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부동산 경매의 추억(1)
예전에 친구와 함께 부동산 경매 물건을 보러 임장(실제 장소에 가서 물건을 확인하는 행위)을 몇 번 다녀본 적이 있다.
친구는 결혼을 빨리했고, 아이가 3명인 외벌이 가장이었다. 결혼도 빨리하고 자녀도 빨리 가진 친구는 주변의 동년배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빨리 현실을 마주했고, 주변의 친구들이 연애, 자동차, 유흥 등에 돈과 시간을 쓸 때 그는 어떻게 하면 돈에 쪼들리지 않고 여유롭게 살 것인가에 몰두했다. 친구가 돈과 경제에 대해서 나에게 열변을 토하며 말할 즈음에는 나 역시 다른 동년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커다란 그늘 밑에서 안주하고 있었을 때라 그가 하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정도였지 공감할 수 없었다. 집안에서 용돈 받아쓰는 아이가 어른과 대화하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돈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많다는 이상주의적 삶을 살고 있었다(실제로는 나의 생각은 이렇다고 할만한 철학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세상의 냉정함이 슬슬 몸으로 느껴져 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생계를 위해 '대출'이란 걸 내다보니 친구가 그동안 나에게 말해왔던 경제적 여유(돈)의 소중함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한 친구와 나는 부동산 경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물건을 보고 임장을 다녀보기로 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몇 권 읽어보고 토론도 해보고 강의도 시간을 쪼개서 들어보고 했다. 그 정도로 바로 실전에 들어갈 일이 아니었음에도 우린 무모하게 물건을 보러 다녔다. 임장의 목적은 주변 환경은 어떤지, 그리고 시세는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 위장전입자는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험하게도 처음부터 특수한 물건을 건드렸다. 책에서는 말했다.
'안전하고 좋은 물건들은 경쟁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낙찰받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특수물건을 건드린다. 분석만 잘하면 돈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되는 건 철저한 준비와 풍부한 관련 지식이다'
우리에게 마지막 문장은 휴대폰 카메라의 인물 사진을 찍을 때처럼 포커스가 흐릿하게 보였고, 우리는 우리의 도전을 신명 나게 만드는 앞의 문장에만 집중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었지만 하룻강아지가 된 우리는 평범한 물건보다 특수한 물건을 잘 분석해서 그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리도 무지하고 무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들의 의지는 분기탱천해있었다. 하지만 정보를 알아내려고 물건 인근의 부동산에 들어가기면 하면 첫사랑 앞에서 주뼛주뼛 대며 서있는 사춘기 학생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서로 먼저 입을 떼기를 은근히 바랐다. 물건이 있는 근처 부동산에 가서 은근슬쩍 돌려서 물어보면 이미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우리를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합법적으로 경매에 참여하는 우리가 왠지 정보를 캐어 내기 위해 누군가를 겁박하는 건달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우리가 과연 이 일을 과연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라고 계속 생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느낀 몇 번의 일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일들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기억이 나는 일은 우리가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갔을 때였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경매물건을 확인했는데, 지분으로 나온 물건이었다. 지분이란, 한 부동산에 주인이 2인 이상이 되는 물건이었다. 우리가 확인한 물건은 컨테이너를 최근에 컨테이너로 리모델링한 시골 물건이었다. 집주인이 두 명이었고, 두 명 중 한 명의 지분이 경매로 나와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실례가 될까 비타민 음료를 한 상자 들고 찾아갔다. 할어버지 한 분이 계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 누구라요?"
"예 어르신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어르신 댁이 경매에 나온 건 알고 계신가요?"
"안 그래도 법원에서 편지가 계속 날아오더만요. 근데 왜요?"
"저희가 이 집에 관심이 있어서 어르신한테 몇 가지 여쭐라고 왔거든요."
"뭐에 관심이 있단 말이고 도대체. 일단 앉아 보이소."
"네. 어르신 그리고 이건 비타 오백인데 더울 때 냉장고에 넣어두고 챙겨 드세요."
".... 고맙소."
"어르신 근데 여기 혼자 사세요?"
"손자 손녀 그리고 내 이렇게 셋이서 살지요."
"아. 자녀분은 외지로 나갔나 봐요."
"그놈의 새끼 얘기는 하지도 마이소."
할아버지는 별안간 화를 벌컥 내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이 집 사서 뭐할라고 그래요? 어차피 들어와가 살지도 못할 텐데."
할아버지의 말씀을 추측하자면
'누군가 이 집을 사도 명의가 바뀌진 않으며, 집주인은 여전히 본인인데 왜 들어와서 살지도 못할 집에 돈을 내려하는가'였다
"근데 할아버지 저희가 이 집을 안사도.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누군가 이 집을 사게 되면 어르신하고 이 집 사신 분하고 분쟁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게 뭔 말이고."
"예를 들어서 어떤 모르는 사람이 이 집을 경매로 사서 어르신한테 나도 이제 이 집의 주인이니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으면 내 몫을 어르신이 사시든지, 아님 이 집을 팔아서 그 돈을 나누자라고 할 수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내 집을 왜 돈 주고 사노. 그리고 어떤 미친놈이 지 돈 내고 남이 살고 있는 집을 산단 말이고"
"음.. 그게 어쩔 수가 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라."
"네 실례했습니다."
우린 더 이상 할아버지를 화나게 할 순 없었다. 돌아가기 전 좀 떨어져서 집을 살펴보았는데 어르신은 깔끔한 성격이셨는지 시골집치고는 관리가 굉장히 잘되어있었고, 여기저기 곱게 키우신 화분이 놓여있는 걸 봤을 때 상당히 애착을 가진 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실제로 본다면 어르신이 법에 대해 무지한 걸 눈치채고 경매 당일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실 걸 확신하고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러면 내가 어르신께 말씀드렸던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르신을 뵙고 난 후 친구와 나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도저히 어르신을 상대로 아까 말했던 그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을 거 같아서였다. 근처에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친구와 말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혹시 저 집 때문에 왔어요?"
"예?"
"저 집 때문에 왔냐고 묻잖아요."
"왜 그러시죠?"
"내 따라와 봐요."
우리는 아주머니의 사뭇 진지한 표정에 끌리듯이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음료수를 두 개 내어오시더니 저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주저주저하다가
"아 답답게 그러지 말고 그냥 얘기해봐요. 나도 해 줄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그냥 집이 경매로 나와서 어떤가 보러 왔습니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일갈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토해내고 말았다.
"으휴.. 내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고. 지금 저 집이 경매로 나온 건 아들이 무언가 잘못해서 저리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이다. 무서운 사람들이 저 집에 와 아들을 찾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들은 천하의 망나니며, 일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등골을 빼먹으며 산다고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소식도 끊긴 상태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했다.
"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젊은 사람들이 좀 도와줘요 어르신."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없을 거 같은데요."
"아들 연락처를 제가 아는데 알려드릴까요?"
"아 저희는 이제 저 물건 안 할 거라서요. 안 받아도 될 거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주머니는 미리 적어놓으셨는지 작은 종이쪽지를 나의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전화라도 한 통해줘요. 그래도 지 애비 저렇게 시달리고 있는 거 알면 뭐라도 하지 않겠어요?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 아닌 거 같아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주머니가 처음 본 우리의 무엇을 보고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시골 특유의 문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할아버지의 가정사를 알게 된 우리는 얼떨떨한 채로 인근의 국밥집으로 향했다.
국밥을 반 정도 먹고 있을 때였다. 한 중년의 여성이 운 거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거 같기도 한 상기된 얼굴을 하고 가게로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연세가 꽤 있으신 백발의 노인 한분도 따라 들어왔다. 가게문을 향한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 중년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저 위에 집 경매 때문에 오신 분들 맞아요?"
"네?"
밥을 먹던 우리는 체할뻔했다. 다짜고짜 우리의 정체를 물어본 노인과 중년의 여성은 우리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맞은편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끌고 오더니 우리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