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밀크맨

by 조이스랑


도서 밀크맨

저자 애나 번스 / 맨부커상 수상 작가

출판사 창비

출판연도 2019

독서기간 2025.2.2.(492쪽)

장르 장편소설

나의 별점 ****

4808936477837.jpg

첫문장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 날이었다. 밀크맨은 국가암살단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총을 맞은 일이 나에게는 전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일인 양 법석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와 안면은 있지만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닌’ 사람들이 나를 두고 쑥덕거렸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니 아마도 우리 첫째 형부가 만들어낸, 내가 이 밀크맨이라는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쫙 퍼져 있었고 나는 열여덟 살이고 그는 마흔한 살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사람이 몇 살인지는 알았는데 밀크맨이 총에 맞아 죽고 신문에 신상이 나와서 안 것은 아니고 그전에 총 맞기 몇 달 전부터 루머를 퍼뜨린 사람들이 마흔한 살과 열여덟 살이라니 역겹고 스물세 살 나이 차이가 역겹고 밀크맨은 유부남인 데다 조용히 눈에 뜨이지 않게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나한테 놀아나지는 않을 거라는 등의 말을 해대는 걸 듣고 알았다. 9


나의 최고 문장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고 80년대가 머지않았으니 441

그때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그래 하지만이 또 불쑥 끼어들어 엄마 본인도 한창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길래 내가 서둘러서 엄마 내면에 있는 생명의 힘이 전도되어 엄마가 다시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인생은 끝났어. 내 인생은 끝났고 다 지나갔고 남아있는 것을 가지고 근근이 사는 거야’ 하는 식의 노인 같은 태도, 이전까지 엄마가 늘 그랬는 태도 엄마가 더 이상 그러지 않게 되기 전에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런 태도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473


마지막 문장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492


주인공에게 한마디

마지막 문장. 정말 좋았어. 네가 웃었으니까. 이제 네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안도감을 주었어. 달리기 하면서 점점 살아날 거야. 너를 지탱하는 다리의 근육도 생기면서 마음의 힘도 자랄 거야. 나도 너처럼 달리기 하고 싶다. 너는 길을 걸어다니며 책을 읽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수군거렸어. 네가 아주 이상한 사람인양. 나도 길을 걸을 때 책을 읽는데..... 내가 읽는 이유는..... 걸을 때 집중이 잘 되니까 잘 읽혀서 그런 것 뿐인데...


작가에게 한마디

주인공 내면세계의 갈등이 치밀하게 서술되어 있다. 때로 답답했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심리묘사였다. 특정한 장소와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 이야기가 아일랜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인가. 진짜 밀크맨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진짜 밀크맨, 우유 배달부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에 맞아 죽은 밀크맨이 별명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름이었다니, 이것 또한 반전이었다.


느낌

작가의 매력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초반 100장까지는 몰입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밀크맨이 주인공인줄 알았다. 제목이 밀크맨이니까. 장소를 지칭하지 않고 네 편, 내 편, 바다 건너편, 반대자 편, 밀고자 등 나열되는 말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 밀크맨, 진짜 밀크맨, 어쩌면-남자친구, 어쩌면-여자친구, 이런 말도 낯설었다.

그러나 일단 초반을 넘어서면 이야기는 쉬워지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읽을수록 이건 지금도 통용되는 이야기잖아, 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만들고 부풀려진 소문을 또다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믿어버린다. 진심이 통용되지 않는 불신의 사회, 살기 위해서 가짜가 진짜로 변장해 버리는 사회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악몽 같은 70년대가 지나고 좀 더 나은 80년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이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있는 사회구성원과 권력을 쥔 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


한 줄 서평

말하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이 겪는 난장


제목 다시쓰기

이유 있는 침묵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