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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Oct 22. 2023

현자의 강

병원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진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엄마 아빠의 노년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기차에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연일 진하게 마신 커피 때문 인지 말똥말똥했다. 기차에 비치된 책자를 뒤적거리다  짧은 단편에 눈길이 갔다.  후앙 기마랑스 로사가 쓴 아버지에 관한 글이었다.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는 현실 세계를 칭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날씨와 시간, 육체를 초월했으니 현실적인 강도 아니다. 여기에 없는, 저편의 세계. 그건  죽음일까. 아니면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비현실적인, 초현실적인 세계?  


궁금증으로 시작해 <제3의 강>을 읽고 나니 생각은  더 깊어졌다. 성실하고 반듯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배를 타고 떠나, 그 배에서 나오지 않고 강을 떠다닌 다는 이야기이다. 가족을 내버려 두고,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강은 가족이나 타인, 마을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라는 가족의 회유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 다른 가족들은 점차 아버지를 잊고 자기 삶을 찾아 떠났다. 아들만은 아버지가 염려되어 그 강을 떠나지 못한다. 한때 연민과 존경심으로 바라봤던 아버지가 이제 삶의 방해꾼 같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배를 타고 떠난 것이 자기 탓일 수 있다며 죄책감마저 든다. 아들에겐 온통 슬픈 기억만이 남는다. 

어린 시절 너무 좋았던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의 정체성을 미치도록 흔들었다. 외롭게 늙어가던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에 관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아버지의  세계를 자신이 대신 떠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제 그 배를 타겠다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이제 충분히 오랫동안 그곳에 계셨어요. 이젠 늙으셨잖아요. 돌아오세요. 더 이상 그러시지 않으셔 도 돼요. 돌아오세요. 제가 대신할게요.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해요. 어느 때고 좋아요. 제가 대신 배를  탈게요. 아버지 대신 배를 타겠어요.”  

정말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아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달아나 버렸다. 아버지는 영영 사라진다. 끝내 이 둘은 조우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나는 사막에, 내 인생의 들판 어딘가에 머물러 있어 야만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단축될까 두렵다.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면 그에게 요구할 것이다. 나를 데 려다 두 강둑 사이로 영원히 흐르는 강물 위의 자그마 한 배에 태워달라고, 그러면 나는 강 아래쪽으로 흘러가 다 강물에 빠져 강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강물 속으 로….” 

<제3의 강둑>은 아무리 부자지간이더라도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타인의  입장이 되어, 이제 당신의 자리에 내가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하더라도, 정말 그 자리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나는 내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저 멀리에 있는 아버지가 맞다. 고등학교를 전주로 진학하며 물리적으로 시골집을 완전히 떠났다. 이제  원가족보다 내가 결혼해 형성된 가족에 대한 책임이 더 커졌다. 아버지를 내 세계에 초청하고 싶어도 아버지가  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나는 내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현실세계에서 나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나를 떠나 이제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그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현실 세계 역시 내가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죽음이 찾아와 아버지가 떠나더라도, 나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나를 탓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게 오랜 세월 상처였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존재가 내 정체성을 흔들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 아버지를 내 삶에 초청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는 아버지에게서 달아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아직 완전히 끝나기 전, 바로 지금, 이 육신의 세계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만 몇 가지라도 아버지를 좋게 기억할 그 세계를 알고 싶다.


어쩌면  <제3의 강둑> 속에 부모에 대한 힌트가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저 건너편 내 어머니의 세계를 생각한다. 아버지의 강처럼, 어머니의 강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서로의 세계는 닿을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현자는 현자의 강에서 현자만의 배를 띄우고, 현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리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배우지 못한 시골 아낙네로서 당신의 최선을 다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옷을 챙기고 이제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 할 수도 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 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지금과 내일. 내일 좋은  기억이 되도록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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