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지문이 아무리 설명을 읽어도 모르겠을 때. 맞은 것보다 틀린 게 점점 많아질 때. 분명 외운 단어인데 뒤돌면 생각이 안 날 때. 나는 상상으로 도망친다.
요즘 하는 상상은 주로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해서. 이미 내 마음속에서 이번 직장은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돼버렸다. 여긴 그냥 준비과정을 뿐이다. 언제는 여기 들어와서 평생직장이라고 떠들어댈 땐 언제고. 나는 아직 30대고 세상은 백세시대고 나는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시간은 충분하다. 커리어나 권위보다는 잘 살고 싶다 생각에 오늘도 상상을 펼쳐본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하는. 고생과 노력을 건너뛴 가장 좋은 부분만의 상상을.
일본은 내 기준 한국보단 살기 좋은 나라다. 엄마아빠도 여기 있고 딱히 큰 자극도 없어서 살기에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요즘 그 변함없는 모습이 발전이 없다는 걸로 귀결된다. 내가 10여 년 전 와서 본모습과 일본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날로그로 돌아가고 여전히 사람들은 정치나 환경문제에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다. 그냥 80년대 버블시대 잔여물로 아직까지 사는 느낌. 그 과거의 자원마저 떨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한국에선 절대 살고 싶지 않지만 일본도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다.
그럼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기서 딴 자격증 한 줄 보단 몇 년을 일했다는 경력이 더 중요할 거다. 그럼 일단 일본에서 경력을 채워야 한다. 지금 여기서 전화나 받는 직업은 어디서도 경력이 되지 못한다. 그래 그러니까 일단 여기서 이직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자.로 또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 틀린 문제보다는 앞으로 자격증을 언젠가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기 시작한다. 내 사고방식은 요즘 계속 이런 식이고 현실과 상상의 괴리에 짜증이 난다.
그래도 상상조차 하지 않으면 답답하니까 난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언젠가 내가 노력만 하면 다가올 그날을 기다린다.
오늘도 지난달 출장경비 신청이 잘못됐다고 또 반려당해서 당장 그냥 때려치울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 한 열 번째 반려인 거 같다. 이렇게 서류 하나한 번에 통과를 못하는데 앞으로 내가 도전하고 싶은 분야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로 또 속이 쓰려와서 잠깐 말도 안 되는 상상 좀 하고 와야겠다. 개 같은 날들 속 날 살게 하는 상상이 바로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