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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Oct 22. 2023

'어이' 없는 말

의사 브리핑을 듣고 나온 오빠에게 물었다. 

 “엄마, 어떻대?” 

“얼굴이 다 시퍼렇게 멍들고 패이고 상해 가지고. 그게 뭐냐. 노인양반이. 그렇게 자전거 타지 말라고 기력이 옛날과는 다르다고 말렸는데도……. 아직 뇌출혈이  계속되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더라.” 

“지금이라도 엄마 뇌수술했던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으면 자기네들이 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겼을 거래. 큰 출혈은 아니라니까 자연 흡수되 면 된다고. 좀 기다려보자.” 

“아빠 식사는 어떻게 하셔?”

 “엄마가 벌려놓은 밭일 버릴 수도 없어서 그거 혼자 하시느라 바쁘시대. 다 치워버리지, 노인네들이 왜 그러고 사는지 참 답답하다. 이만큼 키웠으면 됐지, 뭘 더 준 다고 그러는지. 평생 고생했으면 자식들 주지 말고 당신들 일 안하고 살면 되지. 왜 그러냐고.” 


작년 이맘때였다. 큰오빠는 농사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하러 왔다가 몇 년을 더 짓겠다는 얘기를 듣자, 죽을 때까지 일만 하겠다는 거냐고 성을 내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몇 달 동안 가족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마 음이 풀어지도록 동생과 내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 가.

“니 엄마 어쩌고 있냐?” 

아빠 전화였다. 아빠가 엄마를 뭐라고 불렀더라?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여보, 당신’은 확실히 아니었다. 우리 들에겐 ‘니 엄마’였다. 한참 생각하자 어이없게 떠올랐다. ‘어이’였다, ‘어이’. 그 ‘어이’에는 존중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를 똑같이 불렀다. ‘어이!’  


70년대에 시골에서 도박이 성행했는데 아빠도 도박에  빠졌다. 돈을 잃자 다시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본전은커녕 계속 돈을 잃었다. 억척같이 살림하며 모은 돈이었으니 엄마는 쌍심지를 켜고 아빠를 찾으러 다녔다. 초롱불 켜진 집이 도박판이 벌어진 곳이었다.  

“야, 야아! 일어나라. 일어나! 아빠 찾으러 가야지, 안 그럼 살림 망한다. 철천지 웬수여, 웬수. 방안퉁수가 되어 갖고는 집에서만 큰 소리지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 는 것이 또 어디 가서 이 새벽까지 안 오는 것이여. 쌀을  또 몇 가마니를 해 먹는 거여. 내가 못 살어!”  

한밤중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 “밤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 거여.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사람 이 무서우니까.” 

그러면서 엄마는 어린 나를 앞세웠다.  어른들 놀음판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던 엄마와 나는 몇 년 동안 그렇게 초상난 집을 물어물어 아빠를 찾아다녔다. 컴컴한 논두렁을 걷고 또 걸어 집으로 되돌아오는 밤길에서  “어이, 여봐! 다른 집은 안 그라는디 여편네가 꼭 상관 을 해. 동네 챙피하게! 어디 딴 집들은 누가 찾으러 와?  누가?”  

혀를 끌끌 차며 쯧쯧거리는 소리 뒤에는 아빠 특유의  쓱 소리가 따라왔다. 

“으, 쓰윽!” 

어금니 사이로 침을 세 게 빨아들일 때 바람소리와 함께 하는 말끝마다 붙는 추임새다. 그 소리 뒤에는 꼭 주먹이 한 방 날아올 것만 같다. 엄마는 결코 지지 않는다. 논두렁에서 들을 사람도  없으니 더 악을 써가며 

 “어이! 집안 다 말아 먹을라꼬? 오늘은 쌀가마니를 또  얼마나 날렸어? 어이구야, 날마다 그놈의 담배 피우면 서 돈 다 꼬실러 없애고. 구경만 한다 혀놓코. 구경은 무슨 구경. 상갓집 가서 놀음판은 왜 껴들어? 본전도 못 찾 는 주제에. 본전만 찾고 안 혀? 이번 한 판만, 이번 한판만 하면서 다 날려 먹을라꼬. 왜 나 찾아오게 만들고 이  고생을 시켜? 이 철천지 웬수야.”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가 허공을 울릴 때 참말이지 악몽이었다. ‘이건 꿈이면 좋겠다. 꿈일지도 몰라. 아니, 꿈 일 거야. 원래 나는 멋진 집에 사는 아이일 거야. 언젠가  진짜 엄마 아빠가 나타나 날 데려갈지도 몰라.’ ‘야, 바보 야. 꿈에서는 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이럴 때는 그 냥 귀신으로 둔갑해 버려. 유령이 되어서 빨리 빠져나가 면 되잖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상상을 하며 딴 세상을 다녀오곤 했다.


싸움이 심해지면 나는 집에서 자지 못하고, 딴 동네에  갔다. 밤길에 물이 시커먼 도수로 다리를 건널 때면 철렁거리는 가슴이 곱빼기가 되었다.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 정신없이 울렸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창피하고 힘들면서도 무사히 도망 나왔다는 마음이었다. 옆 마을 홀 어머니 밑에 딸 하나인 친구 집에 가서 잠을 잤다. 트라우마가 될 만큼 나는 우리 집이 무서웠는데 엄마 아빠는 왜 그랬을까?  


아무리 해외 수상작이다 뭐다 해도 복수로 이를 갈며  주인공이 폭력을 휘두르고 악다구니를 쓰는 영화는 싫다. 결국 재미를 위해서이고 잘 될 거라는 결말이 뻔하지만, 피가 질질 나는 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안 보면 되고 안 들으면 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니 어쩌다 친구랑 영화를 보고 나오면  우린 대화가 안 된다.  

“너 방금 영화 본 거 맞아? 삼 분의 일은 봤냐? 뭐 한 두 장면 안 본 게 아니고 다 안 본 거랑 똑같잖아. 결정 적인 걸 하나도 안 봤잖아.”  

난 일찌감치 공포영화를 눈앞에서 봤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 몇 분에 한 번씩 빵빵 터지며 깨부수는 그게 왜  재밌는지 난 친구를 알 수 없고, 친구는 만날 휴머니즘 만 보는 나를 알 수 없다. 

“어이!” 

그게 왜 엄마 아빠가 서로를 부르는 말이 되었을까.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을 부를 때나, 동료 혹은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이라지만 상대방을 하찮고 깔보는  듯하게 들린다. 어투라도 조용했으면 달리 들렸을까. 미소라도 지으며 넌지시 불렀다면….  엄마 아빠 얼굴에 ‘미소’라는 건 상상조차 힘들고 어색하다. 달달달달, 마당에서는 늘상 시끄러운 경운기 소리가 나고 논에서는 탈곡기나 콤바인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사이에서  ‘어이’는 언제나 악을 쓰는 고함이었다. ‘어이’ 대신 더 의미 있고 다정한 호칭이나 차라리 엄마 이름 그대로, 현자 씨라고 불렀다면 힘든 시절을 좀 더 합리적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문득 지금이라도 ‘현자’를 살리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이’는 없애버리고, 현자 엄마,  현자 할머니, 현자 어르신, 현자 당신. 어떻게라도 현자를 넣어서. 어색하겠지만 아빠에게 ‘우리 현자 씨’ 이렇게 불러달라고 할까. 하지만... 아빠는 너무 어렵다. 

 “쓸데없이 가르쳤어. 고생만 섭 빠지게 했지. 가르쳐 봐야 쓸데없다니까.”  

“한 번에 쪽 꾀지를 못해. 나는 한 번 읽으면 다 외워 버렸는데, 결석해도 백점 맞았는데 왜 너희들은 내가 뼈  빠지게 고생고생해서 공부시켰는데, 공부를 못 허냐.” 

 “별것도 없고만. 암것도 아녀. 그것도 못 허면 죽어야지.” 


이런 말 때문에 평생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내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고, 부모의 기대에 부 합하지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하고, 명문대를 졸업했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노력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부모를 만나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모와의 자리는 가시방석이었다. 아무 때고 툭 내던지는 ‘며느리가 딸보다 낫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되었다. 그만큼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걸 꼭 딸 앞에서 들으라는 듯 표현해야 할까. 엄마는 내 우울함을 가중시켰 다. ‘며느리가 나보다 나으니 엄마 마지막 인생도 책임 져 달라하세요. 왜 자꾸 전화해서 나만 못 살게 구냐고,  결국 며느리들이 엄마 말 안 들어주고 엄마 전화 안 받 으니까 나한테만 전화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속마음을 나눌 대화는 아예 없었다. 엄마는 엄마 필요한  얘기만 하고 자식 말은 들을 새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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