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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기독교와 공산주의 갈등

by 조이스랑

도서 손님

저자 황석영

출판사 창비

출판연도 2018

독서기간 2024.12.27(큰글씨 143쪽,121쪽)

장르 장편소설

나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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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부정풀이: 죽은 뒤에 남는 것

류요섭 목사는 며칠 전에 이상스레 또렷한 꿈을 꾸었다.

그가 형님인 류요한 장로를 만나러 뉴저지에 가기 전날인지 아니면 사십여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인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꿈은 몇토막으로 나뉘어 있어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매 장면들은 아직도 조금 아까 본 것처럼 생생했다. 7


마지막 문장

뒤풀이 : 너두 먹구 물러가라

많이 먹구 이러니 말이 없구 저러니 탈이 없이

오늘은 고픈 배 불리구 마른 목 적셔 가구

진 거는 먹구 가구 머른 거는 싸가지구 질빵 걸어 메구 가구

여귀는 똬리 바쳐 이구 가구

동자귀는 오질 앞에 싸가지구

인정 받구 노자 받구 좋은 데루 천도를 허소사 121


나의 최고 문장

고향을 떠날 때에는 모두 눈물을 삼키고 가지만 우리는 침을 뱉지는 않았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작정했다. 이곳은 이제부터 마귀가 번성하게 될 지옥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상호는 그로부터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그 악몽의 나날을 보내면서 안에 감추고 있었을 뿐 서로를 원수보다 더 미워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젊은 날의 욱하는 감정 때문에 누이들을 쏘았다는 걸 잘 안다. 우리가 적이라고 정하여 살해한 행동은 바로 그 비슷한 일들이었다. 당에 들거나 직맹에 들거나 어쨌든 조그만 핑곗거리만 있으면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까지도 증오했다.

나도 그렇게 상호에게 되돌려 주었다. 나는 발산 동네 명선이네 집이 어디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명선이는 상호와 교회에서 청년회 일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든가 남쪽으로 가게되면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총을 쥔 내 발길은 명선이네 집으로 향했다.... 상호는 나보다 한걸음 먼저였는데 운봉마을을 지나며 작은누이네 식구까지 해치우고 떠난다. 나이들어서 가끔씩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고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상호녀석도 그랬을까. 2권 110


주인공에게 한마디

공산주의는 그렇다쳐도 기독교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이제 막 들어온 종교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만 믿고 싶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독교가 싫어진다. 아니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한낮 허상이었던가 싶다. 누구를 위한 학살이었을까.


작가에게 한마디

1950년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소위 '신천 대학살' 사건을 직접 겪은 기독교인의 증언을 토대로 <손님>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류요섭은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고향 방문을 계기로 과거의 아픔과 마주한다. 두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황해도 신천 주민의 갈등과 학살을 일으켰다. 가본 적 없는 북한 신천에서 벌어진 학살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현장감 있게 전한 글이었다. 낯선 북한 말이 읽기 힘들었다. 학살이어서 더욱 그랬다.

일제 강점기에 연이은 한국전쟁이 가져왔던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 살아야 했던 이야기, 가본 적 없는 북한의 신천에서 벌어진 이데올로기의 충돌, 결과적으로 벌어진 학살사건을 현장감 있게 전한 글이었다.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다가왔다. 북한어가 읽기 힘들었던 것은, 언어 자체보다 학살이 소재였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 더 머리가 아팠다.


느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가져왔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을까.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큰 충격이었다. 소설 제목 '손님'은 외부에서 유입된 이데올로기, 즉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상징한다. <소년이 온다>보다 더 학살적으로 다가왔다. 생생하고 잔인하게 느껴져 장면들을 떨치기 어려웠다. 장대현 교회, 평양의 부흥. 동방의 예루살렘. 늘 좋게만 들어왔던 북한 교회 이야기였다. <손님>은 그 동안 교회에서 들어왔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은 글이었다. 신천에서 공산당과 기독교가 서로를 학살한, 인구의 1/4을 죽인 사건이었다. 역사를 알고, 전쟁을 알고, 인간의 잔인성을 목도하면 종교를 갖기 힘들겠구나. 이것이 솔직한 감상평이다. 사탄의 자식, 십자군. 이런 용어를 남발하면서 종교가 인간을 죽인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 될까. 인간다운 삶이 될까.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추함이란 무엇일까.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도 정신이상자로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자가, 평범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는가. 추천 소설을 읽을수록 고통스러워진다. 황석영은 이 <손님>을 쓸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는 읽는 이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러웠을까. 문장들을 종이에 새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전쟁을 가장해서라도, 국지전을 일으켜서라도 권력을 잡고 싶었을까. 이미 권력을 쥔 자가 뭘 더 원해서 그랬을까. 쉽게 살상하려 하는 자는 악인이다.


한 줄 서평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일. 그 어떤 것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이념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인간이란.


제목 다시쓰기

혼들(헛것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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