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아주 작은 낭만

by 올리브ㅓ

자격증을 따겠다고 뛰어든 분야는 너무 방대했다.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용어들을 보다가, 영어 공부 좀 하다가, 틀린 문제에 분개하다가 정말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의 늪에 빠져버렸다. 현재의 직장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도 실수가 없는 날이 없고 앞으로 이 일을 65살 정년퇴직까지 할 자신이 없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심장이 뛰고 잠이 달아난다. 뒤척이다 잠들어도 너무 옅은 잠이라 내가 자는 건지 깨있는 건지 구분도 안 갈 정도로 미미했다. 아니면 내가 그때 사경을 헤맨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단어를 토익 50개씩 외우고 있는데 며칠 후에 초반에 외운걸 다 까먹고 있을까 봐 불안하고, 단어로 외워봤자 문법에서 나오면 못 알아볼까 불안하고, 내가 다 준비가 되기 전에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까 봐 불안하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또 취업전선에 뛰어들면 난 아무것도 아닐 거 같아서 불안해 죽을 거 같다.


요즘 나는 불안과 초조로 범벅되어 있다.



그래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 강가를 걸었다. 그냥 걸었다. 계속 걸었다.



해 질 녘이라 뜨겁지도 않은데 강가라서 바람은 살살 분다. 사람도 없이 한산하다.


걷다 보니까 누가 일부러 가꿔놓은 꽃들이 모여있는 게 이쁘네. 강가에 햇살이 반사되는 게 이쁘네. 하늘도 이쁘고 사람도 없고 너무 쾌적하네.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냐. 풀냄새가 좋네. 저 조깅하는 아저씨 옷색깔이 멋있네. 집 주위에 이렇게 강가가 있어서 운동도 할 수 있네. 오랜만에 땀 빼면서 운동하니까 살 거 같네...



살 거 같네.



나한테 있어 낭만은 아주아주아주 사소하고 작은 한 순간이고 그 터무니없이 작은 순간 하나 때문에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거 같다.

내 모든 세포를 이 아주아주아주 작은 낭만이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이 스며들어 마음이 녹슬고 흔들려도 그 위에 낭만을 얇게 발라서 굳혀 또 하루를 버틴다. 사실 알고 보면 내가 느낀 낭만의 크기만큼 불안함과 초조함도 아주아주아주 작았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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