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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Nov 23. 2021

낯섦과 익숙함의 차이

똑같은 여행지를 여행하며 

어쩌면 여행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낯섦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영을 처음 여행할 때 낯섦이 불편했지만 감동도 그만큼 많았다.  다리가 아플 만큼 시내 곳곳을 걸었고 배낭도 무거워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여행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첫 여행이 참 좋았다는 생각은 두 번째 여행 때문이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 감동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 두 번째 여행은 낯설지 않아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다. 긴장해도 되지 않았다. 잘못 길에 들어서지 않았나 불안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낯섦에서 오는 탄성을 가져가 버렸다. 마치 새로 이사한 집 인테리어의 감흥이 점점 사라지듯 낯선 도시가 익숙해짐에 따라 더 이상 처음처럼 흥분되지는 않았다. 


같은 도시를 두 번 간 것도 시시해졌는데 경주 여행은 이번이 네 번째였다. 첫 번째 여행은 단체 여행이었다.  유적지의 많은 곳을 관광버스를 타고 설명을 들으면서 다녔다. 대부분 단체 여행이 그렇듯 참 많이 보았다. 바쁜 일정으로 부지런히 안내원을 따라다니면서 할 수 있을 만큼 집중해 들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인솔자에 의해 생각 없이 이동한 것이라 경주를 지리적으로도 파악하지 못했다. 두 번째 여행도 비슷했다. 관광버스는 아니었지만 대절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동궁과 월지 야경을 직접 보며 수다도 떨고 첨성대를 지나 한옥 숙소까지 걸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도 내가 직접 관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경주 여행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예쁘다는 것이 전부였다. 초저녁 지인들과 걸었던 길이 계림과 첨성대를 지나 동궁과 월지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네 번째 여행 덕분이었다. 황리단길에서 아침 산책을 했고 뭣도 모르고 지인을 따라 구매한 것이 경주빵이었다. 그때 숙소가 황리단길에 위치한 한옥호텔이었다는 것도 두 번째 여행에서는 몰랐다. 그저 경주 지리를 잘 아는 지인을 따라 경치를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뿐.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경주라는 도시는 천년의 고도로서 신비한 베일에 쌓여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세 번째 경주 방문은 배낭 메고 걸어 다니는 가족여행이었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었고 동선도 제대로 짜지 못했다. 대릉원 주변을 참 많이 걸었다. 벚꽃 피는 계절이라 보문단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첫 번째 여행의 숙소도 보문호에 자리했는데 한 번도 호수를 걸어보지도 바라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관광버스에 모든 것을 맡겼기에 보문호 경치 한 번 안 보고 버스만 타고 이동했다는 사실을. 인솔자의 강제성 없는 배낭여행은 촘촘하게 준비하며 코스를 짜지 않는 한 가성비는 적다.  사전 준비가 적었던 우리는 반나절은 보문호 걷기를, 다음 날 반나절은 대릉원 주변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가족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시도한 여행에서 다리가 아프다는 딸 때문에 둘째 날 오후 가족은 반으로 갈라졌다. 뭐라도 보고 배웠으면 하는 나는 아들과 같이 겨우 첨성대 주변을 서성이다 황남빵을 사 먹고 황리단길을 걷다가 끝이 났다. 딸은 아빠와 택시를 타고 다이소에 가서 그토록 바라는 택배 전용 칼인 당근 모양의 칼을 사고 신경주역으로 향했다. 아쉬움이 많은 여행이었다. 놓친 것이 많다는 생각에 다음에 또 경주에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네 번째 경주 여행은 둘째 아이가 주도했다. 일부러 아이에게 여행 코스를 짜보라고 맡겼다.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주고 싶어서였다. 지난번 가족여행에서 대부분의 동선은 파악했을 테니 아이에게 맡겨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고 싶어 운곡마을에 가고 싶다고 슬쩍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대로 였다. "그건 내 계획에는 없어. 내가 짠 대로 하든지 정 억울하면 헤어져서 다녀야지."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가 노선 짜기를 받아들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미 초겨울에 들어섰으므로 운곡마을의 은행 나뭇잎이 모두 떨어졌을 것이다. 아이는 세 번째 여행을 기초로 첫날은 보문단지를 중심으로 둘째 날은 대릉원에서 노는 걸로 노선을 짰던 모양이다. 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 코스를 바꿔 첫날 대릉원 중심으로 보냈다. 첨성대와 향교, 교촌마을을 들렀다가 최부잣집 구경을 하고 동궁과 월지까지 걸었다. 꽤 걸었지만 첫날 이른 코스였으므로 다리도 아프지 않았고 가방도 가벼워 걸을만했다. 세 번째 여행과 비슷해 지리적으로 전혀 헤맬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 여행에서 들렀던 맛집에 갔을 때 2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대기자가 50번이 넘었다. 코로나가 아닌 듯싶을 만큼 카페도 북적거렸다. 아이의 안내에 따라 익숙해진 보문호 산책길을 걸어 숙소에 다다랐을 때 깨달았다. 경주에 또 오고 싶지는 않다는 걸. 경주가 싫어서가 아니라 낯선 곳을 걸을 때 오는 자극이  적어서였다. 그럼에도 네 번째 여행에서 비로소 경주라는 도시의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함이 주는 깨달음인가. 이제야 누군가에게 안내할 수 있을 만큼 알만한데 더 이상 오고 싶지 않다니 여행의 신선함이 사라져서 그런 걸까.  


이튿날 불국사로 코스를 잡았다. 아이도 나도 불국사 코스는 처음이었다. 즉각적으로 버스 정류장부터 불국사로 가는 안내표지판을 찾아야 했다. 서로 어느 방향이 불국사냐고 물었다. 갑자기 잡은 코스라 준비가 안 된 턱에 앞서 가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아직 단풍이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불국사까지 걷는 길은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일단 들어서니 모든 게 익숙했다. 석가탑과 다보탑, 대웅전도 모두 그대로 있었다.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늦가을이다. 신라시대의 유적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한 40년 지나 불국사에 다시 오기는 힘들겠지. 내 나이 90이 되었을 때니까 그때는 이렇게 걷는 것도 힘들 나이가 될 것이다. 80 된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도 관절이 좋지 않아 이렇게 걷는 여행은 거의 못하신다. 인생이란 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더라도 생애 주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다. 엄마 인생도 처음이었고 청소년기 자녀를 둔 엄마로서도 지금이 처음이다. 이런 낯섦을 반겨야 하는 것이 인생일까.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니 어쩌면 이 인생이 시간의 노선을 따라 익숙해질 때쯤이면 죽음만이 낯섦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과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인생 노선을 짤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코스를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무상에 이어 인생 행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에 또 경주에 온다면 그때는 남산을 가자고 했다. 가본 적 없으니 처음 여행하는 낯섦을 즐길 수 있을 테니... 가이드 없이 온다면 우왕좌왕 헤맬지도 모르지만 처음 걷는 길에서 오는 즐거움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남산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시행착오는 줄겠지만 내가 뭐라도 사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경험자로서 누군가에게 안내를 할 수 있을 만큼 얻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 오십, 앞으로 살아갈 날에서 인생 여행의 낯섦과 익숙함의 장점을 모두 한 번의 경험에서 얻어가고 싶다. 앞서간 성인들이 명언을 찬찬히 읽어보며 사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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