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스랑 Oct 18. 2021

마을 상상

특별한 이슈가 없는 마을에서도 평생학습은 필요하다


나는 특이한 위치의 마을활동가였다. 임대아파트의 임대사업소 소속이라 급여는 관리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관리소 직원은 아니지만, 관리소와 업무 협조를 해야 하는 깍두기였다. 분양아파트라면 관리소만 있다. 마을활동가가 채용되면 당연히 관리소장의 업무 지시 하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 관리소장이 마을활동가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니 업무에 관해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뭐든지 승인을 받은 후라야 진행할 수 있으니 발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 수 있다. 실제로 주민 조직과 관리사무소라는 조직 사이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실행할 때 재량권을 갖기 힘들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임대사업소 소속이라 관리소와 업무 분장이 확실해 관리소 주관의 행사 외에 모든 활동은 다 내 재량권으로 일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마을에 없어도 지속되는 마을공동체를 꿈꾸었기 때문에 뭐든 정확한 기준으로 진행하면서 주민에게 마을공동체성이 무엇인지 알리고 소통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후임 마을활동가까지 생각하면서 주민 입장이 되고, 강사 입장이 되면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소통, 형평성, 다양성, 소외층에 대한 배려, 봉사자에 대한 임파워먼트, 마을 밖 네트워크 등을 항상 고민했다. 회사의 협조가 필요하면 눈치 보지 않고 요청해서 최대한 괜찮은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했다. 필요하면 관리소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실적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사업보다 지속적인 마을공동체의 핵심, 마을공동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이해도와 진정성, 구성원의 신뢰를 먼저 생각하니 입장 차이는 많았다. 


일반적으로 분양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입주자 대표회의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니, 마을공동체 실적을 잘 내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마을의 지속성이나 공동체성, 민주시민의식보다는 익명의 다수, 불특정 입주민을 위한 소수의 희생으로 치러지는 행사 중심, 실적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 아이들만 많이 모이는 프로그램이나 문화센터처럼 취미여가 프로그램, 단발성 행사가 보조금 사업으로 공짜 사업이 되어, 보조금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는 마을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1년차나 2년차나 시간이 흘러도 모든 마을활동도 다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때이다. 민주시민성이나 주민 주체성에 대해 고민 없는 마을 활동이 과연 바람직할까 활동가로서 고민하게 된다. 나는 관리소 직원이 아니라서 해내기 어려운 일도 마음껏 부딪치며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리소 소속이라면 모든 활동가에게 관리소장 눈치보지 말고 나처럼 일하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 조직 구조상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활동가로서 공동체 방향성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직원 되더니 다 똑같네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원이 되면 활동가 마인드를 잊어버리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쉽게 일한다는 것이다.  


마을활동 초기에는 분명히 관리소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관리소 도움 없이 어떻게 홍보와 진행이 가능하겠는가. 할 수는 있겠지만 힘들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등 관리소가 태클을 걸면 힘 빠진다.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진정성 있게 활동하는 마을을 위해 관리소장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할까. 모든 마을에 대해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할까? 성과를 평가해서 차등 지원해야 한다면 공동체 활동을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거나 임대주택, 다문화 가정 혹은 조선족, 고려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마을,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지역의 공동주택이 먼저 마을공동체 보조금 사업의 우선권이 있다면 많은 사업에서 중복 수혜의 가능성이 높다. 공공에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아파트라면 기왕이면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를 선택하려 할 것이다. 같은 비용이더라도 가능하면 참가자가 많도록, 최대 인원을 실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결정권을 쥔 사람이 이걸 강조하면 소수여도 행복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배제되기 쉽다.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자. 대한민국 다수의 마을은 그냥 평범한 아파트, 공동주택에 산다. 특별한 이슈가 없다. 서로 똘똘 뭉쳐야 할 성미산 마을 같은 환경이 아니다. 생업적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이슈도 없으니 자체적으로 마을공동체를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신도시 젊은 세대, 공동주택보다 아파트가 아닌 오래된 시골 마을, 도심이어도 구도심의 나이 든 어르신이 마을공동체를 더 많이 참여하는 이유이다. 공동주택이 홍보나 공간 활용 측면에서 훨씬 더 쉬운데 관리소의 협조, 입대표의 적극 지원, 마을 주민의 참여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마을공동체 활성화는 매우 어렵다. 그나마 작은 도서관이 돌아가는 것은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은 일부 엄마 때문이다. 그 엄마들이 보조금 사업이라도 받아 아이들 중심의 프로그램을 돌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프로젝트 사업계획서를 탁월하게 잘 작성할 수 있다면, 마을 사업에서 그 아파트는 중복 수혜의 가능성이 높다. 경험이 많고 열심히 하는 소수가 있다면, 마을 프로젝트도 늘 그 마을이 그 마을이다. 하는 마을만 한다. 


평생학습으로 학습을 하나의 권리로 본다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배려대상자에 속하는 아파트만 주요 대상이 아닐 것이다. 복지 차원과 평생학습 차원은 관점 자체가 다르다. 사회적 배려 마을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마을공동체 활동 방향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마을은 보편적인 평생학습권, 행복추구권이 오히려 마을활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을 높여 주는 학습, 개인의 성장이 마을에서 가능하면 아무리 세대수가 적은 작은 마을이더라도 활동이 재미있어진다.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재미가 있으면 계속하기 마련이다. 스웨덴처럼 평생 학습을 권장하는 문화가 있는 복지국가는 한 번 학습동아리에 참가하면 20년이 지나도 계속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마을의 평생학습으로 행복해질 기회를 만들어내는 마을활동가 급여는 누가 지급해야 할까? 입주민이? 아니면 공적 기금으로? 논란이 많아서 몇 년째 정해진 것이 없다. 마을활동가 채용 사례로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고, 관리소도 마을공동체 활동을 진정성 있게 추진해 민주시민교육까지 가능한 작은 마을을 상상해본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슈 없는 공동주택에서도 평생학습은 필요하다. 자기 성장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구성원이 바뀌어도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아지트, 시립 도서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