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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Oct 26. 2022

청양고추

그녀의 배려

아내는 나와 마찬가지로 소방관이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도 출동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곳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육아의 7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퇴근 후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나도 하긴 하지만 아내의 지분이 더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는 팀을 바꿨다.

그래서 내가 근무한 다음날은 아내가 일하러 나간다.

우리는 3일에 한번씩 같은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피곤하다.

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눈이 풀린 채로 웃고 있으면

더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하는 날

그 시간은 무엇이든 함께하려고 한다.

하지만 난 가끔씩은 너무 지쳐

누가 발로 차도 못일어날만큼 깊은 잠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때 아내는 집에 없다.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내가 좀 더 쉴 수 있게.

간이 안좋은 나를 위한 배려란다. 오래 살아란다. 

이러다가 아내 간도 안좋아질 거 같다.

내가 더 잘할게






굳게 닫아놓은 블라인드를 비집고 볕이 나와있다

작은 틈사이로 나온 볕을 피하지 못해

천근같은 여름이불을 밀어낸다

조용한 거실

'이럴리가 없는데'

냉장고 붙은 작은 쪽지하나

'희윤이랑 산책갔다 올게. 쉬고 있어'

아내의 배려란

요란하지 않은 공격

폐부를 찌른 그녀의 기습에

눈이 시큰해진다

전날 다져놓은 청양고추때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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