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습관이 되면 가속도가 붙는다. 고등학생 시절 제아무리 두꺼운 소설이라도 하룻밤에 다 해치웠다. 건성으로 후다닥 책 읽기의 대표 선수가 바로 나다. 읽으나 마나 독서가! 시험 기간에만 공부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주로 책을 읽었다. 특히 방학 때면 하루에 수학 한 시간, 영어 한 시간 공부하고 나머지는 재밌는 책 읽기에 몰두하였다. 고3 때만은 소설 읽기를 줄이고 공부에 더 투자하였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체홉 단편집],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백경], [분노의 포도],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좁은문], [사전꾼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혀 이해도 못하면서 중3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몇 년에 걸쳐 읽었다.),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모모]...
동서문화사에서 출판된 세계문학 소설을 즐겨 읽었다. 반질반질한 에나멜 표지에 먹물 냄새가 바로 배어 나올 듯한 빠닥빠닥한 흰색 종이를 쓴 책이었다. 다른 출판사 책들은 누르스름한 갱지였는데 동서문화사는 약간 두껍고 빳빳한 하얀 종이였다. 판형도 교과서 보다 약간 작아 아담하니 책 자체가 퍽 맘에 들었다. 참고서 살 때도 에나멜질의 빳빳한 표지를 쓴 출판사를 골랐다. 국어 참고서는 늘 지학사에서 나온 "하이라이트". 난 완전 형식주의자! 그때까지 세로로 인쇄된 삼중당 문고판을 주로 사서 읽었다. 두 손바닥에 딱 잡히는 문고판을 여전히 좋아한다. 지금은 주로 갈리마르의 폴리오 총서를 판본으로 고른다. 제본도 좋고 활자도 보기 편하다. 물론 작품 해설이며 주석이 최고다. 그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기는 했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고등학생 수준에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졸라의 [나나]나 [목로주점]도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 맞다. 모파상의 단편집과 [여자의 일생]은 감명 깊게 읽었다. 도데의 [풍찻간의 편지]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도 있었지. 그 시절 가장 매료된 작가는 뭐니 뭐니 해도 헤르만 헤세였다. 헤세의 산문집이며 시집, 소설은 죄다 사모았다. 범우사에서 시리즈로 출판한 수필집도 여러 권 읽었다. 그중 이상의 [권태]가 백미였다. 물론 시집도 몇 권 읽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원서로 [달과 6펜스], [테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와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는 원서로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택한 것은 순전히 원어로 소설을 읽기 위해서였다. 도스도에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러시아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장면에 매료되어서였을까. 고등학교 때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프랑스어로 읽어보았다. 이 시절 1930-1960년대에 출판된 현대 한국소설도 많이 읽었다. 단편 위주의 한국 소설보다는 장편의 외국 소설에 더 끌려들었다. 그때 읽은 한국소설 가운데 손창섭의 작품이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했지만 내 방에는 작은형이 남겨둔 책이 백 권 훨씬 넘게 네 줄 벽돌로 쌓여 있었다. 용돈을 모아 대봉 사거리에 있던 삼화서점에서 책을 샀다. 좋아하는 소설을 사려고 심지어 난 작은누나가 졸업하고 남겨둔 교과서며 참고서를 헌책방에 갖다 팔았다. 이 시절 책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가 거의 맞먹었다. 대학생 이후에는 책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점점 앞지르기 시작했다. 학술서를 주로 읽게 되는 시기부터는 사모아 두고 안 읽는 책이 점점 늘어났다.
고등과 대학 시절 사모은 책들은 프랑스로 오면서 고향집에 몇 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작은형 네에 맡겨두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고향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폐가가 되어서 내가 쓰던 방을 그 이후 다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은 작은 책꽂이에 대학 때 읽으려고 샀다가 읽지 않은 [종속주의란 무엇인가?]도 아직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다. 작은 형네에 남겨둔 책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30년 이상 프랑스에 살 동안 작은 형네는 여러 차례를 이사를 했으니 아마도 내 책과 물건들은 다 처분되었으리라. 언젠가 한국 들어갔을 때 작은형이 한 박스에 넣어둔 카세트며 몇 권의 공책, 수첩 등은 버렸다고 말했다. 한때 신줏단지처럼 아끼던 거였는데...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감금된 병실에서 떠돌이 네르발은 누군가 갖다 준 전재산을 마주하고서 기쁨에 덜떠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잃어버린 정신 줄기를 되찾는다. 자신의 책이며 옷가지, 오리엔트 여행에서 가져온 수브니르를 뒤적이면서 끊어진 시계태엽을 다시 이어 평정을 되찾는다. 고등학교 앞길에서 대봉 사거리로 오는 길 오른편에 있던 54 레코드점 주인이 녹음해 준 두 개짜리 비틀즈 선곡 카세트를 다시 꺼내 듣고 싶다. Love me do, P.S. I love you, Girl, And I love her, Michelle, When I'm sixty-for, Rock and Roll music, Here comes the sun, Octopus's garden, Yellow submarine, Come together...
고등 시절 난 대단한 집중력에 엄청난 속도로 읽곤 했다. 한번 달리면 멈추지 않고 종착역까지 엄청난 속도로 내쳐 달리는 고속철도였다. 결과는? 정확한 줄거리 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수가 많았다. 이젠 그렇게 읽고 싶어도 집중력도 시력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도 여유 시간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면 아직 꾀 빨리 읽는다. 지금 나는 책 읽는 감각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건강을 한번 잃으면 되찾기가 힘들 듯 독서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다가도 덜컥 한번 멈추면 재출발하기 정말 어렵다. 무엇보다 나 혼자만 온전히 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실하다. 한때 일기라도 끄적이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곤했다. 그런 체험을 되살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문학과 담쌓은 지 참 오래되었다. 주로 뒤적이며 보는 책이 미술 관련 책이다. 직업상 필요한 정보를 찾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미술사나 고고학 관련 책만 읽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그리스 미술, 플랑드르 회화, 르네상스 미술, 마니에리슴,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때로 내가 문학 전공자 맞나고 되뇌기도 한다. 문학 아니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던 시절이 언제였나. 소설을 읽어 본 지도 까마득하니.
시간 나면 인스타나 유튜브를 뒤적거리지 책을 펼쳐들지 않는다. 인스타나 유튜브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며 맘에 드는 게시물이 수두룩하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철학 강좌나 고고학적 다큐멘터리도 즐겨 본다. 테니스 경기 요약본도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유튜브에서는 게시물이 길면 안 된다. 대중들이 집중해서 보는 한계 시간이 10분 정도란다. 돈 많은 구단주가 뛰어난 선수를 죄다 끌어모아 좋은 성적을 올리는 프로축구 경기는 오래전에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도핑으로 얼룩진 사이클 중계는 끊었지만 그래도 테니스 경기는 아직 본다. 또 개나 고양이 그리고 당나귀 나오는 게시물에 나도 몰래 빠져든다. 보슬이가 떠나고서는 고양이 게시물은 가능하면 피한다.
험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대피소 만드는 프로(bushcraft)는 늘 내 눈길을 끈다. 여기서 혼자는 아니다. 영상을 찍는 이가 있으니 혼자라고 할 수 없다. 솔로 캠핑 또한 마찬가지다. 촬영자가 따로 있으니 혼자 다니는 게 절대 아니다. 눈앞에 펼쳐지듯 보이는 영화 장면이 자연스럽고 객관적으로 보이나. 여기에 조명이며 음향 효과에다 촬영자의 주관과 감독의 통제가 따른다. 소설에서 3인칭 관찰자는 절대 공정한 시점이 아니다. 시점은 원래 제한적이다. 그림에서 말하는 원근법 또한 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본디 착시효과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부쉬크래프트에서 혼자는 너무 외로우니 개 한 마리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를 베고 자르고 쪼갠다. 서까래나 들보 그리고 기둥으로 쓸 나무에 구멍을 내거나 못을 박는다. 돌을 그러모아 벽을 친다. 흙에 물을 붓고 지푸라기를 섞어 이긴다. 돌과 이긴 흙으로 부엌과 난로를 만들고 굴뚝을 내고 벽을 바른다. 이런 가건물에서 굴뚝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장치다. 이끼나 풀을 베어 지붕을 덮는다. 마지막은 간편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도끼, 톱, 드릴, 삽, 낫 같은 기본적인 연장만 가지고 주변에 늘린 나무와 돌, 흙과 풀을 써서 뚝딱 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집 짓기에서 못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릴을 써서 구멍을 뚫고 심을 박고 끌로 들보나 서까래의 반쪽면을 깎아내어 서로 끼워서 고정하면 된다. 적어도 10배속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보면 허름한 대피소 하나 짓는데 단 몇 분이면 끝난다.
요즘 들어 책 소개에다 서점 홍보까지 흥미롭게 본다. 문학 비평이란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세는 서평이다. 예전에 감상문이라고 부르던 거라고 보아야 하나. 이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도 필요 없어졌다. 책 소개 프로그램 가운데는 전문가가 운영하는 수준 높은 포스팅도 많다. 줄거리를 짤막하게 요약하고 책의 주제며 간단한 비평까지 곁들이는 책 소개 프로그램을 몇 개 구독한다. 한국 책벌레들은 1년에 백 몇십 권을 읽었다는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독하던 시절 나도 그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이네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나! 죽기 전에 읽어야 하는 명작 소설 20선, 꼭 읽어야 하는 고전 20선, 25년에 읽은 최고의 책 10선, 26년에 꼭 읽고 싶은 책 12권... 부탁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은 세계 각국의 책과 서점을 줄 세워 준다. 인스타에서 어떤 이탈리아 책 소개를 구독했더니 비숫한 종류가 귀신처럼 나타난다. 프랑스, 영국, 터키, 한국, 일본의 책 소개가 덩달아 따라 나온다. 유튜브에서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추천곡을 계속 올려준다. 오아시스 노래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누르면 그 전에 내가 즐겨 듣던 곡들이 줄지어 나온다. 부탁하거나 선택하지 않아도 알아서 올려준다. Stand by me, Wonderwall, Some might say, Rock n Roll Star, The Masterplan, Supersonic, Live forever, Whatever, Champagne Supernova... 완전히 감시당하는 기분인데. 어쨌거나 유튜브든 인스타든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다.
인스타와 유튜브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더욱이 흥미롭다. 알아서 좋아하는 비슷한 내용물을 덩달아 추천도 해준다. 한번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클릭하고 스크롤한다. 죽을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 구하기, 올해 최고의 고고학적인 발굴, 왜 걸작품이라고 하는가, 여신 같은 몸매와 천상의 얼굴에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면서 엉덩이를 흔들고 가슴을 출렁이는 쇼츠... 통통 튀는 피부에 숨막힐 듯한 관능을 자랑하는 저 아름다움은 10년을 못간다! 금방 시들어버릴 꽃이라 더더욱 빛을 발한다. 이젠 실제 장면에 AI를 써서 가상 인물이나 대사를 집어넣은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속지 말자. 더 뭘 바라나? 거의 중독되어 빨려 들어간다. 무엇보다 접하는데 아무 부담이 없다. 연결만 하고 그냥 보고 들으면 된다. 시간도 많이 필요없다. 대부분 게시물은 길지 않으니까. 길면 중간에 멈췄다가 연이어 보면 된다. 그런데 책은? 가까스로 펼쳐도 몇 분 가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를 써야 한다. 이해가 잘 안 되면 다시 읽어야 한다. 눈알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자칫 줄을 잘못짚어 읽을 수도 있으니…
이젠 이미지에 홀려 문자는 뒷전이 된 지 오래다. 동네 책방 소개를 보면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처절하다. 직업으로서 책방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얼핏 보아도 괴로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서점만으로는 절대 고객을 끌 수 없다. 서점이 책만 파는 공간만 아니라 독서 공간을 만들어 준다. 책방은 카페나 찻집 역할도 덩달아 한다. 독립 출판을 꿈꾸는 운영자는 북토크를 주최하고 독서 클럽을 조직한다. 그리고 인스타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하게 홍보를 한다. 동네 책방지기들이 협회를 만들어 생존을 위해 연대한다.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가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직업일텐데. 도무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지 출판을 하고 책방을 운영하지! 예전 한국에 살 때 음악회 갔을 때의 느낌이 문학쪽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끼리끼리 모여 알아주고 즐거워하는 가족 잔치. 시 읽는 사람보다 시인이 더 많다!
그렇지만 이미지를 통한 정보 습득은 즉물적이고 즉각적이다. 반성적인 사고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한편 느린 호흡으로 접근하는 독서가 장점도 있다. 문자를 보면 뭔가를 생각하고 떠올린다. 언어에는 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뜻도 함께 있으니까. 이게 다른 매체를 쓰는 예술 분야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예컨대 목소리를 통해 표현되는 노래가 나한테는 가장 즉각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사이렌은 황홀한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음으로 몰고갈 뻔 하지 않았나.
지난해 시월 중순에서 올 일월 중순까지 나로서는 믿기 힘들 만큼 여러 권 독파했다. 여느 해라면 몇 년 걸쳐 읽을 분량을. 내가 하는 일이 육체적으로 피곤한 직종이어서 자투리 시간이 나도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다. 입에 발린 소리. 마침 일이 줄어들고 가족이 한국 다니러 간지라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보슬이가 떠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해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났으니 뭔가를 해야지. 멍하니 있을 수만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