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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5. 2022

거꾸로 가는 세상을 그린 [미치광이들의 배]

보쉬

히에로니무스 보쉬 (Hieronymus Bosch: 1450께-1516), [미치광이들의 배], 1494년 무렵 이후. 목판에 유화.


 닻이 올려지고 뭍을 떠난 키잡이도 뱃사공도 없고 돛도 없는 쪽배 위에 열 명이 빽빽이 올라타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다. 헤엄치는 한 사람은 파티에 낄려고 배 위로 올라타려 하고 또 한 사람은 술을 더 달라고 빈 술잔을 들이민다. 배 한가운데에 촌부들과 수녀 둘, 수사 한 명이 어울려 미친듯이 놀고 있다. 이들은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걸신들린듯 먹어댄 뒤 목청껏 노래를 불러제낀다. 한 사람은 안주감이 떨어졌는지 칼을 들고 돛대 중간에 매달린 칠면조 구이를 자르려 올라간다. 돛대 꼭대기에 내걸린 꽃다발 한가운데 숨어 부엉이가 이 장면을 비웃듯이 내려다본다. 이 난장판에 짝짝꿍이 맞아 노는 수사와 수녀가 유독 눈에 띈다. 이 둘은 수녀의 류트 반주에 맞춰 목이 터져라 노래부른다. 아니 이들은 가운데 줄에 매달린 크레이프를 덥썩 물려고 한다. 두 번째 수녀는 술에 취한 나머지 호리병 술항아리를 쥐고 엎드린 남자를 유리 술병으로 내리칠 기세다. 한 손에 큰 국자를 든 뱃사공인 듯한 사람도 이 난장판에 끼어들어 덩달아 노래를 부른다. 또 다른 사공은 유리 술잔을 머리에 얹고 한 손으로 깨진 술병을 노 끝에 꿰고 흔들어댄다. 잘려나간 나무의 한 줄기가 배의 키인 듯하다. 속이 나빠보이는 사람은 한 손으로 키를 잡고 배 아랫쪽으로 구부려 토하려는 참이다.

여기 묘사된 인물들은 모두 다 그로테스크하게 풍자화된다. 바야흐로 이 배는 산으로 올라가리라. 아니다. 산으로 올라가려다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테다. 이른바 지옥의 앙상블, 불협화음의 교향곡이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그래도 이 광란의 무대 뒤로는 악습에 빠진 인간들을 포용할 듯한 더 넓은 바다와 더 높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원래 이름은 Hieronymus van Aken인데 자신의 고향 지명(Den Bosch)을 딴 것이다. 태어난 해도 확실하지 않고 작품활동 기록도 별로 없으며 작품세계는 서양회화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화가로 손꼽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미치광이들의 배]에서 관찰할 수 있는 광경이다. 해괴망측한 괴물들과 기이한 식물들, 괴상한 건축물과 이상한 인물들로 가득찬 보쉬의 작품은 통속극이나 성사극, 예배행렬이나 축제행렬, 북구의 속담, 중세 문학, 채색 삽화, 판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보쉬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삼촌 셋도 화가였다. 물론 형제들도. 현재 보쉬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회화 20점과 데생 9점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방랑자의 삼매화]의 왼쪽 패널을 이루었지만 나중에 잘려 나간 [미치광이들의 배]의 아랫부분은 현재 미국의 예일대학 미술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방탕과 쾌락의 알레고리](1500무렵 이후)이다. 가운데 패널이 사라진 3매화의 오른쪽 패널은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수전노의 죽음](1500무렵 이후)이다. 삼매화의 뒷면은 회색의 단색화(grisaille)로 누더기를 걸친 도붓장수가 그려져 있다. 이 삼매화에서 보쉬는 일곱 가지 큰 죄를 재현하였다. 보통 삼매화는 가운데 패널이 양쪽 패널의 두 배 크기고, 뒷면에도 앞면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에 소장된 [쾌락의 정원]이나 [건초 수레], 리스본 고대미술관에 보관된 [성 앙투안의 유혹]이 다 펼쳤을 때 삼매화가 되고 접었을 때는 양쪽 두 패널의 뒷면 그러니까 가운데 패널과 같은 크기가 된다. 삼매화에서는 가운데 패널이 메시지의 핵심부를 차지한다. 보통 왼쪽 패널은 천국을 가운데는 동시대를 오른쪽은 지옥을 다룬다.


 [미치광이들의 배]는 20세기 초 루브르의 학예연구원 카미유 브누아(Camille Benoit)가 파리의 시장에서 수집하여 1918년에 루브르에 기증하였다. 루브르가 소장한 유일한 보쉬의 작품이다.

프랑스 박물관 연구 및 복원 센터(C2RMF)가 처음으로 [미치광이들의 배]를 2012-2015에 복원하였다. 복원 뒤 그림의 제목도 [식탐의 알레고리]로 바뀌었다. 아마도 상업적인 이유로 19세기 말에 둘로 잘라 팔 때 가필한 몇 부분이 드러났다. 가필한 쪽들을 제거했을 때, 아랫부분에서 새롭게 드러난 것은 술통에 걸터앉은 남자가 쓴 깔때기 모자의 끝부분, 이 남자가 든 나뭇가지의 윗부분, 술잔 하나, 또 잠수한 사람의 무릎부분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아랫부분은 [방탕과 쾌락의 알레고리] 윗부분과 정확하게 연결된다. 돛대 윗쪽에 추가된 나뭇잎들도 제거된다. 복원 뒤 하늘 부분은 한층 환해졌다. 오른쪽 풍경 부분의 산이 사라지고 보일락 말락한 먼 도시 정경, 특히 성당인 듯한 건물의 실루엣이 다시 드러났다.


보쉬 서거 500주년 기념으로 작가의 고향에 있는 노드브라반츠(Noordbrabants)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기간(2016년 2월13일-5월8일)에 예일 대학과 루브르의 두 작품을 붙여 전시했다. 마찬가지로 삼매화의 오른쪽 패널인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수전노의 죽음]도 전시되었다. 보쉬의 작품으로 인정된 전체 작품의 사분의 삼이 회고전에 전시되었다. 보쉬의 작품은 진위판정에 논란이 많다. 그 시절은 작품제작에 아틀리에가 참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협력자나 제자들의 붓질과 거장의 솜씨가 어울어지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복제화나 모사화에 대해 불명예스럽게 생각지 않았다. 물론 화폭을 자세히 관찰하면 한 사람의 붓질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붓질도 알아 볼 수 있어서 보쉬 혼자 그린 경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치광이들의 배]에서 복원 전에도 어두운 부분에서 데생의 선영을 맨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보쉬의 특징은 투명하게 그린다는 점인데 복원 뒤 데생이 더욱 눈에 잘 띄게 되었다. 유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투명해기기 때문이다. 선영을 넣을 때 오른손잡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고, 왼손잡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데 [미치광이들의 배]에서는 두 가지가 섞여 있다. 보쉬는 오른손잡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오른손잡이의 선영이 지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건초 더미], [수전노의 죽음], [성 앙투안의 유혹] 등도 협력자나 제자의 붓질이 섞여 있다.


15-17세기 플랑드르의 풍속화나 정물화는 단순한 일상생활의 풍속이나 사물의 묘사를 넘어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물화에 등장한 과일, 야채, 악기, 동물, 갖가지 사물들을 통해 인생의 허망함을 표현한다. 특히 보쉬의 작품에서는 중세 말기 타락한 풍습과 사회상을 고발하고 삶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끈다. 보쉬가 활동하던 때는 중세가 끝나가고 르네상스가 오는 혼란스러운 과도기다. 15세기 말 사회적 갈등 그 중에서도 종교 문제가 극단적으로 불거지던 시기에 주로 낮은 직급의 성직자의 빗나간 품행을 조롱한다. 절제없는 과도함은 어느 시대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그게 전반적인 현상이냐 아니냐의 정도의 차이이다. 과도함이 극에 달하는 때는 주로 말기다. 로마 말기에 드러난 풍속의 타락과 지나친 쾌락추구를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세 말기에도 엇비슷한 사회 분위기가 된다.


[방랑자의 삼매화]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큰 죄(자만, 탐욕, 분노, 태만, 식탐, 색욕, 시기)를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준다. [미치광이들의 배]에서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광대의 찡그린 초상이 달린 지팡이를 든 채 나귀 귀가 달린 모자에 소매는 헐렁하고 술달린 옷을 걸친 어릿광대는 술잔을 입에 갖다댄다. 곱사등에 왜소한 광대는 어지러운 축제판에 등을 돌리고 따로 떨어져 있다. 대신 어릿광대의 지팡이에 달린 초상이 관객들을 부르는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배에 탄 인물들 가운데 광기를 상징하는 그가 가장 평온해 보이는 정상인이다. 어릿광대가 입은 옷이 가라앉는 색조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어릿광대의 복장은 노랑, 초록, 빨강의 아주 난한 색이다. 관객을 반성으로 이끄는가? 중세에 미치광이는 악마와 같은 편으로 여겨졌다. 광기는 의학적인 미친 상태보다는 일곱 가지 죄와 연결되어 도덕적, 정신적 일탈 상태(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며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를 말한다. 사회 비판의 탈출구로서 어느 궁정이든 광대가 기존 권력을 우스꽝스럽지만 신랄하게 비꼬는 풍자극을 허용하였다.


독일 출신의 풍자시인 세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는 [미치광이들의 배](1494)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온 세계가 어둠에 갇혀 갖은 죄를 마구 짓는데 길거리마다 미치광이가 득실거린다. » / « 품행 나쁜 수도자가 될 바에야 평신도로 남는 게 나으리랏다. » 보쉬의 작품이 1494년 이후에 제작된 걸로 보아 브란트의 풍자시를 참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보쉬의 [광기의 돌의 절제](1505-151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수도사와 수녀는 « 광기의 돌 »을 빼낸다고 허풍떠는 돌팔이 의사와 공모하고 있다. 광기의 돌을 빼내본즉 결국 한 송이 꽃이었다. 중세 때 광기에 빠진 사람은 머리에 돌이 박혀 있다고 믿었다. 중세 말기의 문학 작품을 보면 이런 광기를 사탄한테 뒤집어 씌운다. 직급 낮은 사제들의 행동을 비웃는 내용이 많다. 보쉬가 활동하던 때는 이런 사제들의 비도덕적인 품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의 중개없이 신과 직접 접촉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에라스무스가 1511년 [우신예찬]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516년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다. [미치광이들의 배]에서 나체로 배에 올라타려는 사람한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쾌락에 몸을 맡겨 노는데만 열중한다. 독일의 카니발에서는 « 악의 배 »를 상징하는 수레를 끌고 행진하곤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축제 참가자들이 이 배를 불태웠다. 사육제는 끝에 가서 심심찮게 방종으로 흐르곤했다. 중세 때 배는 교회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신예찬]에서 에라스무스는 보쉬의 동향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비꼰다. « 다른 지방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더욱 신중해지는데, 이쪽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점점 더 천해진다. »


 [쾌락의 정원]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체리와 딸기가 육체적인 쾌락이 덧없음을 드러내듯이 류트와 술병, 접시에 담긴 붉은 체리는 음란의 상징물이다. 돛대 중간에 나부끼는 깃발에 새겨진 초승달과 돛대 끝에 몸을 숨긴 부엉이는 이교 또는 악마 나아가 광기를 상징한다. 비늘이 떼어져 죽은 생선은 금욕기간인 사순절을 나타낸다. 수사와 신부가 입을 내밀어 크레이프를 깨물려고 하는 동작은 손을 대지 않고 매달린 전병을 먹는 민속놀이를 보여준다. 돛대 역할을 하는 개암나무는 바보의 나무로 무성한 잎과 꽃으로 보아 봄철이다. 마을 축제의 ‘오월의 나무’를 가리킨다. 중세 말기 민속 축제 때면 마을 사람들과 종교인들이 어울려 온갖 유흥을 즐겼는데 지나친 나머지 자주 방종으로 치닫곤 하였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을 태운 배는 영혼의 구원을 무시한 채 좌초하고 말 터이다. 양식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식탐과 색욕에 빠져 참된 종교심을 잃고 반대로 광기를 상징하는 어릿광대가 역할이 전도되어 정상인으로 나타난다. 보쉬는 규범과 금기가 깨어지고 가치관이 무너져 흥청망청 몸을 본능에 내맡기고 순간적인 즐거움만 만끽하는 광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상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특히 중세 말 사제들의 타락한 품행과 부르주아와 농부들의 문란한 생활상을 악습에 물든 인간의 광기에 빗대어 비판한다. 중세 말 사육제 기간에 열리던 환락의 카니발 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더 멀리 고대로마 시절에 개최된 주인과 노예가 역할을 바꾸어 해방감을 만끽한 사투르누스 축제도 떠올려 봄직하다.

 

타락한 인간군상의 본성을 과장되게 희화화하면서 거꾸로 뒤짚혀진 세상을 보여주는 보쉬의 그림은 시간을 초월해 아주 현대적이다. 다양한 사물들과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의도적이지만 엉뚱하게 조합시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타락상을 고발하되 쾌활하고 활기가 넘친다. 추악한 사회상을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돛대 끝에 몸을 숨긴 부엉이는 광기와도 연결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지혜의 상징이다. 배에 탄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 인간의 숨겨진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비단 중세 말의 과도기에서만 볼 수 있는 인물 유형이 아니라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 보편적인 인물들이다.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다음 구절을 곱씹게 한다. « 바로 내가 그린 미치광이들의 배 / 광기의 거울이다. / 각자 자기 초상을 보면서 / 자신을 알아볼 것이다. / 곳곳에 아는 얼굴이 깔려 있다. / 자세히 들여다보면 / 금방 알아차릴 테다 / 우리 모두 정상인이 아니란 사실을. »


보쉬는 그 기발함과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16세기 중반에 활약한 피터 브뤼겔의 정신적 아버지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정신적인 할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참고 자료

Claire Fleury, « Exposition Jérôm Bosch : les 3 mystères de « La nef des fous » », L’Obs, le 14 février 2016.

Walter Bosing, Bosch, Taschen, 2016.

« La nef des fous » de Jérôme Bosch faisait partie d’un triptyque », Culturebox, Franceinfo, 31.12.2015.

Nathalie Poisson-Cogez, « L’imagerie du fou », Festival d’histoire de l’art. La folie : artistes, création et beauté insensée. 27-29 mai 2011, Fontainebleau.

François Cheng, « La Nef des Fous », Pèlerinage au Louvre, Musée du Louvre, 2008, p. 132-133.

Isabelle Vazelle, La Peinture des écoles du Nord, coll. "Chercheurs d'art", Musée du Louvre, 2003.

Roger-Henri Marijnissen et Peter Ruyffelaere, Jérôme Bosch, ABCdaire, Flammrio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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