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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빵이 Feb 06. 2024

#Anchoring1: 항해사 직업과 이별하는 이유

내가 항해사와 안맞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선박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anchor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행위는 선박에서 닻을 내려서 다음 목적지까지를 항해하기를 기다리거나, 또는 그 위치에서 다른 목적지를 배정받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내가 이 시기를 anchoring에 비유한 것도 이와 같다. 내가 어떤 다음 목적지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곳에서 기다리면서 다른 때를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항해사와 안 맞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대학교 때 항상 들었던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었다.


영하는 항해사랑 너무 잘어울려 ! 선장까지 할거같아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나 아니면 누가 선장을 할까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처럼 선박을 사랑하고 바다에서 일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항해사는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실습 항해사 시절부터도 나와 맞지 않은 부분들은 존재하긴 했었다. 하지만 단 1번의 승선만으로 나의 직업을 결정하기에는 속단이라고 생각했다. 그 선박에 타고 있는 사람, 그 환경 말고도 다음번의 승선은 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선택에 있어서 한번 더 기회를 줘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일이 지루하다는 것

    내가 항해사와 맞지 않다고 느꼈던 포인트는 첫번째로 생각보다 일이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항해사를 나의 직업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육지의 직장에서 닭장같이 앉아, 파티션 속에 숨어서 몰래 PC카톡이나 하는 그런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였다. 매일매일 다른 이벤트를 만나면서 그 이벤트들을 해결하며, 매너리즘이라고는 사치라고 생각할 것 같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왠걸, 너무나도 지루했다. 입항과 정박, 그리고 출항과 항해를 반복하면서 나의 하루하루가 너무 비슷했다. 매일 다른 내용을 공부하고 익히고자 책을 펼치고 앉으면, 다른 동료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하는 말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니면 대충 이 배를 타더라도 나에게 주어지는 결론이 같은 삶이 싫었다.


    나는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주변에 배울 사람이 많고, 그리고 나에게 자극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선박이라는 이 우물이 세상의 전부인줄만 알고 사는 사람들 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누군가를 특정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 글을 읽으면서 나와 함께 승선을 했던 사람들이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들을 특정해서 비난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그냥 나랑 맞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이 승선의 경험을 통해서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는 루틴한 생활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매번 다른 일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3학년 때 실습을 마치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실습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 생각이 난다. 다들 실습을 하면서, 항해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었다. 나의 경우에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는 입장이었다. 어떤 장비를 수리하고, 다시 고치는 일은 너무나도 재밌었지만, 항해 당직이 너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다른 친구는 항해사의 일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가장 좋았던 일이 뭐냐고 물으니, 선박에는 항해하는 지역의 등대와 등부표에 대한 목록을 관리하는 책자가 있는데, 그것을 종이로 잘라 변경사항을 업데이트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일이 굉장히 재밌었다고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자르고, 붙이고 하는 시간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근데 나는 실습 시간 중에서 그 일이 가장 싫었다. 아무런 소득도, 능력치도 얻지 못한채로 멍하니 종이만 잘라붙이는 신세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그 기억이 겹쳐보이면서, 내가 항해사를 계속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박에서 가장 꿀보직이라고 하는 자리는 2등 항해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과 왕래하는 시간도 적으면서, 상대적으로 경험치는 오르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2등 항해사가 되기 시작하면, 영영 항해사라는 직업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다음 진로에 고민이 커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것

    또, 내가 항해사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점은 내가 생각보다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부터 집에서 나와, 꽤나 독립적이게 살아가면서 내면적인 견고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평했었다. 하지만 선박에 승선해보니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꽤나 나에게는 크게 작용했었고, 그리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방에 혼자 돌아와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글썽일때가 많았고, 매일매일 술 한잔이 없으면 잠에 들지 못했으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다보게 되는 시간이 되면 나쁜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가, 이렇게 살아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가 하는 생각으로 휩싸여서 더 이상 승선 생활이 재밌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월급이 적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월급이 적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항해사라는 직업에 대한 연봉을 듣고, 그리고 나의 통장에 찍히는 월급 금액을 보면서 금융치료가 되기도 했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이 월급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각각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승선 기간 동안 못했떤 일들을 하느라, 보상 심리를 채우기 위해서 시계를 사거나, 해외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비싼 차를 렌트하면서 그 돈을 탕진하듯이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는 그 돈을 여자친구나 가족들한테 펑펑 쓰면서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그 돈을 모아서, 자신의 잃어버린 정신 건강을 육지에서 되돌려 놓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정신 병원이나 개인 상담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사연들을 모아놓고 보니, 이 월급은 더이상 큰 금액이 아니었다. 내 가치관에 있어서는, 이 돈은 내가 모으는 돈이 아니라, 나의 정신 건강을 잃은 것에 대한 일종의 생명 수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 항해사라는 직업과 이별하기로 했다. 내 주변에는 정말 항해사, 기관사의 직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사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항해사, 기관사의 직업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직업을 포기하고자 마음 먹기 전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을 거쳤다.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 만큼 더욱 떠나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나에게 보내는 실패자, 중도 포기자라는 시선들, (실제로 말로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가 나에게 보내는 아쉬움들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하지만 내 직업 인생은 너무나도 길었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직업이 이렇게 많은데, 이 놓친 것들을 아쉬워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은 내 인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쿨하게 떠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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