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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를 들으며 1

by 파샤 pacha

얼마 전 재발견한 오아시스(Oasis) 그룹의 음악에 푹 빠져들고 있다. 틈만 나면 오아시스의 공연 실황을 유튜브로 듣는다. 전성기가 90년대 중반인데 2025년에 듣고 있다. 하긴 해체된지 55년이나 지나고 멤버 둘이 불귀의 객이 된 비틀즈를 아직도 듣고 있는데 뭐 이상할 것도 없다. 올 여름 오아시스는 15년 만에 재결합 순회 공연을 하는 중. 전성기 시절의 인기몰이를 하며 화려한 컴백을 하고 있다. 작사, 작곡에 리더 기타리스트며 노래까지 부르는 노엘은 자신들의 음악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 지의 시험 무대가 될 거라고 밝힌다.


오아시스란 이름만 얼핏 알고 있었을 뿐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 적도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70, 80년대의 전통적인 록 그룹이 쇠퇴하면서 새로 등장한 록 밴드에 관심이 덜해졌다. 멜로디가 가볍고 발랄해져 일반 팝 음악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90년대의 록 음악을 브릿팝(Britpop)이나 올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본 조비도 유튜도 니르바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사운드가 시끄럽고 강력해진 것은 앰프 덕이 아닐지... 한편 가수나 연주자가 내뿜는 원초적인 에너지는 줄어든 느낌이다.


오아시스가 전세계적인 마지막 록 밴드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그룹인가? 남들이 다 아는데 나만 모르나.

- 오아시스를 모른다구요.

- 글쎄,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 음악을 들어본 기억은 안나요.

오아시스는 91년에 결성되어 94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최전성기는 94-98년이다. 1994년 데뷔 앨범 Defintely maybe(Supersonic, Live forever, Whatever, Rock n Roll Star...)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1995년 두 번째 앨범 What's story, Morning glory(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Some might say, Champagne supernova...)에서 절정기를 맞는다. 전세계적으로 2천2백만 장이 팔린 두 번째 앨범은 90년대 영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다. 역시 전성기는 20대만 가능한가? 1997년 발매된 세 번째 앨범 Be here now(D'you know what I mean?, Stand by me, All around the world...)에 오면 멜로디가 밋밋해지고 곡에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필요 이상으로 연주 부분이 늘어져 길다. 어떤 이는 이게 CD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Stand by me가 괜찮다. 그 다음 발표한 앨범들도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재결합 라이브를 보아도 1, 2집의 히트곡이 역시 팬들을 사로잡는다. 확실히 난 미니멀주의자. 군더더기 없이 짧고 산뜻한 비틀즈가 딱 내 취향!


94년은 니르바나의 리더 쿠르트 코베인이 스물일곱에 자살하면서 27클럽에 가입한 해다. 오아시스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니르바나의 바톤을 이어받은 그룹이라고 보아야 하나. 이 시절 세상의 어두운 면을 노래한 그런지(grunge) 록이라고 하는 니르바나의 음악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 록은 별로다. 어쩐지 칸츄리와 포크 느낌이 많이 배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원조 브리티쉬 록이 최고다. 모조가 원조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은 법!


90년대는 내가 일제 아이와 워크맨에 카세트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다. 작지만 앰프 기능이 들어간 작은 스피커로 주로 집에서 들었다. 멜로만이라고 하기에는 음향 기기가 너무 원초적이었다. 그래도 최신형 일제 휴대용 소형 녹음기는 아주 싼값은 아니었다. 밤에 FM 방송의 팝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다. 맘에 드는 곡은 기억해두었다가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기도 했다. DJ가 곡을 소개하고 곡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딱 맞추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가 끝날 때 바로 정지를 누르는게 퍽 중요했다. 그때 내가 가르치는 여고생들은 오른쪽 왼쪽 길이가 서로 다른 두 개짜리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끼고 둘이서 바싹 붙어앉아 같이 듣곤했다. 스트레오 사운드를 둘이 나눠 듣다니! 이 광경을 보면서 헛웃음을 쳤다.


마침내 나는 91년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였다. 직장 생활을 통해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 따분한 일상의 족쇄에 채워졌다. 정해진 대로 수업을 하고 수업과 수업 사이 빈 시간에 나와 비슷한 하수 동료와 바둑을 두었다. 퇴근 후 친한 또래 동료 넷과 어울려 술판이며 포커판을 벌이고 가끔 나이트로도 진출했다. 피곤한 몸으로 저녁에 있는 대학원 수업에 참석했다. 강의 중 내가 조는 걸 목격한 목이 길고 하얀 살결의 소녀풍 여자 후배가 실소를 터뜨렸다. 니도 피곤해봐라! 나중에 저도 임시 교사로 취업한 다음 대학원 수업에서 해롱대지 않았나.

내가 원하던 삶이 이거였나?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국가 혜택을 보았으니 의무 복무 연한은 채워야지.


91년에서 파리 오기 전까지 내 인생의 전성기라면 전성기다. 93년 2월 의무 복무 기간 4년을 정확히 채우고 고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조교로 전직했다. 주변 아는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다 걱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이 결정을 내릴 때 난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과감하다고 보아야 하나? 독신이기에 가능했지 않나. 우리네 인생에서 미리 정해진 해답은 없다. 미리 결과를 안다면 인생은 재미없지!


93년 가까스로 석사 논문을 끝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자.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몰려 본격적으로 논문쓰는 중이었다. 앞니 가운데 돌연변이처럼 끼어있던 보통 이보다 훨씬 작은 이가 빠졌다. 혀로 얼마나 자주 이를 밀어댔으면... 양 앞니 사이가 벌어져 조치를 취해야했다. 내가 사는 공무원 아파트 단지에 있는 치과로 먼저 갔다. 앞니 둘을 합쳐 덮어 씌우자는 제안을 했다. 이건 미관상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친한 선배의 추천을 받아 서초역 부근의 치과로 갔다. 이쪽에서는 교정 전문 치과를 소개시켜주었다. 역시 서초역 부근에 있는 치과였다. 아마도 이 두 치과원장은 동문에다 친구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나이 서른이 가까워 교정전문 치과에서 교정을 받았다. 일년 반쯤 끼고 다녔다. 그 나이에 교정틀을 끼고 다닌다고 여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플레이야드판 작은 글씨로 된 책을 보느라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끼게 되었다. 그리고 꿈꾸어왔던 유학을 감행한다. 94년 8월 22일 파리에 도착!


오아시스 그룹의 명성은 음악 뒷면에 마약 복용이며 섹스 그리고 두 형제간의 쌈박질도 유명세를 더해주는 요소였을까? 흔히 말하는 "Sex, Drugs & Rock'n'Roll". 과다한 마약 복용에다 잦은 말다툼이 매체를 심심찮게 달구었다. 팬들과 그리고 단원들 간에 또 형제끼리 떠들썩하게 말싸움을 벌이곤 했다. 말싸움은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졌다. 묵는 호텔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여하튼 15년 만에 재결합이란다. 그룹이 해체된 장소는 우연히도 파리다. 2009년 오아시스의 해체는 극적이다. 2009년 8월 28일 파리의 록 페스티발(Rock en Seine)에서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공연 시간에 맞추어 정상적으로 그룹이 도착했다. 형제는 절대 같은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동생은 다른 멤버들과 같이 같은 차를 타지만 형은 따로다. 무대에 오르기 전 형제가 한판 붙는다.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쨌거나 동생이 형의 기타를 집어던져 깨버린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크립턴이 노엘한테 선물한 거였는데... 다른 버전은 이렇다. 리암이 만든 옷 상표의 옷을 입고 공연에 참가하길 원했는데 형 노엘이 거부를 하면서 말다툼이 일어나고 싸움으로 번졌다. 노엘은 공연장을 떠났다.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오아시스를 탈퇴한다고 밝힌다. 오아시스는 이렇게 사라졌다. 록 페스티발 주최자는 저녁 10시 3만의 청중들한테 두 형제가 쌈박질을 해서 오아시스의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한다. 팬들의 실망의 야유가 밤하늘에 울려퍼진다. 다들 최고의 인기 그룹 공연에 참가하려고 왔는데 돌연 바로 현장에서 취소라니! 주최측은 처음부터 공연을 제대로 해낸다는 조건으로 초청한 거였다. 공연 바로 직전에 취소되었으니 주최측의 대책이 어땠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오아시스가 해체되고 10년 동안 두 형제가 딱 두 번밖에 안 만났다고 할 정도로 관계가 나빠졌다. 각종 매체를 통해 서로 헐뜯고 욕하는 살벌한 사이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리암이 여러 번 형한테 재결합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엘은 번번이 거절하였다. 그래도 리암은 거듭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었다. 시간이 약이었나.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린다. 2023년초부터 재결합 소문이 솔솔 나돌기 시작한다. 2024년 8월 25일 공연에서 리암은 형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 추켜세우면서 한 곡을 바쳤다. 그리고 2024년 8월 27일 두 형제는 오아시스를 재결성한다고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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