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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적 Aug 02. 2023

집만큼이나 중요한 중개인

모두가 프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 집주인이 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집주인이 한국사람이지만 이곳은 외국인 집주인이  많다. 싱가포리언 집주인이라 한들 해외에 거주하거나, 이동이 잦아 싱가포르에 거의 없거나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중개인도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를 주축으로 인도네시아, 서양사람들도 간혹 있고 중국계는 중국인, 인도계는 인도인 오너를 고객으로 두고 계약할 경우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기에 중개인이  어느 나라말을 히느냐에 따라  집주인의 국적이 추측가능한 경우도 있다. 집주인 측 중개인은 주인대변인으로서 문을 열어주거나 대신 소통하다 보니 계약할 때부터 나갈 때까지 세입자가 집주인과 직접 마주할 일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뷰잉의 일정조정은 중개인의 주요 업무 중 하나지만 바쁜 시기에는 굳이 네일 내일 따지지 않고 파트너(로컬 중개인) 대신 일정을 잡는 경우도 있는 나는 하루평균 50-60건, 많으면 200-300건가량의 문자를 주고받기도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바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몇 번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계속 알아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이 서기도 한다.



뷰잉 전날

안녕 나 XX의 XX인데, 이 집 아직 가능해?
세입자(집 구하는 사람) 프로파일?
일본인 6인가족(아이 4명) 2년 회사 계약, 입주 XX일, 예산 $7000 뷰잉은 내일 오후 12시 15분. 콜?
오늘 오후 6시 15분에 올 수 있어? 이따가 뷰잉 있어. 아래 2명(중개인)은 같은 집이니까 중복해서 연락하지 말고

싱글리쉬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문법이나 구색 제대로 갖춘 영어로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줄임말 같기도 암호 같기도 한 단어의 나열로 의사소통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는 정해진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문자를 보내야 하니 요점만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해서 보내는 편이다.

문의/의뢰할 때 무얼 확인해야 하는지 등 일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 상대가 단어 몇 개로 던져온다 한들 문제가 안되지만,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제 아무리 영어가 네이티브라 해도 그저 외계어 같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간혹 이쪽에서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문자 읽씹당하기 일쑤고,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집 구하기는커녕  보러 가야 하는 첫 스텝부터 꼬이는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다.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싶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아끼고 싶어 사람들은 중개인을 쓰는 것이다.


그녀의 문자대로라면 같은 집을 광고하는 중개인이 여러 명 있고 다른 사람 통할 필요 없이 본인과 계약을 진행하자는 의미이다. 대개는 누가 같은 곳을 두고 경쟁하는지 알고 있다 해도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은 피하라고 지정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동료일 수도 경쟁자일수도 있는 그들을 콕 집어 얘네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마치 우리 집에서 파는 떡볶이만 먹고 건너편 딴 집은 갈 필요 없어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떡볶이 도 집도 결국은 개취인 것을.


내가 연락한 당일 다른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기로 되어 있으니 같이 묻어가겠냐 묻는 것은 심플하게 서로 시간을 아끼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단 철저히 손님시간에 맞춰야 하는 로서는 다음날 가능여부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뷰잉 18시간 전

 나는 분명 연락한 날의 다음날 오후 12시 15분을 물어봤고, 그 시간대가 가능한지 확인하겠다던 그녀는 몇 시간 후 전혀 다른 시간을 제시해 왔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어 난데. 내일 뷰잉은 4시 반이야. 그때까지 오면 돼. 알겠지? 안녕"

"여보세요?!?! 내가 내일 오후 12시 15분 되냐고 물어봤는데 무슨 4시 반? 우리 손님 그때 시간 안돼"

"응 아무튼 시간은 4시 반이야. 바이"

"여보세요?!?"

뚜뚜뚜뚜-


아니 뭐 이런..!@#!$

본인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다시금 문자를 남겨 내 손님은 원래 입주자대타로 뷰잉에 참석하는 것이고, 뷰잉 할 때 입주자 포함 영상통화로 진행예정이니 버츄얼뷰잉에 참석하는 3명, 동행하는 우리까지 포함 모두 12시 15분 이외에는 시간이 안된다. 어려우면 그냥 약속을 취소하라고 답장을 했다. 물론 답은 없었다.



뷰잉 16시간 전

그래서 내일 된다는 거야? 손님한테 확정됐는지 연락해야 해. 최대한 빨리 알려줘
잠깐만. 확인 중
(2시간 후) 12시 반 오케이, 12시 15분 오케이


12시 반은 그냥 오타인가..? 뒤이어 12시 15분에 된다기에 알겠다고 답장을 하자 전화를 걸어온다.

(오후 10시 이후에는 방해금지모드 설정으로 내 폰은 전화벨이 울리지 않게 설정이 되어있어 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 12시 넘어 손을 흔드는(?) 알 수 없는 이모티콘. 아무래도 조금 심상치 않다.


뷰잉 15분 전

어느 집 (동이 나 호수)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근처 도착하면 자세히 알려주겠다 하더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우리도 다행히 약속장소에 도착전이니.. 중개인이 시간만 지켜준다면 문제는 없다.

그렇게 12시 15분 정각. 여전히 전화는 불통이고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경우 매물 광고에 매물의 동, 호수는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설령 같은 집이라 해도 약간 분위기가 다른 사진에 다른 매매가로 올라와있는 중복광고나 피싱용(이미 다른 사람이 계약을 했으나 광고는 그대로 두고 연락하면 전혀 다른 매물을 안내하는)도 꽤 많다. 특히 대부분의 중개인이 뷰잉 몇 시간 전까지 내지는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동, 호수를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는 흔해서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같은 방을 두고 여러 명의 중개인과 약속을 잡게 될 수도 있다.


뷰잉 일정 6분 경과

 전화는 받지 않은 채 문자로 동, 호수를 보내왔다.

12시 15분 확정이라며? (의역: 확정이라더니 이미 6분 지났는데 왜 않와?)
안돼. 집주인도 12시 반에 오기로 했어. 기다려줘 (의역: 애초에 15분에 올생각이 없었다)
우리 1층에 있어
금방 갈게


이 무슨 매너냐며 뭐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약속시간이 지났고, 탓해봐야 결론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굳이  감정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다소 어색한 눈웃음과 함께 핸드폰 액정너머 일본 손님에게 15분만 더 기다리자고 설득해 본다.


뷰잉 일정 15분 경과

도착했어? 우리 1시에 다른 손님이랑 약속 있어 (의역: 우린 15분기 다렸고 다음일정까지 30분 남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영상통화 액정너머 손님과 핸드폰거치대를 들고 선 손님, 동료까지 셋이 나란히 서서 15분은 꽤 길다. 기다리다 못한 우리는 해당집(위층) 앞으로 올라갔고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집주인과 마주쳤다.


이 상황은 곧

1. 이 모든 일정은 현재 세입자도 집주인도 아닌 중개인 본인일정에 맞추려다 결국 맞추지 못했고

2. 현재 세입자(2명), 집주인, 우리 손님 3명, 나와 동료까지 해서 총 8명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뷰잉 할 때 한 곳당 대략 20분+이동시간, 다음집 식으로 시간이 짜인다. 따라서 뷰잉이 20분이 지체되었다는 것은 다음에 잡혀있는 일정(이날은 다른 손님과 3군데가 더 잡혀있었다)이 마치 도미노 쓰러지듯 줄줄이 밀리게 되고, 다음 중개인이나 세입자들이 즐줄이 대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령 한 군데당 20분씩 늦어지면 마지막 중개인/세입자는 무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시간 늦어지면 뷰잉 캔슬당하는 경우도 꽤 있기에 시간 조절/엄수는 매우 중요하다. 경험 좀 있는 중개인이라면 모를 리 없고 최소한의 예의로서 지켜야 하는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뷰잉 일정 20분 경과

네 손님(집주인) 만났어. (의역: 우리는 바로 들어가서 집을 볼 수도 있어)


답도 없던 중개인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주인하고 들어가서 먼저 집보고 있어. 대신 너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믿어"


여기서 그녀가 말한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건 '상도덕을 지켜달라'는 일종의 경고 같은 것이다. 누가 됐던 가장 먼저 계약을 성사시키는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 집주인이니 (여러 명의 중개인이 동시에 광고를 하고 있다는 건, 먼저 기회를 잡은 사람이 임자라는 뜻이다) 혹시라도 집주인이 우리(내지는 다른 중개인)를 마음에 들어 해 직접 연락을 해온다면 그녀 입장에서는 우리가 본인의 손님을 가로챈 것으로 간주하고,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이라고 우기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25분 정도 늦게 집을 볼 수 있었고 뷰잉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개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못 왔는지 자초지종 설명이나 양해를 구하는 일도 없었다. 그 후 다음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언제 계약할 거냐는 독촉과 함께 다급한 듯한 전화와 문자는 이어진다. 행히도 내 손님은 다른 곳을 계약하고 싶어 했고, 다른 곳으로 오퍼 진행할 거라는 문자를 남긴 후 바로 그녀 번호를 차단했다.




내가 팔로우하는 어느 작가의 코멘트-

'너희가 인정하든 말든 나는 소중하다로 살지 못하고, 나는 소중하니 모두가 그걸 알아야 한다를 실천하는 사람, 지옥을 몰고 다닌다'

사실이다.

한번 계약이 성사되면 최소 2년간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 고르기엔 그녀의 대응이 눈앞에 훤하게 보이는 듯해서 이런 식으로라도 거를 수 있다면 미리 걸러두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이다. 물론 집을 구하는 입장에선 집을 최우선으로 봐야 하니 중개인이 아웃이라고 뜯어말릴 순 없지만, 자칫 이런 중개인한테 걸리면 평상시 30도가 넘는 이 나라에서 에어컨 고장 나도 2주 이상 심지어는 몇 달도 방치되는 지옥을 맛볼 수 있으니 예산등 사정상 조금 오래된 콘도를 골라야 한다면 딜브레이커(Deal-Breaker :협샹을 결렬하는 요소)까지 되지 않더라도 중개인을 눈여겨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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