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지트, 시립 도서관
대학을 떠나 처음으로 하루 오전이나 오후 내내 시립 도서관 자료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가 출입 허용시간은 최대 4시간이다. 4시간이 지나면 방역 시간, 모두가 퇴실해야 하니 다시 집에 가거나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도서관 앞 나무 벤치에 앉아 있다 다시 입실하면 된다.
서가의 넓은 창은 멍 때리기 좋다. 때로 눈을 들어 창밖으로 비치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나를 오래전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타임머신을 태워준다. 대학도서관, 친구도 없이 혼자 지켰던 서가의 묵은 책 냄새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건 잃어버린 이상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 멍을 때리며 있는 게 집에서 한숨 쉬며 누워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코로나 기간 내 생각은 그랬다. 집에서의 일상,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소소한 일은 내게 좌절을 주었다. 잘 해내지 못했으므로.
난 왜 이런 것도 못할까 아우성치는 소리를 과거에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집에 머물 때 극심한 우울증을 겪을 때였다. 갓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잘 키우고 싶어 몽땅 육아서를 읽었지만 책처럼 되지 않았다. 교과서대로 몸무게가 늘지 않으니 우울했다. 우울증 인지도 몰랐으니 어떻게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삶을 놔 버렸고, 황금 같은 시간을 황망하게 보내버렸다.
호르몬 변동이 극심한 갱년기, 이번에는 그놈의 우울이 나를 망치지 않도록 꼭 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대로 생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 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집에 있는데, 정작 아이들은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해야 하기에 일을 그만두었지만 정작 잘하는 게 여전히 하나도 없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20대이다. 방황하는 청춘이었지만 깔깔거리고 웃으며 모험도 많이 했으니까.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은 확실하게 있었으니까. 내가 뭘 좋아했지? 천천히 생각해보자 마음먹으니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퍼뜩 생각이 낚인다. 당연히 책, 노래, 여행이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 아이러니하게 편리할 때도 있다. 별 볼일 없는 일상의 현실이 세차게 후려치는 바람 같다. 나를 막 사정없이 때린다. 그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잠시라도 도서관에 가 책을 펼치면 모든 것이 쉽게 잊힌다. 책에서 눈을 떼면 다시 폭풍우가 들이닥치기를 반복하니 도서관은 폭풍 속의 눈 같았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일 뿐인데 폭풍을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세상만사 다 잊도록 고요 속에 나를 집어넣었다. 마치 일상을 넘어 높은 곳에 있는 글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거라 착각했다. 행복했다. 아니 안심했다. 혹시 조울증일까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책을 읽으면 차분해지고 책에서 눈을 떼면 불안해지는. 도서관이 내게 약이다. 우울증 처방약. 매일 복용하면 된다. 맘에 드는 도서관을 골라서.
시립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이 한정되다 보니 책 사냥을 하러 또 다른 도서관을 찾아 나선다. 어떤 서가는 널따란 창도 넓은 책상도 아니지만 공원에 자리 잡아 초록빛 내음만은 맡을 수 있다.
가끔 밖에 나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힐링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벤치에 누워 눈을 감는다. 고개를 일부러 높이 들지 않아도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시야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그러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타임머신이 비슷한 추억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정겹게 찰랑이는 파도 소리가 잘 왔다고 반겨주던 힐링의 순간으로. 무언가에 엉켜버린 마음이 풀어진다. 잊고 있었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좋은 경치를 보는 순간, 상쾌한 바람과 서늘한 물을 느끼는 순간, 좋아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라더니 정말 그렇게 행복은 일상 속에서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까.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싶다.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는 행복을 찍는 사진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넓은 창이 드리워진 서가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