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만 다 같이 마당 정리
더 이상 정원이라 불릴 수 없다. 그냥 마당이다. 가꾸기 수준도 못 된다. 그냥 정리해야 한다. 남편과 아들, 나 이렇게 셋이서 마당 잡초를 뽑았다. 추석이라 시댁에 가기로 한 날, 너무 많은 작업을 하면 힘들고 짜증이 날 것 같아 딱 30분만 하자고 했다. 무심코 더 일하면 짜증 낼까 봐 타이머를 설정했다.
“생각보다 30분이 길다.”
“그러네. 아직도 알람이 안 울렸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은근 남편도 아이도 알람 울리길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한 번에 쓱싹 베면 될 것을 하나하나 마치 쓰레기 줍듯 집게로 풀을 들어내는 남편, 잡초를 담아낼 봉투를 땅에 대면 될 것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 허공에 봉투를 대는 어정쩡한 아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부자의 마당 일은 누가 봐도 왕초보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남편이 마당일을 하면 어쩌면 그렇게 서투른지 데크 못질도, 전지 작업도, 잡초 정리도 내 눈에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한심해 보였다. 나무가지 하나 솎아주고 가지 치고 잡초 하나 제거할 줄 모르면서 마당 있는 집에 살려 하다니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여과도 없이 그대로 실려 이래라저래라 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이 참고 듣다가 내 잔소리가 계속되면 남편도 짜증을 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언성을 높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아서 할게” 낮아진 목소리 톤을 들어보면 얼마나 기분이 나빠졌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지나간 그때의 일들, 우리가 마당일을 하다 서로 기분이 나빠졌던 기억이 떠올라 무심코 나오려는 말, 잔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말을 멈췄다.
“알아서 하세요. 나는 들어갈게. 나는 일찍 나와서 30분 일했거든.”
우리는 기분 좋게 일을 마쳤다. 마당 잡초 제거는 하다만 채. 날마다 옆집 고양이가 개똥처럼 크게 싸놓고 간 고양이 똥을 그대로 둔 채. 괜찮아. 원래 우리 계획이 30분만 하는 거였으니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 또 같이 30분 하면 되지 뭐.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나 혼자 속으로 성질을 부렸다. 어쩌다 한 번, 아주 가끔씩 마당의 잡초를 마지못해 정리하면서도 화가 났다. 우리 집 마당을 보면 남들이 욕할 텐데... 우리 집 때문에 단지 이미지 나빠진다고 할 텐데... 그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아서였다.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올 때면 꼭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이 집이 정이 가지 않았다. 작고 작은 불만이 그렇게 쌓였었나 보다. 마치 다듬지 않은 마당의 잡초처럼. 가슴에 쌓였던 화를 잘 숨겼는데 자꾸 튀어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약간 달라졌다. 도서관 메이커 북스 첫 책 작업을 하며 글을 쓴 덕분이다. 유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을 막 적어 내려갔다. 지금의 내가 왜 이런 지, 다 과거 때문이라며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썼다. 눈치 보지 않고 막 토해내고 싶었지만 완벽히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 감정을 쏟아내며 처음 썼던 글쓰기가 왠지 모를 힐링이 되었다. 삶의 본질을 직시하게 했다. 지금 내가 처한 나의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감정을 얽히고 꼬이게 했던, ‘탓’했던 일에 대해 이상하게 화가 풀렸다. 그 후 남 시선을 신경 쓰려는 마음이 들면 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금은 억지로 그런 감정을 뒤로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 일상의 우선순위를 잡는 게 중요하다고 다독이며. 계속 연습 중이다.
잡초로 무성한 마당 때문에 식구들에게 화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남들 생각하느라 우리 집 식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가. 바보 같았다. 내가 남편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겠는가. 오십 보 백 보다. 나도 엉터리, 남편은 약간 더 엉터리일 뿐. 오늘처럼 아무리 적은 시간이더라도 다 같이 했으면 안 그랬을 텐데... 지나간 건 내버려 두고, 앞으로 잘하면 된다. 오늘처럼 다 같이 품을 내어 짜증 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풀을 뽑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