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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3. 2022

[환전상과 아내] - 종교화를 풍속화로

퀸텐 메시스

메시스(Quinten Metsys : 1465/1466-1530), [환전상과 아내], 1514.


이 작품의 제목은 [고리대금업자와 아내], [금화재는 사람과 아내]나 [은행가와 아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플랑드르 회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하학적으로 묘사된 실내공간의 고요함이다. 한쪽 창문으로 빛이 새어들어오고 가운데 문으로도 빛이 들어온다. 또 다른 빛의 출처는 관람자의 방향에서도 빛이 비치는 걸 가정할 수 있다. 인물이 여럿 등장해 있어도 전반적인 느낌은 모든 동작이 멈추어지고 조용해보인다. 예를 들어 피터 데 후크의 [두 남자와 술마시는 여인](Pieter de Hooch(1629-1684), La Buveuse, 1658, Paris, Musée du Louvre)이나 얀 스틴의 [나쁜 패거리](Jan Steen(1626-1679), La Mauvaise Compagnie, 1665-1670, Paris, Musée du Louvre)를 보면 분명 어수선한 장면임에도 전체 실내 분위기는 조용해 보인다. 루브르에 소장된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이나 [천문학자]의 실내 분위기는 그야말로 고요 그 자체다. 그 결과 인물은 순간적으로 동작이 멈추어지고 영원히 화석화된 느낌마저 든다. 플랑드르 화가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영속적인 장면으로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환전상과 아내]에서 부부가 나란히 앉은 환전상의 가게가 앞면에 확대되고 뒷배경은 선반에 들러붙은 듯한 갖가지 사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런 것들은 관람자의 시선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감각의 세계다. 반면 볼록거울과 오른쪽으로 열린 문틈으로 열린 공간은 우리의 시계를 확장시킨다. 볼록거울은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게 아니라 왜곡되게 반영한다. 그렇지만 관람자가 볼 수 없는 반대쪽 바깥의 먼 풍경을 보여준다. 열린 문틈에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축척으로 따져볼 때 앞의 두 인물에 비해 문틈에 등장한 인물은 터무니없이 작아보인다. 마찬가지로 형상이 일그러지고 작지만 볼록거울에 반사된 바깥 세계도 망원경을 통해 보는 풍경처럼 보인다. 볼록거울에 비치는 영상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전지전능한 신의 시점을 제시한다. 어떻게 보면 그림 속의 그림으로 나오는 볼록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는 창조주의 세계다. 거대한 기념물처럼 자리잡은 두 인물 앞에 놓인 조그만 거울에 비치는 풍경은 제한된 실내 공간보다 훨씬 넓은 바깥 세계다. 두 인물이 등장하는 앞 화면이 현미경으로 관찰한 듯한 세밀한 묘사라면 볼록거울에 비치는 영상은 망원경으로 본 듯한 광활한 먼 풍경이다.
 

 볼록거울에 나타난 공간에서 환전상의 가게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가 보충된다.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가정할 수 있는 채색 창문이 밝게 보인다. 볼록거울 효과로 조금 뒤틀리긴 했어도 창틀은 뚜렷하게 십자가 형태를 띤다. 오른쪽으로 창문 턱에 기대 책을 읽는 터번을 쓴 남자와 창이난 고딕 성채 같은 건물이 보이고, 왼쪽에는 나무 위로 고딕 성당의 뾰족한 종탑이 보이며 그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세속적인 순간성을 드러내는 두 주인공에 비해 볼록거울 오른쪽에 붉은 터번쓰고 책 읽는 남자는 영속성이나 불멸성을 환기시킨다. 이 인물은 어쩌면 은행가이거나 환전상의 손님 또는 교회 종탑과 가까이 있는 걸로 보아서 성서를 읽는 사람일 테다. 어쩌면 얀 반 아이크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이나 [롤랭 제상의 성모](1435)에서 그랬듯이 퀸텐 메시스도 거울을 통해 슬쩍 자기 자신을 집어 넣었을 지도 모른다.


 중세 때 볼록거울은 주변 공간 전체를 재현해내는 전지전능한 신의 시각에 비교되었다.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진실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사람한테 결점을 고칠 수 있게 함으로써 신중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기 만족적인 물건으로서 자만과 음욕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간한테 차츰 타락되어가는 이미지를 되돌려주고 그 반사가 찰나라서 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흠집없는 신성한 모델을 반사하지 않는 거울은 인간을 속일 때 사탄이 쓰는 거짓말과 유혹의 공간이 된다. 이렇게 거울은 정신의 환영과 육체의 탐욕을 키운다. 모양이 볼록하고 어두운 빛깔을 띠어서 불길한 영향력을 끼치는 "마법사의 거울"로도 불렀다. 거울의 반사는 최면상태를 불러일으켜 외부 사물이나 내적으로 억압되고 맹목적인 주의력을 고정시키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14-15세기 때 햇빛을 흩뜨리는 볼록거울은 환영과 허영의 상징이고, 태양빛을 집중시키는 오목거울은 영적인 빛을 가리켰다.

또 거울은 중세 때 마리아와 연결되기도 한다. 마리아는 죄를 짊어지지 않은 새로운 이브 같은 무결점인 완벽한 존재다. 마리아는 늘 젊은 아가씨, 긴 머리채를 어깨에 늘어뜨린 처녀로 표현된다. 마리아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이런 순결하고 아름다운 마리아의 주변에 닫힌 정원, 다윗의 탑, 분수, 백합꽃, 별, 장미, 무결점의 거울이 배치된다.


 16세기 때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오가는 물품 교역의 중심지였다. 앤트베르펜, 브뤼헤, 암스테르담이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에서 발행된 금화를 환전하는 일이 대표적인 경제활동으로 꼽혔다. 이 세 도시는 유럽의 남북을 연결하는 미술 교역의 중심지기도 했다. 이 시절 인쇄술의 보급과 발맞추어 인문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이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16세기 초 메시스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상업도시 앤트베르펜은 가장 풍요롭고 가장 현대풍이며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도시가 된다. 메시스는 경제 발전으로 새로 생긴 손님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새 메세나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는다. 작품의 주제가 세속적인 성격을 띠지만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역할도 맡는다.


 탁자 왼쪽에 놓인 크리스탈 병이며 금화, 진주를 비롯 선반 위에 놓인 값진 물건들로 보아 이 부부의 부유한 삶이 잘 드러낸다. 부부가 입은 옷이나 치장한 보석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칼라나 소매 부분에 모피를 단 부부의 윗옷이나 부인의 이마 위에 꽂은 금핀이며 두 남녀가 낀 반지를 통해 풍족함이 잘 묻어난다.  

물질주의자인 환전상이 금화를 재는 한편 정신적 활동을 하는 부인은 명상에 잠겨 있다. 오른손에 금화 한닢을 쥐고 왼손으로 저울을 든 환전상은 정신을 집중하여 능숙한 솜씨로 무게 재는 일을 능숙하게 해낸다. 한편 부인은 성서의 기도서 부분을 펼쳐두고 있다. 책이 귀한 시절이라 여자들이 거의 책을 접하기 힘든 상황인데 책을 펼친 모습이 자못 놀랍다. 더욱 놀랍게도 신앙 활동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 부인의 시선이 금화 쪽을 향하는데다 부주의하게 오른손으로 책장을 구기고 있다. 선반 위에 놓인 금기의 과일 사과나 오렌지는 남편의 행동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중세 때 여성은 남성한테 위험하고 교활하며 위선적이고 사악한 존재로 비쳐진다. 돈에 눈이 먼 환전상의 푸른 정맥에 드러나보이는 떨리는 손을 통해서도 탐욕이 엿보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두 인물은 앞의 두 주인공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찰자로서 부부의 사적인 공간에 참가한다. 나이 든 사람이 집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마주한 젊은 사람한테 일장 훈시하는 듯하다. 볼록거울에 나오는 창문 앞에서 책을 읽는 남자는 화가의 위치에서 약간 왼쪽으로 처져 있다. 화면 전체의 색의 배합은 여자의 붉은 윗옷과 성서의 왼쪽면, 볼록거울에 나타난 채색창과 붉은 터번을 빼면 나머지 화면은 어두운 색조를 띤다. 검은 터번을 쓰고 청회색 윗옷을 걸친 환전상과 관련된 사물들은 어둡게 부인과 관련된 영적인 사물들은 밝게 빛난다. 탁자에 놓인 세속적인 물건들은, 대표적으로 천칭저울, 어두움에 둘러쌓인다. 한편 하얀 두건을 두르고 붉은 외투를 입은 부인이 펼친 성서를 비롯 선반에 놓인 경건한 물건들은 밝은 빛을 받는다.

 

 빛은 두 방향에서 들어온다. 가게의 왼쪽 창문에서 자연광이 새어 들어오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볼록거울의 남자가 있는 화면의 아래 왼쪽에서 환전상의 부인을 향해 비춰진다. 그렇기는 해도 화면 전체를 분할해 보면 환전상이 차지하는 면적이 부인이 차지하는 공간보다 삼분의 일은 넓어보인다. 밝기조절을 통해 묘한 균형을 이루는 것 같기는 해도 세속적인 쪽으로 기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6세기에 성행한 직업활동을 보여주는 단순한 풍속화라고 보아야 할까? 오른손에 금화를 집은 환전상은 무게를 재는 동작을 멈춘 느낌이다. 반면 부인은 기도서의 성모자상이 그려진 쪽에서 방금 읽은 페이지쪽으로 되돌아가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읽기를 그만두고 시선을 딴쪽으로 돌린다. 두 사람의 행동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이윤추구와 영적인 탐구 사이에 놓인 딜레마를 나타내기도 한다. 중년에 이른 이 부부는 죽은 뒤에 영혼이 살아 남는 것이나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때 선행의 댓가나 죄값의 형벌을 놓고 명상에 잠긴 듯하다. 환전상과 부인의 자세도 대칭 축을 향해 가까워지면서 청평저울을 떠올리게 한다.

탁자에 놓인 물건들과 선반에 둔 물건들도 굳건히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안정해 보이는 볼록거울, 천칭저울과 책장 마저도 순간적으로 정지된 느낌이다. 앞의 두 인물이 정지 동작을 보여주듯이 정물로 처리된 사물들 역시 생기를 잃고 고착되어 보인다.

선반에 놓인 투명한 물병과 신선한 과일,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닫힌 상자며 탁자 왼쪽 끝의 크리스탈 잔은 마리아의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고리에 걸린 여섯 개의 구슬도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뚜껑이 닫힌 나무 통은 숨겨진 신성을 나타낸다. 천칭저울은 최후의 심판을 가리킨다. 꺼진 촛불은 허영을 상징하고 묵주는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동전과 함께 저울을 든 환전상은 마테오를 떠올리게 한다. 마테오는 징세청부업자의 일을 포기하고 예수의 사도가 된다. 마테오는 피렌체의 수호성인이다. 메디치 가문으로 대변되는 환전상과 은행가 협회가 수호성인으로 채택한다. 마테오는 돈주머니를 쥐고 있거나 저울을 들고 있다. 사도로서 마테오는 동전이 삐져나오는 돈 포대를 짓밟는다. 마테오의 형벌 도구는 창이다. 복음전파자 마테오는 천사 혹은 날개 단 사람으로 나온다. 17세기 때 그림의 틀에는 이런 교훈적인 명구가 새겨져 있었다 : "저울은 공평하고 무게는 한결같을지어다." 30 데나리우스에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에 대한 치명적인 기억 때문에 성당은 고리대금업을 단죄하였다. 이자 놀이는 오랫동안 유태인들 한테만 할애되고 기독교도들의 규칙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메시스는 탐욕스런 이윤추구를 하는 남편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부인의 일상생활을 통해 성과 속의 이분화된 세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풍족한 부르주아의 일상을 드러내는 풍속화는 알레고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띤다. 얼핏 보아 유럽 금융의 중심지 앤트베르펜에서 성행하던 직업활동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다양한 장치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이끌어간다. 두 인물의 복장이 옛날풍(80년 전에 제작된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나오는 복장과 거의 흡사하다.)이듯이 그림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실존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유형을 드러낸다. 사물의 세밀한 표현과 탁자 앞쪽에 놓인 볼록거울은 얀 반 아이크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참고 자료

Emmanuelle Revel, Le Prêteur et sa femme de Quentin Metsys, coll. "Arrêt sur oeuvre", Louvre, 1995.

Isabelle Vazelle, La Peinture des écoles du Nord, coll. "Chercheurs d'art", Musée du Louvre, 2003.

François Cheng, « Le Prêteur et sa femme », Pèlerinage au Louvre, Musée du Louvre, 2008, p. 136-137.

Adrien Goetz, 100 chefs d'oeuvre du Louvre racontent une histoire du monde, Musée du Louvre, 2015, p.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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