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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6. 2022

죽기 전에 꼭 읽고 싶은 책, 스피노자의 [윤리학]

서양 철학사에서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는 일원론을 주창한 스피노자의 역작 [윤리학]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감정(욕망, 기쁨, 슬픔, 지복)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행복에 이르는 길(신을 향한 지적인 사랑)을 제시한 이 책을 죽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다. 코로나 감금 기간 중에 불안감에 시달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와 연계되어 스피노자 철학이 새로 주목 받는다. 철학에 문외한인 나까지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정신(영혼)과 육체(물질)의 이원론이 대세인 서양철학에서 일원론을 주장한 스피노자는 손으로 광학 렌즈 깎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철학자이다. 그러니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잘 조화시킨 보기 드문 인물이다. 에스파냐 출신 유태인인 스피노자 집안은 할아버지 대에 종교 박해를 피해 포르투갈 리스본에 정착하였다가 프랑스 낭트를 거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이주한다. 잘 나가는 수출입 상인인 스피노자의 아버지는 종교의 자유가 확실히 보장되는 자유도시 암스테르담에 정착한다. 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스피노자의 집은 유태 교회당과 유태 신학교가 있는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거주지역이었다. 그런데 스피노자의 집과 거의 벽을 맞대고 렘브란트가 살았다. 스피노자가 어렸을 때 이미 거장이 된 렘브란트를 마주쳤기 쉽다. 그래서인지 렘브란트는 유태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적잖이 남긴다. 스피노자는 유태인 거주지역에 있는 에스파냐어로 교육하는 유태 초등학교를 다닌다. 이 학교에서 모국어인 포르투갈어, 문학 언어인 에스파냐어, 상업과 법 그리고 유태 문화어인 네덜란드어 이외에도 헤브라이어와 아람어도 배운다.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고대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알았다. 그리고 22세에 당시 학자들의 공통어인 라틴어를 배운다. 라틴어 습득과 함께 연극, 철학, 의학, 물리학, 역사학, 정치학에 입문한다.

 

 1656년 스물셋에 스피노자는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사상으로 유태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영구 파문당한다. 그 결과 유태인들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게 된다. 당시 그는 유태 신학교에서 율법 박사 랍비가 되는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스물다섯 살 때 유태교 광신도한테 흉기로 찔린다. 어떻게 종교적 열정이 광신으로 빠지나를 상기하려고 그는 피 묻은 외투를 평생 간직한다. 그가 사랑에 빠진 카톨릭교도 소녀와의 사랑도 개종을 거부하면서 깨져버린다. 그는 후한 연금이라든지 대학의 교수 자리도 다 마다한다. 그저 그는 손으로 안경 렌즈나 현미경 렌즈를 깎는 일을 생활 방편으로 삼고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당시 스피노자의 렌즈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그는 아주 검소하게 생활한다. 그가 죽었을 때 남긴 돈은 이발소와 약국의 외상을 갚을 액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스피노자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까지 한 인물이다. 1660년 무렵 그는 암스테르담을 떠나 1663년에는 헤이그에 정착한다. 1660년대에 차츰 그는 무신론자로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다행 저서를 네덜란드어가 아닌 라틴어로 출판해서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는다.


 그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적인 철학을 부정하고 둘은 하나의 실체라는 일원론을 펼친 근대 이성 중심 철학의 선구자이다. 동양이야 일원론이 아주 자연스러운 학설이지만 이원론이 독단적인 교리처럼 굳다시피 한 서양에서 일원론을 주창한 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건이다. 신은 곧 (보편적인) 자연이요 (존재론적 조건인) 세계라고 주장한다. 또한 신은 초월적 존재(영원성)로서 현존(유한성)한다. 서양 철학에서 보기 드물게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내재성으로서의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통해 행복(영원성)에 이를 수가 있다는데… 아, 어렵다. 


 스피노자를 알아본다고 유튜브에 올라온 자료들을 수 십 편 보았다! 결론은 원전을 읽어야 한다였다. 그가 생각하는 신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어서 선호나 모럴이 없다. 이 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관과 통한다. 기존 유일신교의 관점에서 보면 신을 부정하는 세계관이다.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이 워낙 지대하여 스피노자주의와 스피노자주의자라는 용어가 널리 퍼져 있다. 프랑스의 18세기 자유사상가 계몽주의 철학자 특히 디드로한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는 1669년 친구이자 제자인 아드리안 쾨바흐(Adriaan Koerbagh)가 기독교를 규탄하는 글을 출판했다가 징역형에 처해져 감옥에서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에 충격을 받고 스피노자는 저술 중이던 [윤리학]을 중단하고 1670년 "철학하는 자유"를 옹호하고 무신론으로 고소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신학적 정치적 논설]을 출판한다. 이 책이 출판되자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진 라이프니츠를 비롯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칼뱅주의자한테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종교계로부터 규탄받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라틴어로 쓰고 익명으로 또 출판 장소까지 속여 출판하여 1671년에는 검열을 받고도 흐지부지 넘어가지만 1674년에는 완전히 금서조치를 당한다. 그가 살아서 검열을 우려한 나머지 유고로 남긴 16년간의 역작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서인 [윤리학]은 사후에 친구들이 출판한다.


 그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는 이웃 동네 델프트의 거장 베르메르처럼 마흔넷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천재 박명! 그래서 오래 살면 천재라도 천재가 될 수 없다!? 아니다. 오래 살아도 천재는 천재다.


 시간이 갈수록 스피노자의 골수팬은 늘어만 간다. 덩달아 나도 그 대열 꽁무니에라도 끼고 싶다. 그럼 그 나이에 "철학을 하자"는 거냐? "그게 아니고" 죽기 전에 스피노자를 꼭 공부해보고 싶다는 뜻…  


 최종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제출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터벅터벅 비트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서대문 대로를 걸어 내려오는데 난데없이 어떤 남자가 앞길을 가로막더니 다짜고짜 "철학 좀 하게 생겼네." 하며 손을 뻗으며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안경을 잡아당겨 안경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얼른 안경을 집어 들어 짓밟혀 망가질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피했다. 까만 뿔테도 아니고 가벼운 금테 안경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이해 가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길가는 사람을 무턱대고 붙잡아 안경을 뺏으려고 한 그 남자의 행위며 "철학하게 생겼다."는 말은 왜 나왔을까? 편집자한테 "문장이 껄끄럽다."는 지적을 받아 멍한 상태였는데 또 이런 불의의 공격을 받다니! 이런 사건을 어떻게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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