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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서다 Feb 17. 2023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데 글은 쓰고 싶은 날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하여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이 플랫폼에서 글이라는 것을 유의미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오늘 내가 느끼는 것처럼 아무런 글감도 떠오르지 않지만 왠지 글을 쓰고 싶은 날을 문득 만나곤 하리라 짐작한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의 시작점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글이라는 것은 좀 덜 성급하고 더 정리되고 더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 어떤 것이라 생각한다. 대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외향적인 성격보다 내향적인 성격의 분포도가 많은 것 같아도 자신에게 맞는 매개체(글, 그림, 음악 등)를 통해서는 외내향의 구분이 불필요하듯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세상이니 일반화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매일 성과를 조금씩 쌓아 올라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공에 근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이 로봇도 아니고 더욱이 인공지능이 뇌를 대체하는 세상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감성과 낭만을 빼고 어떻게 살아가자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흔히 철이 들지 않는 이유는 행복을 찾기 위해 어린 시절의 지혜를 떠올리는 것이고 단순하고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도 무식해서라기보다 좀 더 낭만적으로 인생을 유용하게 허비하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사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먹으며 필요한 관계를 필요한 시간만큼 투자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일까? 사실 마케팅의 기능이 제품의 품질을 강조하는 것보다야 어떻게 하면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본능과 감성을 건드리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허영심은 소비의 언제나 좋은 촉매제가 되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드디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쉬는 것도 다시 일하기 위하여 재충전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 때에는 딴생각을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선입견도 여전히 있다. 인간에게 적절한 규칙이 사회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제 초연결 및 초지능 사회가 오는 시기에 좀 더 인간에 대한 연구를 진지하게 하여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간상이 펼쳐지는 것이 재밌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많은 회사들이 이 제도를 실험해 보았다. 유의미한 성과가 있는 회사도 분명 있었고 오히려 생산성이 약화되는 회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는 해결방법이 있듯이 미래 사회에서 재택근무가 대다수의 근무환경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곧 오리라고 예상한다. 인간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영역의 일이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에 사람에게 창의력과 높은 감성지능이 더욱 요구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재택근무의 유연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산업의 종목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역량발휘에 어떠한 환경이 좋은지 산업이 테스트를 해보아야 한다. 요즘 개그계에 MZ신입들의 사회풍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웃고 그칠일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업무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역으로 들어가 본다면 결국에 자신의 생산성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행해지는 자기 방어, 창의적 최소환경 세팅, 스트레스 관리 등이 워라밸 이상의 새로운 업무방식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압박과 자유의 적절한 세팅이 필요한데 각 개인마다 그 요구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재택근무는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더라도 필수적으로 선택되는 거의 기본급 업무환경의 옵션으로 작용할 것이다. 예컨대 늦은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최고의 업무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대에 근로시간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하루에 회사와 재택근무 비율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하여 언제나 회사 내 구축되어 있는 온라인 출근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근무환경을 스스로 계획하고 끊임없이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입사원들은 언제나 그 회사의 업무특성과 자신의 업무능력의 특수성을 결합하여 최상의 시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조합의 근무환경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개인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과 항상 연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모든 산업은 지식을 활용하는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되고 그 효과도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시대에는 전쟁과 선진국들의 인구감소로 미래 사회에 많은 환경적, 법률적, 사회적 문제들을 다음세대에 무책임하게 떠넘겨질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기에는 역시 무리였다. 어떠한 나라도 사회적인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기업이 영리를 위해서라도 이제 사회문제해소를 위한 인재영입에 기를 써야 한다. 정책이 의회주의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1인기업과 소기업 및 수많은 크기와 형태의 기업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한 사회질서를 새롭게 정립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하여 고민을 해야 한다.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분명 일반인들이 보기에 특수한 지식을 깊고 많이 가지고 있어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앞으로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종말이 짐작되는 시대가 올 것이기에 지식만으로는 결코 문제의 해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개인의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컴퓨터(AI)로 인하여 어떠한 전문가보다도 더 정확하고도 방대한 양의 지식들을 구해볼 수 있다.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이며 사회에 대한 적용 시뮬레이션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도 어떠한 학과라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수많은 종류의 지식들을 어떻게 산업에 녹여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문화와 예술산업에 엄청난 거품이 낄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영역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소수에 의해 사회는 항상 혼란스러울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와 남겨진 자들은 사회복지에 의존성을 더욱 키우고 무한 경쟁의 열정과 자유시장경제는 그 활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답기만 하다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법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항상 새로운 생각이 필요했다.


다행히 우리가 사람이라서 가능한 분야이다.


이러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은 항상 재미있다.


가끔은 무계획 여행을 떠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글을 써보며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보자.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육이다. 100년이 넘게 지속된 닭장교육이 지식의 습득이라는 기능보다 기존산업의 쓸만한 소비인력을 생산해 내기 위한 유일한 대책으로 고착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어린아이들조차도 학교의 목적이 교육보다 사회성과 도덕성의 함양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쉬는 시간과 체육시간 및 점심시간들을 제외하고서는 최소경비로 최대효과를 누리려는 어른들의 딜레마가 있다. 미래에는 교육의무화 제도가 무의미해지고 아이들의 적성을 찾아 특수교육이 소그룹으로 묶여 지역 내에서 활성화될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면 그것은 무엇을 같이 하기 위해서이지 어떤 것을 가만히 앉아서 배우기 위해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30년 후나 50년 후나 아니면 10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 산업의 특성상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활용법을 익히는 것이며 기본 소양을 쌓기 위하여 기초지식능력이나 기본지식활용평가등의 공인시험에 통과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스스로 개척하고 건설하며 기존의 사회를 변경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어 가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과 양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 또한 집단지성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교육에 있어서 특수한 지식의 습득을 위한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소수의 학습을 제외하고서는 오히려 지식의 습득력이 개별적으로는 현저히 떨어지며 지식 활용능력으로 그 간극을 메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성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도덕과 양심에 대한 결핍으로 소년범죄와 가족의 해체가 극대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기존의 교육기관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양심 및 도덕과 법률에 대한 교육이 개별 및 집단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각 시민권(그 시대의 성년의 기준이 되는 나이가 되기 전에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양심과 도덕적 가치관 및 최소한의 법률지식이 있음을 인정받는 증명서)의 발급을 위하여 국가시험이 통과의례처럼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적능력에 따라서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고 장애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의료전문가의 소견과 가족 및 지인들의 보증으로 면제될 수도 있다. 전쟁을 억제하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전쟁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미래에 아름다운 청사진만 그릴 것이 아니라 도덕이 무너지고 법치가 무너지며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백년대계를 다시금 백년대계로서 생각해보아야 할 이유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던 생각도 드문드문 나타난다.

완벽한 글을 쓰지 않더라도 좋다.

글이 인도하는 대로 끌려가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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