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찍어 둘 걸
남들이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 해도 나는 그냥 넘길 요량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그러면서도 날마다 걷기와 달리기를 했더니 체지방이 다 빠져버리고 복근이 눈에 띄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복근이라. 내가 보기에도 멋지다. 절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허벅지 지방도 빠졌다. 대회 나갈 거 아니면 그만 빼라고 스포츠 샘이 한마디 하신다. 날마다 근육이 늘어가는 걸 인바디 측정 결과가 수치로 확실하게 보여주니 흐뭇하다. 갱년기에도 다 되네 뭘.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지인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지방은 계속 빠지고 근육이 붙는 게 지속되니 볼 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나는 못 빼는 살 어떻게 뺐냐고 부럽다는 건지, 진짜 걱정스럽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러다 몇 개월 만에 시어머니를 만났다. 생전 내 건강에는 관심 없던 시어머니가 건강검진을 하라로 난리셨다. 매일 전화를 하셨다. 스트레스다.
"얘, 너 아직 할 일 안 끝났다. 아이들은 키우고 가야지."
헐. 죽더라도 얘들 다 키우고 죽으라는 소리였다.
열불이 나서 안 먹던 다디단 빵을 2주일간 야식으로 먹었다. 근력 운동을 멈추고 또 2주간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제일 빨리 살찌는 요령. 견과류는 두 움큼씩 먹었다. 요놈의 살이 전신으로 고루 찌는 게 아니다. 복부와 허벅지에만 찐다. 아뿔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먹지 말걸.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복근이 사라지고 없다. 멋있어 보였던 체형이 사라지고 없다. 생전 처음으로 근력운동을 한 거였는데... 공들이진 않았지만 4개월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복근은 그렇게 한 달만에 감쪽 같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다. 믿기 어렵다. 다시 복부 지방이 빠져야 보이는 근육인데... 아쉬운 건 나뿐인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었던 지인들, 침묵이다. '역시 다시 쪘네.'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듯 말이 없다. 다시 갱년기 전형적인 아줌마형으로 돌아오니 안심인가? 고소해 죽겠는가? 물을 수도 없다. 속았구나! 건강 검진에는 이상이 없다. 에이, 까짓것 다시 만들어 버리지 뭐. 이번에는 증거로 남겨야겠다. 갱년기 바디 프로필. 더 멋진 복근을 다시 만들고 다음엔 꼭 증거를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