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전화 자살 유가족 드로잉 작품집
오래간만에 휴가를 낸 남편이 서울에 다녀오더니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리는 밤>. 생명의 전화 자살 유가족 드로잉 작품집이다. 자살 유가족이 그림과 글을 엮어 만든 소책자인데 애틋하여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글을 읽지 않았는데도 뭔지 모를 애잔한 마음이 그림에서 흘러나온다. 글은 더욱 애처로웠다. 화려하지도 않고 잘 그리지도 않은 그림 속에서 나는 뭔가 희망을 보았다.
10년 전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편이 한국생명의 전화에서 교육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던 때 새로운 프로젝트로 자살 유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였다. 당시 국내에는 단 한 권도 자살유가족을 위한 도서가 없었다. 영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남편을 도와 어쩔 수 없이 해외 자료를 찾아야 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가족이 자살한 후 남은 사람을 자살 유가족으로 칭한다는 것을. 유가족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라면 자살 유가족 역시 1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왜 자살 유가족 관련한 자료가 한 권도 없을까. 처음엔 의아했는데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도 이 정도의 죄책감이라면 한국은 수치까지 포함되었을 것이다. 유교 사회에서 가족이 자살한 경우 죄책감에 수치까지 더해진다. 고통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부의 손가락질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외부의 시선까지.... 자살유가족이라고 이름까지 밝히면서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내가 찾은 자료는 외국 사례라서 한국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첫 시범 운영이라 역시 지원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첫 해 자살 유가족을 찾아 프로그램을 독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원자가 없었다. 결국 아는 사람들을 입으로 입으로 안내하여 모집했다고 전해 들었다. 시범 차원에서 운영되었던 이듬해 서울시가 생명의 전화와 같이 일하고, 자살 유가족 프로그램은 계속 진행되었다.
당시 뭔 열정이었는지 내가 사는 지방자치단체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자살 유가족을 위한 센터 설치를 건의했었다. 우리나라에 단 한 군데도 아직 없으니 우리 시가 하면 딱 리더 격의 일이라고 하면서... 자살 유가족 센터는커녕 정신건강지원센터도 없던 시절이라 씨알도 안 먹히는 제안이었다. 그 후 나는 아주 가끔 드문 드문 자살 유가족 프로그램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한 동안 쭉 잊고 있었다.
한 때 '꽃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나비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는 오랫동안 마을활동가로 일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낸 탓에 활동가로서 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현실세계를 수도 없이 겪으며 좌절했다. 나비는 그만두고 내 향기라도 찾고 싶었다. 향기 있는 꽃으로라도 살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꽃도 아니고 잡초인 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는 밤>, 그 작은 소책자는 내 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했던 작은 일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용기를 주었다. 참 다행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내가 사는 시골까지 자살 유가족을 위한 센터가 설치되었고 자살 유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자살 유가족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니. 그리고 그 시작을 이름 없는 내가 아주 작게라도 기여했다는데... 용기를 내어 그림을 그리고 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준, <그리는 밤>의 참여자에게 감사하다. 이 책을 들고, 우리 지역 센터를 찾아가 전해줘야지. 또다시 못 말리는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