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영하 Feb 05. 2024

#Let go anchor:돈받으면 프로?프로항해사되기

돈받으면 프로라던데, 저는 돈받는 아마추어인가요

돈받으면 프로?

요즘 최강 야구라는 야구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문구가 있다.


 돈을 받으면 프로다.


    돈을 받으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뜻일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항해사로 올라가던 당시에 가장 많이 고민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가 된다.


    그 당시에 내가 고민했던 내용은, 내가 실습 항해사와 다른 점이 뭘까 였다. 실습 항해사들은 지금은 얼마의 금액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매달 25만원의 금액을 받고 실습을 했었다. 돈을 소액 받기는 했지만, 내가 진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었다.


    근데 이제는 많이 다른 단계에 놓여 있었다. 돈을 거의 10배가 넘는, 거의 20배가 가까운 금액을 받게 되었고, 오히려 내가 그 실습 항해사를 지도해야 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장 많이 다른점은 선박을 조종하는 일을 오롯이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내가 실습항해사이던 시절에는, 다른 항해사님이 조종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아! 이렇게 조종하는 구나. 나라면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는 것 뿐이었다. 근데 이제는 내가 직접 저 선박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저는 돈은 받는데요, 프로는 아닌거 같은데요

    처음 3등 항해사로 배에 올라가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선박 내 사무실에서 나와 3등 기관사가 올라갔을 때, 1등 항해사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 첫날에는 너희도 정신 없을테니까 올라가서 짐부터 풀고 내려와라"


    진짜 편하게 쉬라는 걸까, 아니면 한바퀴 삥 돌려서 눈치를 주는 것일까. 도무지 이 선박이라는 곳은 말의 뜻을 곧이 곧대로 들을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속으로는 한번 생각을 해봤다. 그래도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풀고 방을 삥 둘러봤다. 실습 항해사일때 분명 지내봤던 컨테이너 선박의 항해사 방인데 왜이렇게도 어색하던지. 다시 초짜 실습 항해사 시절도 돌아간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첫날의 기분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을 몇장 찍고, 회사의 항해사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학교의 근무복을 입던 기분과, 회사의 근무복을 입게 된 기분은 너무나도 달랐다. 내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회사의  로고. 학교의 로고가 아니라 회사의 로고라는 것이 남의 돈을 받고 일한다는 기분을 주었다.

    사무실로 내려가는 길에서 나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부터는 돈받는, 프로 항해사다 ! 이전의 아마추어 실습항해사 시절은 없다 !"



프로 항해사가 되어보자


    사무실로 내려가서, 기존에 계시던 3등 항해사 선배한테 인수 인계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실습했던 선박과 같은 선종 즉, 컨테이너 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세하게 다른 차이점이 존재했다. 그래서 정신없이 인수인계 시간이 흘러갔는데, 그 인수인계 내용을 까먹지 않고 싶어서 동영상으로도 기록했다.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나의 마음은, 이 선배가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마음 뿐이었다.


선장님, 잠깐 올라와주셔야 겠는데요..

    이렇게 정박 근무에 대한 대략적인 인수인계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당직을 서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실습 항해사로 근무하던 때와, 3등 항해사가 되고 나서는 차원이 달랐다. 어떤 배가 위험한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했고 , 어떻게 피할지도 내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나 혼자 다짐한 방법은, 위험한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내 주변의 남자 동료들의 경우에는, 다른 선박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스릴을 즐겼었다. 그게 항해사로 일하면서 드는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의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쫄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위험이 도사리는 구역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싫어 했다. 실습때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장님의 지론은, 다음과 같았다.


"항해사들은 빠르게, 짧은 경로로 갈 필요가 없다. 도착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맞추는 것은 선장의 몫이니, 너희들은 멀리 돌아가도 된다.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가거라"


    이 말을 머리속에 담아두면서,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미리미리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조언도 통하지 않는 곳이 있었다. 어선들이 가득하고, 어망의 위치를 알려주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저 멀리서도 보일때면, 내가 보고 있는 레이더에 온통 장애물로 가득한 순간이 올 때면, 나도 어쩔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흔히들 선장님께 전화하는 순간, "call captian" 시점을 언제 할 것인지가 3등 항해사들이 가장 고민을 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3등 항해사들이 근무하는 시간은 아침 8시부터 12시 까지, 저녁 8시 부터 12시 까지로, 일부러 선장님들이 깨어있는 시간으로 배정된다. 아마 선장님이 주무실까봐 전화를 망설이는 3등 항해사들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이 선장님의 배려심을 십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고민하다가 다른 선박과 부딪히기 직전에 선장님께 전화 드리는 것 보다, 미리 전화해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성장하는 마음가짐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짜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전에, 손에 땀이 나는 정도로 나의 기준을 정했다. 그리고는 선장님께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역시나 선장님은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

일항사님, 주무시는데 죄송한데요...

    길면서도 짧은 첫번째 항해를 마치고, 처음으로 정박지에 들어가는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는 나의 첫번째 정박 당직이 시작되었다. 일항사님께서는 나에게 몇가지 당부를 하신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말이다.


"고민이 되는 순간이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전화해. 나는 잠에서 깼다가도 다시 잠 잘드니까"


    뭔가 이 말이 큰 힘이 되었다. 63빌딩보다도 큰 이 선박을 나혼자 8시간동안 지키면서 정말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나보다 덩치가 2배는 되보이는 외국인들이 와서 따지듯이 화를 낼때도 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말들을 늘어 놓으면서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순간도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없이 말할 수 있다.


" 일항사님한테 전화해야하는 일인지,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


    모든 직장인들이 같은 심정이겠지만,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하는지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이 신입들한테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지금도 기억이 남는 일이 있는데, 어떤 육지의 화물 관리자가 나에게 컨테이너가 하나 파손이 되었다면서 사인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내가 실습 항해사 시절을 되돌아 봤을때, 일항사님이 항상 직접 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에게 전화하지말고 뭐든지 너가 다 처리해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깐 고민을 했었다. 일항사님께 전화를 해야하는 것일까, 아닐까.


    이것 하나 혼자 처리 못해? 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나을까, 그런일은 진작에 전화 했어야지 ! 왜 너마음대로 처리해 ! 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나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전자의 말을 듣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주저 없이 전화를 했다.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지만, 목소리 속에 짜증은 없었다. 본인이 내려가서 서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전화 하나로 나는 2가지를 얻었다. 1등 항해사님의 업무 스타일을 파악했다. (그의 경우에는 본인이 처리하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의 얻은 점은, 1등 항해사님이 나의 업무 스타일을 파악했다 (고민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화하겠구나, 혼자 처리했다가 망하는 일은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이후에도 배에서 일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항해사로서 프로가 된다는 것. 즉 돈을 받는 밥값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혼자서도 알아서 배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과 어떻게 협업을 할 수 있고, 때로는 현명하게 조언을 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냐는 것이었다.



배에서 3등 항해사로 산다는 것

개구리 올챙이적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내가 3등 항해사가 되었다는 것은, 내 밑으로 실습 항해사가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나와 함께 일하게 되는 실습 항해사가 한명 있었는데, 내가 이 친구와 같이 일하면서, 내가 실습 항해사 시절 배웠던 것 처럼, 반대로 내가 가르쳐 줘야 하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이 친구를 만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바보처럼 굴던 실습 항해사 시절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었고, 나를 가르쳐주시던 다른 항해사님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배에서 3등 항해사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한 시간일까를 많이 생각해 봤다. 아마 내가 개구리가 되었더라도 올챙이적을 잊지 않고 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몇개월 차이로 실습 항해사에서 3등 항해사가 되었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 그대로의 마음을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시간 말이다.


책임감이라는 것을 배우게 만드는 시간

    정박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다급하게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항사 어딨어 삼항사 !"


    아무리 급한 일이더라도, 이렇게 나를 찾는 목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응급처치도구 들고 기관실로 내려와!"


    정신없이 선박 내 병원에 들려서 응급처치 도구를 들고 기관실로 내려갔는데 실습 기관사 얼굴에 피가 흥건했다.


    평소에 나는 내 손에 피만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내 상처도 치료를 못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반창고를 붙여달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3등 항해사의 역할 중에 선내 다친 사람이 생긴다면 치료를 해야하는 업무가 있는데, 이 역할이 나에게 가장 부담되는 역할이었다. 평소에 누가 다치면 내가 어떻게 치료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선내에 있는 응급조치 서적을 몇번이고 다시 읽어봤었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릴때도 정말 많았다. 내가 진짜 응급 조치를 해야 하는 순간이 된다면 패닉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실습 때 어떤 분이 나에게 해줬던 말로는, 옛날 옛적에 누가 선박에서 다친적이 있었는데, 소주 한병을 들고 오라고 했었다고 한다. 소주 한병을 열어서, 상처에 한 번 뿌리고, 다친 사람이 한모금, 그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 한모금을 마시면서, 그렇게 정신을 혼미하게 한 채로 치료를 했다고 하는 말을 해줬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담긴 의미는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배에서 다치면 다친 사람만 손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으로 들렸다. 그리고 이 외에도 배에서 다쳐서 치료를 제대로 못한채로, 불구가 되거나 죽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3등 항해사가 이 큰 선박의 돌팔이 의사가 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아가서, 도착해서 피가 흥건한 실습 기관사의 얼굴을 봤는데, 나의 원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180도 내 태도가 바뀌었다. 순식간에 상처를 소독하고 지혈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그 당시에 올바른 치료를 해줬는지는 확신할 수 는 없지만(내가 의사가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급처치를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기관사를 선내 병원으로 옮기고 육지의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연락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이 일을 통해서 3등 항해사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나도 이 선박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 05화 #WPT4:항해사가 될것인가 말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