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첫 번째 직장에서 잘린 경험이 있다. 일을 못하긴 했다. 원래 사장이 나를 새로 개척하려던 일본 식품회사와의 통역용으로 고용했는데 일본 거래처가 거래를 안 하기로 했고 나는 딱히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고용 4개월 만에 잘려버렸다. 4개월 동안 통역대신 맡겨진 일도 참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슬펐다. 난생처음 잘렸다는 사실이.
두 번째 직장에서도 일을 못했다. 딱히 둬서 이롭지도 않고 가르칠 건 많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눈치가 보여 내 발로 나왔다. 그리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그냥 멀리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거기선 처음으로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쌍욕을 하며 토마토를 땄고 허리를 작살내면서도 즛키니를 따며 돈을 벌었다. 내가 뭘 해도 외국애들은 날 사람으로 인정해 줬다. 대신 내가 몸도 마음도 지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처음 삼 년은 발전도 없고 미래도 없는 전화통역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계약한 시설에서 요청하면 내가 사이에 껴서 통역을 하는 일이었다. 한국어만이 아니라 영어도 담당했는데 관광객이 하는 말이라고 해봤자 여기 어떻게 가요 하는 딱히 어려운 말도 아니라서 3년이나 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야 토익 기초 단어를 보며 끙끙대고 있지. 아무리 해도 월급이 동결이라 나왔다. 그 후 코로나가 터져 그 회사는 망했다고 들었다.
그 후 서비스직을 도전해 봤다. 유명 해외 브랜드였는데 일을 전보다 엄청 못한 건 아니지만 몸이 너무 고된 일이었다. 하루 여덟 시간을 서서 2층짜리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외국인도 많아서 하루종일 상품 설명을 하며 몸도 쉬었다. 도저히 오래 못할 거 같아서 또 일 년 만에 그만뒀다.
그다음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사무직으로 들어간 회사는 정해진 일 없이 모든 걸 해야 하는 이상한 회사였다. 콜센터를 겸하는 곳이라 주로 시골 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태양열이나 전기비 계약을 바꾸라고 이상한 소리를 해야 했고 실적을 못 내면 엄청 혼났다. 그 외 자료정리며 아르바이트생들 관리며 사장이 시키면 갑자기 점심을 사러 뛰어가야 하는 일까지 했다. 채게도 없고 사장이 곧 법인 이상한 회사였다.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가 될 때까지 밥 한 번 못 먹고 일한 적도 많았다. 그럼 또 사장한테 혼났다 자기를 나쁜 사장으로 만들 일 있냐고. 지가 일 하랄 땐 언제고.
그리고 사장은 누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30분이고 40분이고 쏟아내며 혼내는 스타일이었다. 주로 그 상대는 나였다. 아르바이트생이 자기가 말하는데 웃었다고 그 자리에서 자르는 것도 이 회사에선 자주 있는 일이었다. 사장 마음 밖에 들어서 잘리거나 사장하는 짓이 지긋지긋해서 무단퇴사하거나 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또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여자는 보통 뭘 해도 죽이려들고 남자는 기본적으로 옆에 끼려고 했다. 그러다 가장 총애하던 얼굴 반반한 대학생 남자애가 어느 날 연락을 끊고 잠적했을 때 처음으로 사장 얼굴에서 슬픔을 봤다.
나는 거기 일하면서 항상 실험실에 갇힌 고양이가 된 거 같다고 생각했다. 괴로웠고 차라리 죽고 싶어 여기서 뛰어내릴까를 하루에 열두 번씩 생각했다. 사장이 세워두고 40분 동안 너 같은 건 안된다. 쓰레기다. 너 따위에게 돈을 왜 줘야 되냐. 죄송하다면 다냐 닥쳐라 등등 폭언으로 정신을 뒤흔들 때 여기서 나가면 취업비자는 어떡하나 걱정만 하고 있었다. 사장 마음대로 내 월급을 매달 줄였다. 내가 일을 못해서 월급을 많이 줄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하면서. 난 그 당시에 이직보다는 그냥 죽고 싶었다. 다닌 지 햇수로는 겨우 3달밖에 안되는데 이때의 기억이 제일 깊게 남아 아직도 가끔 나를 베어내는 느낌이다.
겨우 도망쳐서 입사 시험을 세 번이나 보고 겨우 어느 대기업 직하 호텔 직원으로 취직했는데 이번에도 상사가 문제였다. 저번 직장의 상사가 분노조절장애였다면 이번 직장은 소시오패스였다. 입만 열면 누군가의 뒷담뿐이었고 누군가 1을 잘못하면 그 사람을 뒷담 해서 어느 센가 15의 나쁜 짓을 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 기가 빨리고 말이 안 통해서 거리를 두니 나는 상사랑 벽치는 오만방자한 인물이 돼있었고 내 인사평가 직전에 항상 일을 뒤틀리게 만들어 매번 정직원전환을 못하게 했다. 본래 3개월이면 될 정직원을 1년이 지나도 못해서 때려치웠다.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고 말하니까 엄마가 죽어도 웃어라 그게 사회생활이다.라고 말하던 얼굴을. 그때 그 인간을 죽였어야 됐는데.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나처럼 그 상사 때문에 그만둔다는 사람이 많아져서 회사 측에서 주의를 줬음에도 이번엔 아르바이트생들한테 갑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 중 하나가 증거를 모으고 노동청에 고발했다고 한다. 그 후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 죽었으면.
그렇게 돌고 돌아 이 회사에 들어왔다. 복지도 그동안의 모든 회사보다 좋고 일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 여전히 일을 못하고 민폐를 끼치는 인물이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는데 이 회사가 먼저 나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내가 이 고난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니면 슬슬 또 도피를 준비해야 할까.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음에도 난 전혀 발전하지 못한 거 같다. 내 부족함도 나중에는 낭만이 될까. 내 미련함도 결국에는 낭만이 될까. 또 이직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금 준비하는 자격증을 가지고도 새로 또 시작해야 하는데 내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부디 이 아픔이 낭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슬퍼하고 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 되는데 대체 뭘 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