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생이라 소설반 강의에서 쫒겨나고, 수필반에서도 쫒겨났던 3월. 문학관의 봄날이 서러워 그날 나는 오랜만에 다락에 올랐다. 흐트러진 공간을 뒤적이다 서른에 쓴 신년 계획서를 읽게 되었다. 장장 A4 네 장에 걸쳐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피라미드식 세부 목표는 치밀했고 각오는 단단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살고 있는 현재의 나와는 생경할 만큼 다른 사람이 거기 있었다.
똑같은 질문을 달고 현시점에서 다시 답변한다면 어떤 계획서가 될까. 무척 흥미로운 실험이라, 서른의 계획서를 다락에서 가지고 내려와 1층 거실 데스크톱에 타이핑을 했다. 내친김에 <다락에서 찾은 것>, 이란 제목의 글 한 꼭지를 썼다. 서른이 쉰둘에게 다시 뭔가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도전을 했다.
글은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다. 나는 그날 즉시 이력서를 수정하고 몇 곳에 지원서를 보냈다. 응답이 왔다. 순식간이었다. 시립도서관에서 일주일 한 번 영어동화책을 읽고 아이들과 놀았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시작은 다른 가지를 뻗었다. 오래전 그만두었던 일. 떠나오며 지난 십오 년 간 절대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 맹세했던 일.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서른이 내민 도전장은 책만 읽고 습작만 하던 일상을 확 바꿨다. 민낯으로 매일 가던 도서관 대신 화장하고 학교에 간다.
다시 영어책을 뒤진다. 내가 썼던 글의 마지막 문장처럼 내 어깨에 내려앉은 뭔가를 털어낸 기분이 들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이것이다.
나는 다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