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타인이라는 거울

by 진시율

Part 2 : 타인이라는 거울 — A양의 관찰 기록

1화. A양, 상처로 숨 쉬는 사람

약과 부작용, 떨림과 어눌함의 언어

A양은 늘 떨리고있다. 그 떨림은 두려움의 표시라기보다는, 살아있음의 증거처럼 보인다.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말ㅇ을 하다가 문장이 가끔 매끄럽지 못해 끊긴다. 그 틈 사이로 약의 향기가 퍼져나온다. 입술이 마르고, 말끝을 흐리고 느려지며, 눈빛이 멍해질 때면 나는 그녀의 몸안에서 수많은 약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함께 느끼곤 한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먹는다. 진통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그 조합은 언제나 조금씩 바뀌지만 그녀는 그것을 '루틴'이라 부르지만, 그 루틴은 사실 매일을 살고자하는 생존 실험이다.


약의 부작용은 그녀의 언어를 바꾸었다. 단어가 느려지고, 문장이 흐릿해진다.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기 긴 호흡과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 공백 속에서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고, 생각을 다듬는 듯 하다. 나는 그 느린 리듬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태연한 척 그 호흡의 끝을 기다린다. 세상은 너무 빠르지만, 그녀의 말은 시간을 되돌리는 듯 인간의 속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눌함 속에서 진심을 느낀다. A양의 몸은 약의 지도 위에 존재한다. 어떤 약은 손끝을 떨게하고, 어떤 약은 잠을 빼앗아간다. 또 다른 약은 눈동자의 무게를 천근만근하게 만들며 눈동자의 생기를 빼앗아간다. 그녀는 그것을 모두 견디며 하루를 살아간다. 약은 그녀의 적이자 친구이고, 그녀의 방패이자 족쇄이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이게 나일까? 약이 만든 나일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다. 나 또한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대답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이미 서로같은 곳을 보며 서로를 마주보는 이야기이다. 약이 만든 평온과, 약이 남긴 공허. 그 경계선 위에서 흔들거리는 우리 둘이다. A양의 몸은 약에 길들여져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날 것 그대로이다. 약이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이 그 안에서 계속 부딪힌다. 그래서 그녀또한 아직은 너무 인간적이다. 그게 그녀에게 고통이자 아름다움일 것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치유받고 싶은” 욕망

A양은 늘 사람 이야기를 한다. 'A군이야기, B군이야기, C군이야기' 이야기를 듣다보면 은연중에 느껴진다. "사람이 무섭지만, 사람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는 마음이 말이다.그녀의 말은 참 모순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하며 공감한다. 그녀는 사람에게 상처받았고, 그 상처 또한 사람에게 치유받을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관계 안에서 무너지고, 관계 안에서 다시 일어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며칠을 무너지고, 또 다른 누군가의 따뜻함에 며칠을 버티며 지낸다. 그녀의 감정은 극단을 오간다. 사람이 그녀의 병을 악화 시키기도하고, 사람이 그녀의 약보다 더 큰 약이 되어 그녀의 병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감정의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감정으로 살아가고, 감정으로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제나 타인으로부터 비롯되어 그녀 자신이 누군가의 마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관심이든, 단순한 시선이든 상관없어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하루를 버틸 힘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욕망은 동시에 그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사람에게 기대는 만큼 실망도 커진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무심한 표정하나가 그녀의 하루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녀는 너무나 '감각적인 인간'이다. 세사의 모든 감정을 피부로 흡수한다. 그래서 상처가 빠르게 나고, 아물기도 어렵다.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늘 '사람'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사람에게 아파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하는...그건 경국 나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둘 다 인간에게 상ㅇ처바ㅏㄷ고, 결국 사람을 통해서 회복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한다.






감정과잉, 눈치보기, 애정결핍의 연쇄

A양은 간정이 풍부하다. 그러나 그 풍부함은 축복이라기보단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처럼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표정이 바뀌고ㅡ 목소리가 흔들린다. 조금의 말투 변화에도 눈빛이 달라지고 피해망상적 양상을 보인다. 조용한 순간이면 눈물이 차오르는 지 고개를 흔든다. 그녀의 간정은 언제나 '과잉'의 상태에 서있다. 누군가의 말이 귀에 박히면 그 말의 진짜 의도를 분석하고, 또 해석하고, 그 결과를 머릿속에서 수십 번 돌려보려 애쓴다. 그녀의 뇌는 늘 '해석 모드'로 돌아간다. 그건 피로한 감정의 반복이자 굴레이다.


그녀는 또한 눈치를 본다.대화 중 상대방의 표정, 어조, 호흡을 끊임없이 읽는다.그건 생존의 기술인거 같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눈치채기위해...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ㅛ, 그 눈치가 오리려 그녀를 더 아프게 만든다. 다 알면서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을 원한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법을 잊었다. 그녀는 늘 주려고 하고, 맞추려한다. '좋은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건 애정결핍이 만든 행동이지만, 그 안에는 간절한 생존 욕망이 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A양의 그것은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고, 필사적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약보다 강한 진통제다. 그리고 그 약이 떨어질 때마자, 그녀의 몸은 떨리고, 마음은 다시 무너진다. A양은 상처로 숨을 쉰다. 상처가 아물면, 숨이 막히고, 상처가 다시 생기면, 비로소 호흡이 돌아온다. 그녀에게 고통은 삶의 리듬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감각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문득 깨닫는다. 그녀의 병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간다움'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병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오늘도 아프지만, 그 아픔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2화. 분노와 애정의 경계

분노조절장애의 파동

A양의 분노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건 천천히 쌓여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빌려 세상에 쏱아내는 듯한 파동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단 한 마디 말에, 단 한 번의 표정에 그녀는 갑자디 무너지고, 폭발한다. 그 순간의 그녀는 낯설다. 눈빛은 흐려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목소리는 떨리고, 손 끝이 경련처럼 움찔거린다. 감정의 열이 피처럼 끓어오르다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진다. 그건 '화'라기보다 감정의 발작이다.


분노가 터질 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말은 칼처럼 쏟아지고, 손은 허공을 휘두른다. 무엇을 깨뜨렸는지, 누구를 상처냈는지도 폭발이 끝나고 나서야 천천히 알게 된다. 그녀는 그때마다 고개를 숙인다. "내가 왜 그랬을까."그 말이 그녀의 하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녀의 분노는 악의가 아니다. 그건 단지, 누적된 고통의 언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억울함, 참아왔던 외로움, 이해받지 못한 상처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다. 그녀의 분노는 타인을 미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본능이다.


그녀는 말한다. "분노가 올라올 땐, 몸이 먼저 움직여요. 심장이 빨라지고, 머리가 하예져요. 그때부터는 그냥...내가 아니에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그녀의 분노는 자아의 단절이다. 그녀는 분노 속에서 '자신'을 잃고, 폭발이 끝나야 다시 '자신'을 찾는다. 분노조절장애라는 이름은 너무 임상적이다. 그 단어는 그녀의 감정의 복잡함을 담지 못한다. 그녀가 견뎌온 시간, 이해받지 못한 외침, 그리고 그 모든 걸 삼켜야 했던 날들의 누적된 무게. 그 모든 것이 '조절되지 않는 분노'로 터져 나온다.


그녀의 분노는 누군가를 향한것이 아니다. 그건 세상 전체를 향한 절규이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이다. "나는 여기 있다. 제발 나를 무시하지 말아줘."그 외침이 너무 커서, 그녀의 몸이 그걸 버티지 못할 뿐이다. 분노가 지나간 후, 그녀는 늘 같은 표정을 짓는다. 텅 빈 얼굴, 축 처진 어깨, 눈동자 안에 남은 잔욜. 그녀는 울지도 못한다. 분노가 눈물보다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그 말은 매번 무너진다. 왜냐면 그 분노는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몸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분노는 사실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녀는 늘 버림받을까 봐, 무시당할까 봐,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렵다. 그 두려움이 쌓이면, 폭발로 바뀐다. 그녀는 소리치고, 부수고, 밀어낸다. 하지만 경국 울며 다시 문을 두드린다. "미안해, 나, 그냥 너무 무서웠어"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깨닫는다. 그녀의 분노는 파괴가 아니라 도움의 신호라는 걸. 그녀응 분노를 통해 '살고 싶다'고 말하고있다. 그건 이상한 구조지만, 그녀에게 분노는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담정이다. 죽고 싶을 때조차 분노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폭력의 기록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니까. 그녀가 다시 울 수 있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 그녀는 여전히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다. 분노의 파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후회가 남는다. 그녀는 그 후회를 안고 또 하루를 산다. 그게 A양의 리듬이다.

폭발 - 죄책감 - 후회 - 다시 시작 그 반복은 끝이 없지만, 그 반복 덕분에 그녀는 오늘도 살아있다. A양의 분노는 불안정하고, 거칠고, 불완전 하지만 그 란에는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열망이 깃들어 있다. 그녀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싸움의 진동을, 하루하루 기록하고 있다.




폭발과 죄책감, 그리고 ‘후회’의 무게

분노는 언제나 순식산에 끝난다. 하지만 그 끝은 결코 가볍지 않다. 폭발의 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 뒤에 찾아오는 침묵이다. A양은 분노가 지나가면 멍하니 않아 있다. 손 끝은 여전히 떨리고, 호흡은 불규칙하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공기 속에는 잔열이 남아 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눈빛은 초점 없이 허공을 떠돌고, 가끔 입술이 움직이지만, 그건 말이 아니라 숨 같은 사과다. "내가 또 그랬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서진다. 그 한마디에는 수백 번의 후회가 들어 있다. 그녀는 기억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그 순간의 자신이 얼마나 낯설어지는지를. 그 낯섦이 두렵고, 그 두려움이 곧 죄책감이 된다. 그녀는 자신을 미워한다. "왜 나는 늘 이렇게밖에 못할까?" A양의 후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건 감정의 잔해 위에 쌓이는 자책의 층이다. 그녀는 폭발 후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 감정이 빠져나간 자리엔 공허가 남고, 그 공허 속에서 자신을 다시 찌른다. 그녀는 분노로 타인을 공격하지만, 그 불꽃은 경국 자신을 태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분노가 폭발할 때보다, 그녀가 조용히 자신을 탓할 때가 더 아프다. 폭발은 일시적이지만, 후회는 장기적인 고통이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 울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미워한다. 어느 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화를 잘 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화내는 내가 제일 싫어요." 그 말은 잔잔했지만, 그 잔잔함이 오히려 깊은 절망으로 들렸다. 그녀는 화를 내는 순간보다, 화가 사라진 뒤의 자신을 더 견디지 못한다. 죄책감은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다. 밥을 먹을 대도, 거울을 볼 때도, 그녀는 문득 자신을 질책한다.'나는 또 상처를 줬다.' 그녀의 하루는 늘 후회와 사과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사과는 언제나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사과한다. "오늘도 참지 못했구나, 미안해"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그녀는 아직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자기 혐오 속에서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 아직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후회의 무게는 크다. 그건 단순한 반성이나 눈물이 아니다. 그건 [감정의 사후]같은 것이다. 감정이 한 차례 죽고나면 , 그 시신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일. 그녀는 그 장면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무너진다.


나는 그녀의 후회를 기록하며 문득 깨닫는다. 그녀의 분노와 죄책감은 결국 같은 근원에서 흘러나온다는 걸. 둘 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뒤틀린 형태이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하다가,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자신을 미워한다. 그 미움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원한다. 그건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이다. 그녀의 후회에는 이상한 온기가 있다. 그건 아직 마음이 상라있다는 증거다. 진짜 절망은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그 고통을 기억할 줄 안다. 그건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을 바라보며 느낀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도, 여전히 인간의 온기가 남아있다는 걸. 그녀의 분노는 불꽃처럼 사라지지만, 그 잿더미 위에 남은 후회는 작은 빛처럼 꺼지지 않는다. 그 빛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는 한, 그녀는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A양의 분노는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사랑의 잔향이다. 그녀의 후회는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폭발을, 그녀의 침묵을, 그녀의 후회를 모두 포함해, 그녀는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 오늘도 기록한다.


약이 끊겼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약이 끊기면, 세상이 기울기 시작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그건 소리없는 붕괴읻다. 천천히, 그러나 너무나 확실하게. A양은 약을 하루라도 거르면 금게 알아챈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손끝이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린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치 세상이 저 멀리서 무너지고, 그 잔해가 천천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소리 같다. 그녀는 말한다. "약을 안 먹으면... 세상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아요." 그 표현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녀의 세상은 그 약 위에 세워져 있다. 약은 단순한 화학적 안정제가 아니라, 그녀의 '존재의 구조물'이다. 그게 끊기면, 기둥이 부서지고, 그 위에 있던 감정, 기억, 사고가 모두 한꺼번에 무너진다.


몸이 먼저 무너진다. 혈압이 불안정해지고, 손이 저리며, 몸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몸인데도 낯설고, 자신의 손인데도 제어가 되지 않는다. "내 몸인데 내 말이 안 통해요."그녀의 그 한마디에는 공포가 담겨있다. 그 다음은 마음이 무너진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고,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는 게 두려워진다. 숨이 가빠지고, 마음속에 '공포의 물결'이 밀려든다. 그 물결이 지나가면, 세상이 낯설어진다. 익숙한 방도, 손에 익은 컵도, 모두 다른 세계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그 때를 "현실이 끊어지는 순간"이라도 말한다. 약이 끊기면 현실은 실처럼 풀린다. 감각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시간은 이상하게 느리거나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공포가 있다.


그녀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때마다 분노가 찾아온다. 그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붙잡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녀의 분노는 무너지는 세계를 억지로라도 붙잡기위한 시도다. 그녀는 울부짖고, 소리치고, 몸을 흔든다. 그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자신을 현실에 죾어두려는 절박한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지켜보며 느낀다. 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몸으로 느껴진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그건 진동처럼 전해진다. 벽이 금 가는 소리, 바닥이 사라지는 소리, 그리고 그 아래오 한 없이 떨어지는 인간의 숨소리.


약이 끊긴 그녀의 눈빛은 허공을 본다. 마치 그 무너지는 소리를 보고 있는 듯 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희미한 해방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그 해방은 위험이다. 그건 포기와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약을 삼킨다. 그 작은 알약들이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운다. 눈빛이 돌아오고, 손끝의 떨림이 멎는다. 세상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약이 만든 인공의 정적이다. 그녀는 그 정적속에서 숨을 고른다.


"이제 괜찮아..."그 말은 안정의 선언이 아니라, 다음 붕괴까지의 유예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오늘의 안정조차 조심스럽게 다룬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기록한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직접 듣지 않아도, 그 파동은 그녀의 몸을 통해 전해진다. 그 파동이 멈추는 순간이 곧, 그녀의 하루릐 끝이다. 약이 그녀를 살리고,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다. 그녀는 그 경계에서 하루를 버텨낸다. 그리고 나는 그 하루를, 하루하루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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