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개발자 면접기
내가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를 정하고 나서, 필수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이력서 란을 먼저 컴퓨터에 켜두었다. 모든 회사들에 들어갈만한 당연한 필수 기재 사항들이었다. 어떤 회사를 이전에 다녔었는지, 어떤 자격 사항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지 말이다.
내가 원래 다녔던 항해사들을 채용하는 회사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적을 것들이 많았다. 누구보다도 항해사로서 원하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자로 이력서를 적으려고 보니, 정말 하나도 적을 것이 없었다. 정말 머리속을 짜내고 짜내서 적은 것은, 대학교 때 컴퓨터 동아리를 했던 것, 졸업할 때 졸업 논문으로 파이썬을 조금 해봤다는 것 정도 였다.
그래서 그것만 적어두고 나서 뚫어져라 이력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나만의 스토리 텔링을 가져가기로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이 회사에서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회사가 아무리 뛰어난 인재,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라고 하더라도, 이 회사가 타겟으로 하는 해운 사업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반면 나는 해운 회사, 해운 산업에 직접 종사해 본 사람으로서 이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로 나의 이력서를 채워 나갔다.
나는 해운 회사에서 항해사로서 업무를 했으며, 귀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자율 운항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말이다.
이렇게 스토리텔링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것도, 읽을 것도 없는 서류를 제출하고는 떨어지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말자는 마음을 가지고 컴퓨터를 껐다.
그러고는 나에게 합격 통지가 왔다.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나의 경력과 이력을 보고 나에게 면접의 기회를 준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사전 과제를 전달 받았는데, 사전 과제에서 이 회사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코딩 실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이 분야에 대한 문제 의식과 그것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내용들로 사전 과제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 사전 과제 항목들을 받아들고 보니, 나는 더욱 이 회사에 대한 욕심이 났다. 나에게 이 회사가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전 과제에 대한 항목을 준비했다.
사전 과제를 준비할 때에도 이력서를 작성할 때와 가지는 마음가짐이 같았다. 핵심은 스토리 텔링이었다.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가려운 부분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봤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회사가 가지는 가려운 부분은 배를 타본 사람만이 아는 그런 경험적인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전 과제에 많은 비중을 이런 경험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논문을 읽으면 알 수 있는, 공부하면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것들 말고, 진짜 항해사와 선장만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나갔다.
이렇게 사전 과제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나니, 진짜 본 면접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본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물어볼지 연습하지 않고 현장에 도착하면 아무말이나 말하다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언니에게 SOS를 보냈다. 인사팀으로 근무하고 있는 언니에게 나에게 개발자 면접을 담당하는 면접관처럼 연기를 해달라고 했다. 언니랑 마주보고 앉아서 모의 면접을 시작했다.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흔한 면접에서 물어보는 대표 질문들부터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먼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근데 언니랑 마주보고 앉아서 이런 말들을 하려니 뭔가 부끄럽기도 해서 횡설수설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언니랑 옆에서 소파에 누워서 듣던 형부가 이런 피드백을 나에게 주었다.
" SNL에 나오는 주기자 같아. 완전 MZ 말투야 "
나에게 SNL에 나오는 주기자 처럼, 말도 떠듬떠듬하고, 울먹울먹한 목소리에다가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모를때는 눈을 하늘로 치켜세워서는 희번덕하게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시 나의 마음가짐을 고쳐잡고 간절한 마음 가득 담아서 답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어진 질문은 왜 이전 회사를 그만 두고, 우리 회사에 지원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내 두서없는 답변을 듣고 난 다음 언니의 피드백은 촌철살인이었다. 언니가 나에게 준 피드백은 이전 회사가 왜 별로 였는지에 대한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 아니라, 왜 지금 내가 지원한 회사가 좋은지를 중심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피드백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이직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피드백이었다. 언니의 피드백 핵심은 이전 회사를 깎아 내리는 발언 보다는 지금 회사를 높이 평가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회사를 오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언니의 잔인한 피드백에 눈물이 조금 고일 것 같았지만, 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노트에 적어 두었던 답변을 수정했다.
언니와 준비했던 대면 면접 예상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변들, 그리고 나의 사전 과제 준비물을 들고 역삼역으로 향했다. 나는 부산에 다니던 회사를 아직 퇴사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상경해서, 역삼역으로 가야만 했다.
역삼역 3번 출구로 나가는 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가는 길에 든 생각은, 영화 [주토피아]에서 주디가 기차를 타고 상경하는 장면이 있다. 마치 딱 내가 그 영화 속에 존재하는 주디와 같은 심정이었다. 회사까지 도달하는 길에 들으려고 준비한 나의 자신감 뿜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당찬 발걸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회사 입구에는 탁구대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탁구를 열심히 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스타트업의 모습이 진짜 이런 것일까 싶었다. 분명 9시가 넘은 업무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탁구를 치고 있다니, 내 눈에는 정말 구글같은 자유롭고, 성과만 내면 자유성을 보장하는 그런 유토피아 같은 스타트업의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면접장으로 향했다. 내가 지원한 담당한 부서에 담당 이사님이 앉아 계셨다.
이사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준비하신 사전 과제 발표를 천천히 발표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준비한 사전 과제에 대해서, 이 내용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라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열심히 발표를 시작했다. 중간 중간 이사님의 표정을 확인했을 때 끄덕끄덕 내 말에 동조해주시는 제스쳐를 취하시는 것을 보고 한시름 놓고는 내 발표를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이어나갔다.
이렇게 내 발표를 마치고 나서 이사님이 주신 피드백에서 나의 개발 경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회를 주실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주어지는 개발 프로젝트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강력 어필을 한 번 더 했다.
그러고는 기분 좋게 집으로 나서는 길에, 가족들에게 전화하면서 나 혼자 김치국을 마셨다.
"나 왠지 합격할 거 같아 !"
그렇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올랐다.
( 본 글은 출판을 목적으로 초안 작성 중인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
- 출판 예정일 : 2024년 12월
- 도서 분류 : 수필/수기
- 예상 독자 : 항해사의 삶이 궁금한 분들 / 개발자의 삶이 궁금한 분들 / 비전공자 개발자를 꿈꾸는 분들
- 출판 관련 문의 : titk12345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