해사들이 모두 모여, 이제 채용 프로세스로 넘어가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부터 내 머리속에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찼다.


나, 이대로 배 타도 되는가?



일단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봤다

   그 친구의 물음 이후로, 나는 배를 탈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학교의 특성상, 거의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 모두 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때문에 배를 타지 않는다는 것을 고민하는거 자체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장점은 무엇인가

    우선 가장 큰 장점은 대세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대세를 따르는 편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오래 목숨을 지킬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모두가 안정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원래 뭐든지 남들이 가는 길 그대로 가는것이 제일 쉽고 편한길 아니겠는가.


    두번째 장점은 남들이 쉽게 해보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박에 승선한다는 것은 일반 직장인이 이직하듯이 쉽게 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선택 할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결정이었을 수 있다.


단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크게 먼저 떠올랐던 단점은 아직 내가 배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법을 아직 몰랐고,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나서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몰랐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삭히는 법만 알았다.


   그리고 가장 큰, 가족들을 못보는 문제가 있었다. 실습 당시에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건 나에게 큰 문제였다.


    그들과 희노애락을 나눌 수 없었고, 내 희노애락 역시 전할 길이 없었다.



승선 말고 다른것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장점과 단점 찾기는 이정도로 하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4학년 1년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진로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보기로 했다.


선택지 1) 다시 군인에 도전해봐?

    원래 나의 처음 꿈이었던, 군인을 다시 도전해보는 선택지가 떠올랐다.


    내가 군인이 정말 잘 맞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학교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명예사관에 지원했다. 학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체력 증진도 돕기도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내 적성에 대해서 점검해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후배들을 이끌고 하는 것은 좋았다. 근데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 군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만약에 군인을 하다가 그만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연결되는 것들이 없었다.


   이것은 탈락!


선택지 2) 직장인 : 육지에서 천천히 내가 뭐를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싶다

    두번째 선택지로, 육지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나, 해운 관련 회사를 다니면서 천천히 내 진로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직무중에 하나인  PSC 검사원 체험을 하러 가보기도 했다.


   흠…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뭔가 엄청난 흥미로움이 내 마음을 가득채우지는 못했다.


그래! 결심했어! 승선하기로!

   이 외에도 수많은 선택지들을 생각해보면서 나름의 직업 파일을 만들어 나가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마음이 설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바다를, 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면서, 앞으로의 선택지까지 넓혀줄 수 있는 승선을 선택했다. 항해사라는 자부심, 해운 물동량을 책임진다는 마음같은, 여성으로서 특수한 일에 도전한다는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선택했다


단, 조건부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에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내가 승선하기 전까지 ,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깨우치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운동을 선택했다. 이 운동이라는 것을 통해서 승선한 기간동안에,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온다면, 건강한 방법으로 풀고 싶었다.


    실습 기간동안에는 이 방법을 몰라서, 하루에 한개씩 라면을 먹는 것으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1년도 안되는 기간에 10키로가 찌는건 순식간이었다.


    이런 조건부 선택을 하고, 나는 망설임없이 항해사의 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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