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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적 Aug 10. 2023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한국이랑 다르니까요

집계약 후 입주하는 날, 대개는 세입자와 함께 나와 중개인(파트너) 같이 참석해 가구나 집기상태, 하자, 가전제품의 작동여부까지 확인을 한다. 이 모든 게 끝날 무렵쯤 손님에게 안내 책자를 넘겨주며 앞으로 체류하는 동안 이것만은 꼭 지켜달라고 당부하는 몇 가지가 있다. 혹시라도 싱가포르에 살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것들은 다음과 같다.



Dry, Clean, Gentle


1.Dry(최대한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것)


열대우림기후(Tropical Rainforest Climate , 熱帶雨林氣候)에 1년 내내 고온다습한 싱가포르의 콘도는 거실이나 주방, 욕실바닥에 대부분 대리석(천연/인조)이나 세라믹 타일이 시공되어 있다.

열대기후 의 한 종류로, 매월 강수량이 풍부하여 연중 푸르고 무성한 상록활엽수들로 밀림을 이루는 기후이다. 열대몬순기후나 사바나기후 등 다른 열대기후와 달리 건기가 없으며, 모든 달의 강수량이 60mm가 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열대기후의 특성으로 연중 햇빛이 풍부한 데다, 식물이 자라기에 충분한 강수량이 더해져 세계에서 가장 울창한 밀림인 열대우림을 볼 수 있다  

외관상의 문제 외에도 대리석의 차가운 재질로 가능한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목적이긴 하나 이런 기후에서는 관리가 쉽지 않다. 커피, 주스나 와인 등 산이 가미된 음료를 쏟기라도 하면 겉에 표면이 벗겨져 얼룩처럼 보이거나, 물기 있는 세제, 장 봐온 비닐봉지 같은걸 잠시 방치해 뒀다가는 대리석아래로 스며든 물기가 녹이 슬어 (주황색) 얼룩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설마 그거 잠깐 뒀다고 그럴 수가 있나?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Yes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리고 순식간에
욕실주위는 (물기 없이) 건식으로 사용해 주시고, (환풍기 있다고 밖으로 연결된 게 아니니) 문 열어서 환기도 자주 시켜주시고.. 자세한 것은 책자에 설명이 있으니 바쁘시더라도 반드시 한번 읽어주시는 게 좋아요.


그렇게 퇴거할 때쯤 되면 '나름 (환기)한다고 했는데... (곰팡이가) 올라오더라고요' 내지는 '살다 보면 보통 이 정도는 생기지 않나요..?' 하는 손님들도 꽤 있고, 퇴거하는 집에서 가끔 아래와 같은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물기로 흥건하게 두었던 욕실 바닥의 얼룩, 하루이틀사이 생길 수는 없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번지는 곰팡이(천정)

그러나 '모두'에게 당연한 것_보통_은 아니다 (이게 당연한 사람은 그저 기준이 다르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한국의 경우 외관만큼이나 관리/실용성위주의 재질로 시공되는 경우가 많기에 관리가 용이하나 이곳은 그렇지 않다. 설명하면서 위의 사진을 예로 보여준다 한들 '나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에 한국에서 살던 대로 하면 이런 일 들은 의외로 아주 쉽게 발생한다.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오래되지 않아 곧.


 

2.Clean(최대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것)


청결도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크게 눈에 안 띄거나, 청소가 어려운 구조이거나 그 어떤 이유가 됐던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오버하면_강박증인가 싶을 정도로) 쓸고 닦고 하지 않는 이상 관리가 매우 어렵다. 나 역시도 결벽증 타입은 아니었으나 싱가포르에서는 집을 모시고 사나 싶을 정도로 수시로 쓸고 닦고 한다. (더 정확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돈을 뿌리고 나갈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릇을 말리는 물받이가 온통 녹투성이. 세면대며 세탁기아래 물이 자주 닿는 곳인 것은 나도 인정한다.
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상태 좀 봐달라고 요청해서 방문했던 날. 곧 이사 갈 것도 아닌데..도둑이라도 들었을리 만무하고;;

위의 상태로 지속될 경우 벽이나 바닥에 얼룩이 생기는 건 그다지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이렇게 계시면 안 되십니다, 청소 좀 하세요'라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집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하게 바랄 뿐-

욕실입구에 매트를 깔지 않아 물기 머금고 변색된 나무 바닥, 혹은 짐이있던 자리 와 통로가 명확히 구분이 되는 침실 나무 바닥

바닥 커버하려고 매트를 깐다 해도 뒷면이 고무재질인 건 피하는 것이 좋다. 자주 걷어내고 청소하지 않으면 습기로 인해 고무가 녹아 눌어붙고 그대로 자국이 남기도 하기 때문

바로 이렇게
깔끔하게 보인다고 매트까지는 깔았지만, 바닥부분 청소가 충분치 않아 방치되면 생기는 참사들

참고로 위의 경우는 "(새 입자의) 관리소홀" 명목으로 교체나 바닥의 표면연마등 못해도 한화 100만 원 이상 (세입자가) 물어내야 하는 하자들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니 당부에 당부를 더할 수밖에.



3.Gentle (최대한 조심스럽게 취급할 것)


건물의 낙후나 고장이 잦은 편인 이곳에서는 문은 최대한 살살 닫아야 하고, 벽은 수성페인트를 사용하므로 벗겨지거나 하지 않게 못을 박거나 벽에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부탁'이니 어디까지나 참고는 하되 반영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건 자국도 안 남고 흔적 없이 잘 떨어져요.. 라며 붙이고 2년 정도 되면 벽 페인트와 같이 떨어지기 마련
1-2년 후 그림을 떼어내고 나면 온갖 자국이 남거나, 가구등 부딪혀 벽 모서리가 깨져나가기도 한다
소파 얼룩/ 인조가죽(비닐)은 가끔 로션등으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조금씩 갈라지기도 한다.
물건을 떨어뜨려 옷장 모서리가 까지거나 문을 쾅쾅 닫아 레일에서 벗어나 닫히거나 열리지 않는 경우도 흔한 케이스이다

'이 정도면 부실시공 아닌가요?' 내지는 '자재가 너무 부실한 거 아닌가요?' 라며 역정 내는 손님들도 가끔 있다. 어떤 제품이 어디에 어떻게 시공되는지 까지 중개인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제품/수리가격 또한 수리가 필요해질 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 가격을 알게 되는 것들도 많다. 한 예로 위사진(맨 왼쪽) 흰색 모서리가 살짝 까진 캐비닛문. 얼핏 봐선 크게 특별할 게 없는 문이었다. 퇴거할 때 집주인이 (까진 곳이) 눈에 띄니 원상 복구요청을 해서 알아본 결과 독일에서만 제작/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비행기 편으로 문을 보내 수리하면 SGD $6000(한화 586만 원 상당) 드는 매우 비싼 제품. '거참(비싼대도) 부실하네요..' 하기도, 이미 벌어진 일을 '대체 왜 그러셨어요' 할 수도 없는 일.




'근데 왜 사람들은 물이 떨어져 있으면 바로 (물기를) 닦지 않는 걸까? 보면 집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것 같아'라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로컬중개인

'너 얼음물에서 떨어진 물방울 그대로 둬도 테이블 위가 알아서 마르는 곳에 안 살아봤지?

 이 나라(싱가포르)에서 처럼 애지중지 쓸고 닦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마르니까 문제가 안 되는 나라도

 많아.. 아마 그들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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