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걸작을 찾아서
코로나 감금 생활과 독서
중세 때 피렌체 시민들은 전염병의 원인은 몰라도 대처하는 방법은 본능적으로 알아내었다. 열 명의 젊은이들은 전염병 퍼진 도시를 피해 한적한 시골로 달아나 이 주간 즐겁게 머물렀다 피렌체로 되돌아온다. 이번 코로나 위기로 2차 감금 조치가 내려지자 프랑스 사람의 약 십 퍼센트 가까운 5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 거주지인 대도시를 피해 지방으로 떠났다. 1차 때보다 백 만 이상 많은 숫자라고 한다. 물론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람은 25세 이하 대학생으로 부모 집으로 내려간 경우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은 누구일까? 그럴 여건이 되는 여유 있는 사람이겠다. 재택근무로 굳이 직장 가까운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는 사람, 지방에 별장을 가진 은퇴한 노년층, 일을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없는 부유층이 아닐까. 이런 조건이 못 되는 사람은 죽으나 사나 일선에 나가 일한다. 아니면 코로나 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곱다시 주 거주지에 들어박혀야 한다.
2차 조치는 조건이 완화되어 초중고가 열리고 공원도 개방되어 있으며 이동의 자유도 1차 때보다는 한결 낫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은 1차 때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더 힘들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코로나 위기가 예상 밖으로 너무 오래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하는 게 중요하다. 생산적이든 아니든 집중하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파리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가장 큰 소일거리는 유튜브라고 한다. 그중 몇몇은 유튜브를 제작해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튜브에 빠져 지낸다. 나 역시도 한 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감금 기간 동안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최소한 신체 운동을 해야 한다. 내 경우 보통 일 년에 다섯 번도 나가지 않던 동네 공원을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나간다. 너무 자신의 문제에만 빠지지 말고 만날 수 없어도 가끔씩 아는 사람들과 안부 문자며 전화 통화도 하는 편이 좋다. 대면 접촉으로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지만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피렌체의 젊은이들처럼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어 유쾌한 이야기로 즐겁게 생활하지는 못해도 좋은 고전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책이라면 두드러기가 나고 졸음부터 온다고요. 더군다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케케묵은 고전을 읽으라니요? [데카메론]의 «머리말»에 나오듯이 잠시 고통을 참으면 즐거움이 찾아온다니 한번 믿어보시죠! 우리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니 이 참에 책 읽는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요? 문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입니다. 비록 이미지에 밀려 쪼그라든 처지가 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지식과 정보의 전달과 저장 수단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 옛날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은 서양 문명이 역사에 발도 들여놓기 전 이미 점토판에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를 다 기록해 두지 않았습니까? 문자와 다시 한번 인연을 맺어보시죠! 그건 당신 생각이고 책 보다 천 배 만 배 더 재밌는 게 깔렸는데 뭐하러 골치 아프게 책을 보아요? 그래도 인류 최고의 걸작품들은 감동도 주고 도움도 된답니다. 평생 다섯 수레에 실을 분량은 다 못 읽어도 취향에 따라 백 권 정도라도…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백 권, 어떠세요? 무슨 출판사 시리즈 광고 문안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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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기에 접어들면서 이래저래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갱년기의 위기의식인가.
"이제 나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지적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시간이 많지 않아.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돼. 굳이 훌륭한 업적이 아니어도 좋으니 인생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해."
몇 해 전부터 가장 중요한 화두는 건강과 더불어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이다.
주로 집에만 틀어 박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코로나 위기 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하긴 이렇게 많은 시간이 고스란히 주어진 적은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던 나한테는 다시 올 수 없는 행운인지 모른다. 결국 코로나가 내려준 선물은 바로 시간이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새로 읽었거나 다시 읽은 문학 서적 몇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알려진 걸작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걸작이 대부분이다. 잊혀진 걸작품을 되살리려면 다시 읽기밖에 없다. 다시 말하건대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좋은 책은 읽기 어려워도 읽고 나면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법!
이미지가 온 세상을 제패한 마당에 문자 매체를 권하다니, 무슨 시대착오적 발상... 아직도 문자는 죽지 않았다! 정말일까?
어쨌거나 프랑스는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잘 안 되던 서점이 다시 활기를 띠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감금 조치와 통금 조치로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책 읽는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대신 동네 서점을 이용하는 구매자가 늘고 여기저기에서 새로 서점이 새로 생기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길!
잊혀진 걸작을 찾아서
1. 피렌체 페스트가 낳은 최고의 걸작 [데카메론]은 중세판 인간 희극으로서 에로틱 소설의 모델이다. 당시 페스트 의사의 처방을 문학화한 예라고 할 수 있을까. 피렌체의 열 명의 젊은이들은 2주 격리 기간 동안 죽음을 멀리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듣는다.
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폴리필리의 꿈]은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이다. [폴리필리의 꿈]은 페스트로 어긋나 버린 연애소설적인 내용보다 멋진 삽화와 잘 어우러진 조형적인 활자 배열이 더 유명하다. 이 책을 모델로 다시 쓰기를 하는 노디에와 네르발의 작품도 다시 읽어 보았다. 이 책의 표지가 바로 샹티이성에 소장된 알도 마누초의 1499년 초판본 모습이다.
3. 몽테뉴의 [여행 일기]는 페스트와 종교전쟁을 피해 떠난 도피성 여행기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온천욕을 통한 결석 치료였다.
4. 17세기 중후반이 배경인 샬의 연작 소설집 [유명한 프랑스 여인들]에서 "데프랑과 실비의 이야기"는 마녀 사냥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차별이라는 주제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고 뛰어난 작품이 널리 읽히지 않다니 정말 안타깝다. 결국 문학성과 대중성은 반비례라고 할 수밖에 없나?
5. 18세기 자유사상가로 부르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등장으로 이성과 과학이 제대로 자리잡는다. 그중에 구체제하의 사회를 아이러니와 풍자로써 그려낸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와 [숙명론자 자크]는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
6. 통금제하의 구체제에서 파리의 밤 풍속도를 그린 레티프의 글은 조명이 널리 보급되기 전 신비로운 파리의 야간 생활 스케치이다. 레티프를 '개천의 루소'라고 폄하할 작가는 결코 아니다.
7. 광기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초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세계를 그린 호프만은 매독으로 죽는다. 그뿐 아니라 숱한 예술가들이 매독으로 요절한다. 천재라서 꼭 일찍 죽는 게 아니고 전염병이 아까운 인재들을 그렇게 만든 경우가 많다. 매독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면 "매독으로 죽은 유명 인사들"을 참조하라.
8. 네르발의 [소금 밀매꾼들]에서는 자의적인 권력남용이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나를 느껴볼 수 있다. 반골 기질 인물의 저항성과 더불어 작가의 반소설적 글쓰기를 통해 검열을 피해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예이다. 네르발 역시 문학 연구가한테는 대가지만 대중한테는 그저 이름 없는 작가다.
9. 오르한 파묵의 처녀작 [세브뎃 베이와 자손들]은 서양식 교육과 문화에 젖은 변방 국가인 터키 엘리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 보수와 진보… 노벨상 수상 작가라고 다 뛰어나지 않는데 파묵은 문학성이 탁월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