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깊은 산속 옹달샘

젠지독서캠프, 누가 와서 책을 먹나요?

by 조이스랑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기차를 두 번 갈아탔다.

최신 SRT에서 덜컹이는 무궁화호는 대만 아리산 가는 세계 3대 산악열차처럼 구수했다.

여행을 동경하게 하는 건 추억. 가슴에 따사롭게 비쳐오는 아침 햇살 같은 생기 넘치는 산 공기가 마음을 휘젓는다.

"아빠. 삼촌은 가족이 아니야. 식구지. 아빠가 그런 말 하면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야. 아빠. 강원도 가고 싶은 거 내가 내년에 보내 줄게. 1년만 참아."

"아빠. 기차에서 신발 벗는 건 에바야. 예의 좀 지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부녀의 대화. 아니, 아버지의 답은 들리지 않고, 오직 딸의 한 방향 말만 들려왔다.

에바야.... 그건 내 딸이 쓰는 말. 저 딸은 몇 살일까.

"엄마가 속고 싶어 그랬겠어? 그러니까 아빠가 관심을 가졌어야지. 먹고살기 힘들단 말이야."

뭔지 모르지만 난 점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뒤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활기찬 말소리.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빠끔 내밀어 활기를 따라갔다.

달걀을 나눠 먹는 80대의 어르신들. 여덟 명이다.

우리 엄마, 시어머니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어르신들은 여유로운 웃음꽃이다.

아! 어머니! 어머니도 이렇게 동무들과 나들이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혼자서 기차를 탈 수 없는 몸이 되어..... 방에만 계시는 나의 어머니!

그들이 서로 건네는 달걀을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르신, 저도 달걀 하나 주세요.

그렇게 말을 건네기만 하면 주실 것 같은 정감 있는 풍경이다. 끼어들고 싶다.


곧 주덕역이라 짐을 챙겨 열차문을 열고 하차 준비 통로로 나갔던 나는 지남철에 끌리듯 다시 열차칸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짝 다가가 몸을 숙여 물었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 여든 넷이지."

"제 엄마랑 똑같네요. 시어머니도 같은 연세인데... 이렇게 나들이를 가시니 참 좋아 보여요. 어디 가세요?"

"묵호 놀러 가는 중이야."

다른 어르신이 내게 달걀을 건넨다. 마치 내게 달걀이 필요한 듯.

"아, 감사합니다. 맛있겠어요."

내 말을 듣고는, 달걀을 하나 더 건넨다.

"달걀이 조금 깨진 거라, 이거 안 깨진 것도 더 먹으라고."

나는 기쁘고 즐겁게 달걀 두 개를 받아 든다.

"즐거운 여행 하시고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덕역은 아담한 시골역이었다. 택시를 탔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는 토끼처럼 산속으로 달려갔다.

지금 나는 천 권 독서 캠프가 열리는 젠지 캠프로 달려간다.

내가 찾는 건 따스한 인생.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는 에너지.

나를 이해하고 나와 같이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돕는 책을 만나러 달려가는 길.


기차는 내게 추억을 남기고, 어린 시절 기차에서 먹던 달걀을 건네고,

이제는 나이 들어 꼬부랑 할머니가 된 엄마를 생각나게 하고

아빠가 후회 없는 여생을 살길 바라는 딸의 마음을 듣고

옹달샘에 찾아온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깊은 산속 옹달샘 도서관에서 내가 선택한 책, 내가 나를 위해 들려주는 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산속에서 산책을 한다. 여기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마치 동무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말을 같이 밥을 먹으며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내 말이 어디로 이상하게 새어나갈까 걱정하지도 않고.


무엇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가.


고도원 책방에서 노트북을 빌린다.

감사한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전 남기고 싶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오늘 지금 이곳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젠지캠프와 이곳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가족에게, 그리고 여기 이곳 낯선 이에게 노트북을 빌려준 이에게...


딸이 태어나면 심는다던 오동나무, 하성란 작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연상되었다. 오동나무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워내는 건 처음 본다.


KakaoTalk_20250517_223038457_13.jpg
KakaoTalk_20250517_155424925_02.jpg
KakaoTalk_20250517_133303149_01.jpg
KakaoTalk_20250518_073547283_01.jpg
KakaoTalk_20250518_073547283_06.jpg
KakaoTalk_20250517_150224749_04.jpg
KakaoTalk_20250517_145144070_04.jpg
KakaoTalk_20250517_144307990_05.jpg
KakaoTalk_20250517_150003870_01.jpg
KakaoTalk_20250517_145144070_03.jpg
KakaoTalk_20250517_144307990_06.jpg
KakaoTalk_20250517_145144070_07.jpg

영어가 부끄러운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려는 그는 멋진 선생이다. What is the moral of this story?

KakaoTalk_20250517_124646027_04.jpg
KakaoTalk_20250517_145651672_0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