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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7. 2022

[세상의 기원]의 모델이 밝혀지다

11월 중순 [다음]의 내 블로그에서 « 세상의 기원의 모델이 밝혀지다. »라는 글에 대해 청소년 유해물이라고 검열이 들어왔다. 일방적으로 [세상의 기원]을 삭제하고 항의하려면 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한 동안 기분이 묘했다. 아마도 남녀의 섹스를 드러내는 이미지가 들어갔다고 내린 조치인 모양이다. "청소년 유해 음란성 게시물"이라고 규정지었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과 ORLAN의 [전쟁의 기원](1989)의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렇지 일단 경고를 하고 합의하여 삭제 조치를 취할 것이지 일방적으로 조치부터 취하고 통고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그 내용을 쓴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렇다고 외설적인 면을 부추기려는 목적에서 쓴 글도 아니고 결국 예술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판결이다. 어쨌거나 30일 이내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 자동 영구 삭제한다고 통고를 했다. 세상에 나도 이런 경험을 할 줄이야. 내가 무슨 전문 작가도 아니고 유명 인사도 아닌데 개인 블로그 글에서 이런 검열 조치를 당하다니. 그렇다고 내 블로그가 영향력있는 흔히 말하는 파워 블로그나 인기 블로그도 아닌데 말이다.


내 블로그에 들어가 문제의 기사를 열면 "해당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 규제에 대한 안내는 회원님의 로그인 아이디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고객센터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0-11-17 규제)" 아무튼 화면 상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내가 작성한 글을 보관하려고 글 수정을 누르면 "이글은 운영정책 위반이 확인되어 관리자 삭제 조치된 글입니다."라고 뜬다. 그러니까 운영자인 내가 복사를 해서 따붙이기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화면 인쇄를 했지만 텍스트 오른쪽 일부가 잘려나갔다. 만약을 위해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검열이라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검열에 시달려왔나는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바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외설적이라고 독자들한테 검열당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부도덕하고 외설적이어서 풍습을 해친다고 1857년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검열당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쓴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타자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내 자신의 필사본 작성자가 되는 셈이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처럼 사진은 빼고 텍스트만 원시적으로 베끼는 작업을 수행해보겠다.

 

[세상의 기원]의 얼굴이 밝혀지다 !

파리에서 도박과 여성편력으로 유명했던 이집트 출신의 터키 외교관 칼릴베(Khalil-Bey : 1831-1879)가 주문하여 1866년에 쿠르베가 그린 것으로 칼릴베는 같은 해에 [낮잠, 두 여자 친구] (Petit Palais 소장)이란 작품도 동시에 주문한다. 도박과 여성편력에 돈을 물쓰듯 하다가 가산을 탕진한 칼릴베는 3년 뒤 자신의 85점의 컬렉션을 파는 신세가 된다. 쿠르베 작품 네 점을 비롯 그 중에 들라크루아의 [리에주(Liège) 주교의 살해](루브르 소장), 앵그르의 [터키탕] (루브르 소장), 테오도르 루소의 [밤나무숲 길] (루브르 소장)도 포함된다. 칼릴베는 콘스탄티노플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 자신의 컬렉션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유했던 경주마들도 헐값에 팔아치운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친 [세상의 기원]은 결국 1954년 파리에 망명한 헝가리 귀족으로부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사들인다. 라캉은 오랫동안 그림을 칼릴베가 그랬듯이 초록 커텐 뒤에 숨겨 보관하였다. 라캉은 이 그림을 가리려고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한테 같은 크기의 데생까지 주문한다. 1995년 국가소유가 되면서 오르세 미술관에 공개 전시된다.


클로드 숍, [세상의 기원, 모델의 삶], Phébus, 2018


2018년 9월 25일 르몽드지에 [세상의 기원]의 모델이 152년만에 누구인지 밝혀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몇 가지 설이 있어 왔지만 확실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판화와 사진 부서의 국장인 실비 오브나스(Sylvie Aubenas)가 99%라고 하니 믿을 만하다. 알렉상드르 뒤마 전문가이며 전기 작가인 클로드 숍(Claude Schopp)이 뒤마 아들(Dumas fils : 1824-1895)과 조르주 상드(George Sand : 1804-1876)의 서신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클로드 숍은 당시 쓰이지 않던 영어에서 온 interview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서신의 원본을 대조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interview가 아니라 interieur라는 단어임을 확인한다. 오타에서 어마어마한 비밀이 밝혀진다 ! 클로드 숍은 "연구로 알아낸 게 아니고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 여인이 바로 세상의 기원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숍은 머리가 돈 듯했다고 밝힌다. 숍은 속으로 "유레카 !"를 외치며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틀어놓는다. 실비 오브나스는 무용수 시절 콩스탕스 케니오(Constance Quéniaux : 1832-1908)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썹의 무용수"라고 묘사된 것과 거웃의 수북한 검은 털과 일치한다고 뒷받침한다. 공연예술 기사를 많이 쓴 테오필 고티에는 콩스탕스가 "아름다운 검은 눈에 우아하고 단아하게 춤추는 무용수"라고 칭찬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나다르(Félix Nadar)가 찍은 것을 포함 콩스탕스의 사진이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 오르세에도 콩스탕스의 사진이 두 점 있다.


칼릴베와 친했던 [춘희](1852)의 작가 뒤마 아들도 마찬가지로 고급창녀에 탐닉한 인물이자 그림 수집가이다. 사실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두 인물은 같은 정부를 나눠가지기까지 한다. 바로 [세상의 기원]의 모델이었을 거라고 믿은 아름다운 고급창녀 잔 드 투르베(Jeanne de Tourbey)이다. 잔 드 투르베는 파리의 저명한 남자들을 두루 꿰차는 최고급 창녀가 된다.

 

파리코뮌(Paris Commune)에 적대적이던 뒤마 아들은 파리 코뮌에 적극 가담한 쿠르베를 지목하여 1871년 6월 조르주 상드한테 힐난조로 이렇게 쓴다. "오페라 무용수 케니오 양의 가장 미묘하고 낭랑한 그 속을 그려서는 안되지요. 그 속을 가끔 들락거린 터키 남자를 위해 아주 실물 크기로, 또 남자가 필요없는 두 여자를 실물 크기로 그려서는 안 되지요. (…) 이 모든 게 상스럽기 짝이 없어요." "남자가 필요없는 두 여자"는 1866년에 그려진 [낮잠, 두 여자 친구]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역시 쿠르베한테 적대적이었던 플로베르의 막역한 친구, 작가이며 비평가인 막심 뒤 캉(Maxime Du Camp)은 쿠르베가 죽은 다음 해인 1878년 "식당 옆 창 없는 욕실에 초록 베일로 가려 보관한 이 작은 그림을 위해 (…) 어떤 이슬람교도가 황금 무게로 지불한다."고 쓴다.

 

모델의 주인공은 파리 오페라단 무용수 출신의 콩스탕스 케니오로 1866년 당시 34세였다. 10월 4일 출판되는 클로드 숍의 [세상의 기원, 모델의 삶](Phébus, 2018)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콩스탕스 케니오는 고작 3년 남짓 파리에 머물렀던 칼릴베의 정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도박할 때면 동반하여 행운을 가져다 주는 마스코트 역할을 맡았다. 칼릴베가 도박에서 딸 때면 상당 몫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떠난 뒤에도 콩스탕스 케니오는 여전히 신문의 가십난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무용수가 아니라 관객으로 주로 오페라 가수 출신의 폴린 담롱과 함께 팔순의 저명한 코믹 오페라(opéra-comique) 작곡가 오베르(Auber)를 동반하는 여인으로 화제거리가 된다. 그녀는 오베르의 기쁨조 일원으로 서로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네 아씨들(Euphrosine Poinsot, Pauline Dameron, Edile Riquer, Constance Quéniaux)"의 세 여인들과 연인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오베르의 "아씨들"은 에딜 리케르를 빼면 다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중년에 이른 콩스탕스 케니오는 이렇게 묘사된다. "아주 우아하고 아리따우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한 파리 여인에 아주 세련된 화장 취향을 가진 무용수 케니오 양 (…) 오페라의 무대 밑 지하층에서 나오기 전에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기품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 같다. 진정한 그리고 최고의 사교계 여인이다." (르골루아 Le Gaulois, 1878년 8월 5일)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고 문맹의 어머니를 둔 콩스탕스는 14살에 파리 오페라단의 무용수로 들어가 27세까지 단역을 주로 맡다가 파리의 내노라하는 뭇 남성이 탐하는 고급 창녀가 된다. 파리 오페라단의 무용수라고 하면 창녀의 대명사로 오페라에 정기 회원권을 가진 남자는 무용수들의 준비실 뿐 아니라 막간에 대기실까지 들어와 무용수를 고를 수 있었다. 보수가 보잘 것 없는 무용수들은 현실적으로 후원자가 필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의상은 무용수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였다. 무용수로 성공을 거두기보다 돈 많은 후원자를 찾아서 신분상승하는 발판을 삼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칼릴베의 정부이던 잔 드 투르베가 나중에 루완(Loynes) 백작부인이 된다. 콩스탕스는 뛰어난 무용수는 아니지만 남자를 끌어들여 이득되는 관계를 만드는 재주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망토에 숨겨 그림을 이동시킬 때 공쿠르 형제와 함께 이 그림을 보았을 뒤 캉은 1878년 쿠르베를 비난하는 글에서 콩스탕스를 "전 파리의 명사들한테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여자로 묘사한다. 고급창녀로 유복해진 그녀는 파리의 마들렌 성당 가까이 살았는데 카부르(Cabourg : 노르망디 해안의 휴양 도시)에 고급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카부르에 가던 시절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고급창녀로 나오는 부르주아 화상 스완(Swann)의 정부 오데트(Odette)의 모델일 수도 있다. 콩스탕스는 이 별장에 여자 예술가들만 유숙시켰다. 클로드 숍에 따르면 콩스탕스는 돈 많은 남자들의 정부이기는 했지만 여자와 같이 살았을 거라고 한다. [낮잠, 두 여자 친구]에서 왼쪽의 검은 머리 여인이 콩스탕스일 가능성이 높다.

 

칼릴베의 정부로 콩스탕스는 1859년부터 무용은 그만둔 상태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정숙한 여인으로 탈바꿈한다. 그야말로 참회한 성녀 막달라 마리아가 된다. 말년에 콩스탕스 케니오는 에딜 리케르와 함께 가난한 여자들을 도와주고 고아들을 돌보는 자선사업이나 특히 가난한 예술가들을 아낌없이 후원하여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거듭 난다. 클로드 숍과 대담한 AFP 기자의 기사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러니 "과거는 덮어두는 법이다". 쿠르베의 [꽃](1863,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은 케니오가 소장한 정물화인데 한가운데 앞쪽이 활짝 벌어진 빨간 동백꽃을 통해 콩스탕스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동백꽃은 뒤마 아들의 [춘희](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으로 원제는 [동백꽃을 꽂은 여인]이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오르세 소장)는 동백꽃(?)을 꽂고 있다.)를 통해 고급창녀의 상징이 된다.

 

이제 머리도 팔다리도 없이 유방과 복부 그리고 넓적다리를 포함한 음부만 실물 크기로 살아숨쉬는 듯 묘사한 그림과 사진에 드러난 콩스탕스의 정숙한 이미지를 연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새삼 사람의 겉과 속을 다 알기는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원래 인간은 아주 복잡한 존재라고 보아야 옳다.

모델의 얼굴이 밝혀졌다고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달라질 게 있을까 ? [세상의 기원]은 콩스탕스 케니오라는 개인을 벗어나 당당하고 보편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르노가 난무하는 시대에 이 작품을 두고 외설적이라고 검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ORLAN, [전쟁의 기원](1989)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발기한 남성 섹스를 가짜 액자 속에 넣은 찍은 사진. 오르세에 전시될 때 아주 높은 곳에 전시하였다. 다리를 벌린 자세는 여성의 포즈를 연상시키지만 "인간의 또 다른 측면, 예술의 다른 측면"을 상징한다고 작가가 밝혔다. "이 여인한테 그랬듯이 머리와 팔 다리가 잘리고 섹스만 남은 남성의 신체가 어떻게 되나 알고 싶었다."하고 말한다.


2014년 5월 29일, 룩셈부르크 출신의 젊은 행위 예술가 드보라 드 로베르티스(Deborah De Robertis)가 황금색 가운을 걸치고 쿠르베 작품 앞에 주저 앉아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세상의 기원의 모델의 자세를 흉내내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섹스를 벌려 질 속을 보이게 한 채 관객들을 빤히 정면으로 바라본다. 상당수가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지만 육 분 채 지나지 않아 안전 요원의 제지로 좇겨난다. 드 로베르티스는 자신의 의도가 그림에서 없는 부분을 다 보여주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이게" 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 비디오를 보며 되풀이해서 떠오르는 생각은 쿠르베의 모델이나 행위 예술가 드 로베르티스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나 하는 질문이다. 과연 아름다움의 본질은 뭐란 말인가 ?


L’Origine du Monde : on connaît enfin l’identité de la femme du tableau, 2018.09.25, Marie Claire의 기사를 보면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 게재한 사진 »

칼릴베, 1872, 개인 소장. 터키 외무 장관 시절의 칼릴베

쿠르베, [세상의 기원], 1866, 오르세 미술관

[낮잠, 두 여자 친구], 1866, 프티 팔레 박물관

디데리(André Adolphe Eugène Disdéri)가 찍은 콩스탕스 케니오, 프랑스 국립도서관, 판화와 사진 부서

나다르가 1861년에 찍은 콩스탕스 케니오, 프랑스 국립도서관, 판화와 사진 부서

팸(Pesme)이 1861년에 찍은 콩스탕스 케니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쿠르베, [꽃], 1863, 에르미타주 미술관

ORLAN, [전쟁의 기원], 1989  


베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타는 바로잡고 껄끄러운 부분은 일부 표현을 고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용이나 시각을 바꾼 것은 절대 아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세상의 기원]은 몇 년 전까지 후미진 전시실 안쪽에 전시되다가 이제는 쿠르베의 작품만 모아둔 중앙복도 옆 전시실로 옮겨놓았다. 이 작품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보카치오의 의견을 베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예술 작품이 외설적이다 아니다는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달려 있다.


참고 자료

Claude Schopp, L'origine du monde, vie du modèle, Phébu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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