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샤 pacha Mar 06. 2022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2

사운드와 보컬의 절묘한 조화로 예술성이 확보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신고전주의 그림이나 조각이 주는 기하학적이고 잘 마무리된 아름다움에서 아쉬운 여운이 남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신고전주의 대표 화가 다비드(David)나 조각가 카노바(Canova)를 떠올리자. 엄밀히 말하면 퀸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 사운드를 앞지른다고 해야겠다. 역시 전설적인 헤비메탈 그룹인 레드 제플린에서는 로버트 플랜트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전설적인 연주자들에 묻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차지하는 솔로가 돋보일 때가 많다. 존 본햄의 드럼도 레드 제플린을 전설로 이끌어올린다. Black dog, Celebration day, Kashimir, Rock and roll... 


느린 템포에 반복적인 리듬을 주로 구사하는 블랙 사바쓰도 오지 오스본의 보컬이 헤비메탈 사운드에 뒤처지는 느낌이다. 리더기타 토니 아이오미(Tony Iommy)의 무거운 리프는 정말 멋지다. 빌 워드(Bill Ward)의 드럼 역시 매력적이다. Paranoid, Iron man, She’s gone... 


순수한 연주곡이 많은 산타나의 경우 보컬에 비해 카를로스 산타나의 리더기타가 단연 압도적이다. Black magic woman, Dance sister dance, Evil ways... 


마이크 올드필드 그룹도 보컬보다는 리더인 마이크 올더필드의 기타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가 만들어내는 연주가 돋보인다. 보컬 없는 순수 연주곡이 꽤 많다. 세련되고 도회풍이며 산사에서 흘러나옴직한 선적인 멜로디나 보컬이 곁들어지더라도 청아한 가수의 목소리가 참 맘에 든다. Moonlight shadow, Shadow on the wall, Family man… 


좀 정신없는 사운드로 정열적이고 흥겨운 멜로디를 구사하는 유라이어 힙도 리더싱어가 여럿이지만 연주와 노래가 조화를 잘 이룬다. 유라이어 힙 단원들은 연주도 노래도 다 잘 한다. 데이비드 바이런(David Byron), 켄 헨슬리(Ken Hensley), 존 로톤(John Lawton)뿐 아니라 개리 테인(Gary Thain)도 솔로로 부른다. 개인적으로 카리스마 넘치고 고음에 청아한 핸슬리의 목소리에 귀가 쏠린다. July morning (David Byron), Lady in black (Ken Hensley), Sympathy (John Lawton), Easy living (Gary Thain)… 


레인보우의 경우 경쾌한 춤곡풍의 로맨틱한 멜로디에 폭발적인 로니 제임스 디오의 보컬이 균형을 이룬다. Black sheep of the family, Kill the king, Long live rock n’ roll, The temple of the king(Doogie White 보컬)… 디퍼플도 이얀 길런(Ian Gillan)의 보컬과 연주가 잘 어울린다.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 두기 화이트(Doogie White)도 디퍼플의 보컬로 활약한다.


한때 나는 비틀즈 네 멤버의 음성을 구별하려 애쓴 적이 있다. 하긴 그 시절엔 누가 누군지 멤버 개인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비틀즈라면 무턱대고 열광하던 팬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멤버 각자의 이름 정도나 겨우 아는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앨범 자켓이나 팝송책을 통해 비틀즈의 사진 몇 장 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 얼굴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던 판에 각자의 음성을 구분하려들다니… 그 시절엔 비틀즈의 위대한 업적을 들추며 매료된 것 또한 사실이다. 빌보드 차트에 오른 1위 곡이 몇 개며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었나 하는 류였다. 비틀즈는 정말 오래된 나의 우상! 이젠 우상이 신이 되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들은 이미 팝계의 무서운 아이돌이었다. 팬치고는 세대 차가 성큼 나는 한참 뒤늦은 팬이다. 고등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마치고 나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존 레논 특집의 팝송책을 산 일이다. 고등학교 앞길에 있는 54레코드점 주인이 선곡해준 비틀즈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퍽 자주 들었다.


그래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 멤버는 폴 매카트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15년 6월 11일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 : 파리 북쪽에 자리잡은 수용인원 88000의 대형 스타디움. 방탄소년단도 이 스타디움을 꽉 메우는 공연을 두 차례 한 바 있다.)에서 열린 그의 공연에 갔다. 현장에서 듣는 그의 목소리는 유튜브에서 들을 때보다 좀더 싱싱하였다. 존과 함께 리드싱어로 활약한데다 생김새도 훤칠해서 일테다. 그런데 존 레논과 두엣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 어느 순간이 되면 누가 폴이고 누가 존인지 아리송해진다. 악기와 함께한 사진에서 드러머인 링고 스타를 찾는 일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리드기타를 치며 백코러스에 많이 참가하는 조지 해리슨에 대한 관심도 크게 없었다.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샘물 같은 신선한 사운드와 기막힌 화음에만 관심이 쏠렸으니까.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화음은 솜사탕처럼 감미롭다. 


비틀즈 음악이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 들어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어쨌든 이 때문에 난 비틀즈를 계속 좋아한다. 친구 J와 나는 비틀즈를 팝의 모차르트로 견주는데 동감하였다. 언제 들어도 새롭고 탄력 넘치는 멜로디! 흥겹고 가볍지만 아리한 슬픔이 배어나는 곡조!! 무엇보다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용솟음치는 그 엄청난 에너지!!! 이건 아마도 이십 대만 가능하지 싶다. 언제 들어도 신선한 비틀즈 사운드는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통해 이젠 가뭇없이 가버린 젊은 시절을 되살려준다. 그들의 음악은 상상력을 자극해서 뭔가 쓰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난 희한하게 비틀즈 마니아와 쉽게 친해졌다. 비틀즈를 매개로 친구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때 나랑 내밀했던 친구들은 거의 다 비틀즈 열광팬이란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성향이 음악을 통해서도 드러나나 싶다.


J는 비틀즈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나랑 가장 잘 통했던 친구다. 노래방에서도 우린 으레 각자 좋아하는 비틀즈 곡을 부르곤했다. She loves you. Hello goodbye, Something, Yellow submarine, And I love her, Come together, Yesterday… J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난 다시 프랑스로 오면서 우리는 연락이 끊어졌다.


묘하게 J와 함께 친했던 H. 겨울방학 동안 편지교환으로 우린 무척 가까워졌다. 그는 꽃으로 디자인 된 봉투며 편지지로 쓴 두툼한 편지를 내게 보내왔다. 그해 겨울처럼 우체부를 그리도 목빼 기다린 적도 없다. 편지 내용 가운데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를 얘기하게 되었다. 나더러 "섬세한 말더듬이"라 하던 그가 좋아한 곡들이다. Penny Lane, Fool on the hill, Eleanor Rigby, Nowhere man…

그때를 생각하면 “우울한 샹송”이란 시가 떠오른다. 그와 난 대형 강의동에서 붙어 앉아 인류학 개론을 같이 들었다. 강의는 뒷전으로 한 채 필담을 나누다 중간에 빠져나와 원형극장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며 속내 얘기를 오래 주고받았다. 우리는 해가 설핏해지면 내려와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카페 ‘베리’로 가곤했다. 그때마다 "솔" 한 갑과 라이타를 하나 사들고 카페로 들어갔다. 오래 연락이 끊겼다가 우리가 다닌 대학 캠퍼스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그 때 우리는 음악이 아닌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번역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전화 연락만 몇 차례 하고는 내가 프랑스로 되돌아 오면서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끊임없이 화려한 변신을 하는 그는 전공을 바꿔 미학과 대학원을 다닌다더니 그때는 도예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교문 앞 시위가 격렬한 날이었다. 이날도 최루탄이 교문 안쪽에 폭죽처럼 날아올랐다. 최루탄 냄새는 멀리서도 재채기와 콧물을 나게 하고 은행잎이 노랗던 가을 날 오후였다. J가 대뜸 자기 과 친구 집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친구는 비틀즈의 음반은 물론 기록 영화 같은 것도 죄다 있다나! 최루탄은 봉천동으로 가는 언덕배기 너머까지 바람에 실려왔다. 순환도로에서 관악산 기슭 언덕쪽으로 제법 올라가서 그 친구의 집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 아니라 그가 혼자 쓰는 집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비틀즈의 뮤직 비디오를 보았다. 소리로만 들어왔던 비틀즈에 가까운 실체와 만난 셈. 지금까지 뇌리에 생생하게 박힌 이미지는 영국 여왕이 참석한 공연 실황이다. 체면 몰수하고 발광하는 젊은 여자팬들의 발광의 도가니를 담은 화면은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비틀즈의 미국 상륙 장면이다. 미쳐 날뛰는 팬들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려 엄청난 숫자의 말탄 경찰들이 과격한 시위를 진압하듯 동원된 진풍경이었다. 대중가수의 공연장에서 진풍경 중 하나는 풍속 경찰이 왔다 갔다 하면서 관중들을 감시하는 장면이다. 괴성을 지르며 평펑 눈물 흘리는 어린 십대 소녀팬들한테 끊임없이 티슈를 뽑아주는 아줌마도 무척 인상적이다. 내가 오디오 세트며 비디오 기기까지 갖는 일이 요원하던 시절이라 그 친구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리버풀을 몸소 여행하고 수집해 온 거였으니… 학교에서 한두 번 마주친 거 빼고는 그와는 더 이상 만나지는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