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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Mar 14. 2023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어

봄바람에 뭔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동시 수업에 간 거다. 그것도 수강료까지 내고서. 누가 이끌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온 거다. 첫 수업 시간, 동시를 동요로 만든 노랫말을 들려준다. 앗, 백창우 동요다. 반갑다. 흥겨운 가락에 맞춰 즐겁게 동요를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아가들이 크고 나니 먼지만 폴폴 나는 다락방 어느 구석에 노랫말들이 자리 잡고 있을 거다. 동시를 언제 읽어봤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갑자기 웬 동시 수업?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동시를 읽다가 동심이라도 조금 배우고 싶어서... 아니, 봄바람에 취해서... 

지난겨울 끄적였던 글 때문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바라봤지만... 몇 번을 고쳐봤지만... 도진개진. 그런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아이 입장이 되어보는 경험은 정말 새로웠다. 아이 엄마로서 여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스쳐가는 생각이 아니라 글로 쓰는 작업이 아이와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작은 아이가 글을 읽더니,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 한다. 큰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말을 찾아본다 하더니, "음, 내 이야기도 썼네." 한다. 왜 내 이야기를 맘대로 썼어? 막 화내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참말 좋았다. 긴 글이었으면 안 읽을 수 있는데, 동시 같이 짤막짤막 끊어 써서 읽기가 수월했나 보다. 우리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그 글은 청소년시였다. 우리를 서로 이해시켜 준다고나 할까. 나는 짧은 글이 좋아졌다. 

이참에 한 번 배워보자! 봄이잖아. 와아, 봄이잖아. 봄은 늘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니까. 기왕이면 배우면서 쓰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동시 수업을 신청했다. 아니, 사실은 동시 수업 추가 모집한다고 문자가 날아오던 그 시간, 나는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이들 꼬맹이였을 때 올랐던 뒷산에 오르니 흐르는 세월에 감개무량했던 거다. 몇 년 만에 오른 뒷산에서 그때 더 많이 아이들이랑 놀아줄 걸 아쉬움이 있었으니 산바람에 취해 얼떨결에 아이 마음은 어떤 걸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다.  

도서관에서 동시책 세 권을 빌려와 시를 읽는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막 읽어도 되나? 뭔가라도 곱씹어야 하는 거 아냐? 에이, 읽다 보면 언젠가는 보는 눈이 생기겠지. 쓴 물을 왜 돈까지 주고 사 먹나 했던 커피였다. 어떨 결에 핸드드립을 배운 후 그 쓴 물을 매일 내려 마시고 있지 않는가. 지금은 내가 "이게 동시라는 거여?" 하더라도 괜찮아. 커피맛이 날 끌어당긴 것처럼 아이들 마음이 나의 봄날을 둥둥 떠다니게 할지도 모르잖아. 


"일기를 동시로 써 보래."

동시 숙제 이야기인데 

고딩 딸이 내 말 듣더니 

"엄마, 나 일기장 사줘." 한다

바로 쇼핑이다


동시 쓸 수 있을까

일기 쓸 수 있을까

우리 같이 끄적일 수 있을까


나는 동시로

너는 일기로

우리 통하는 하루다  


#동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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