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찾아오는 시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4)

by 홍 필구

출동을 가는 중간에 우리는 항상 신고자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거는 이유는 현장 상황과 환자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신고자가 환자인 경우 특히 말할 힘도 없는 분들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전화를 받아도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빨리 와달라고만 말한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빨리 와주기만 해달라고 주문하는 현장은 대개 두 종류의 현장으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너무 아파서 도저히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말을 못할 정도로 아픈건 아니지만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경우다. 두번째의 경우 현장 확인을 해보면 외로움과 어떠한 이유로 찾아온 우울한 감정이 신고자가 겪고있는 물리적 아픔에 몰래 들어가 대바늘로 쿡쿡찌르고 있는 모습을 가끔씩 볼 때가 있다. 주변에 진심으로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덜 했을 또는 어쩌면 견딜만 한 그런 아픔들이 그 외로움과 우울이란 감정이 그 분의 아픔을 더 고통스럽고 참을수 없게 만든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어떡해', '너무 아파 혼자서는 도저히 못견디겠어' 등의 감정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국지성 소나기의 먹구름 처럼 아픈 그들의 몸을 파고들어 그의 마음을 지배한다.

새벽에 배가 아프다며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니였다. 출동 중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증상을 물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려다 이내 포기하시고는 그냥 빨리 좀 와달라고 말씀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의 집에 도착한 후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려고 들것으로 구급차에 태웠다. 근데 갑자기 괜찮아지셨다며 병원에 안가도 되냐고 물으셨다. 괜찮긴한데 그래도 한 번 가서 검사해보는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더니. 몇 달전부터 자주 아팠다가 안아팠다가 한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받아 보셨냐고 물어보았다.

"늙은이가 혼자 병원을 가기가 어려워서요."

"음... 자녀분들 한테 이야기 해야죠. 어르신."

"네... 그래요.. 병원에 안가도 될 거같은데 잠깐만 같이 있어줄 수는 있나요?"

할머니는 어렵게 말씀을 꺼내신듯 했다.

"네 어르신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저희가 차를 비우게 되면 관내에 구급차가 없어서요. 출동대기를 해야되거든요."

나 또한 할머니의 어려운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웠지만 조심스럽게 그럴 수 없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요 괜한 말을 했네요."

어르신은 멋쩍은 웃음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르신을 댁으로 다시 모셔다 드리고, 그냥 가려고 하는데

"이거라도 마시고 가요."

하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잠시 구급차로 돌아가던 길을 멈춘 나는 '그래 잠깐인데 뭐'라고 생각하며

"네 어르신 주세요. 안그래도 목말랐는데."

하며 어르신이 계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들어가도 되나요?"

"네 그럼요."

어르신의 방에는 예전 외갓집 방한켠에 걸려있던 것처럼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라고 추정될 만한 사진과 자식내외인거 같은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할아버지의 사진은 검정색 테두리의 액자에 걸려있었고, 그나마 최근 사진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와 어린아이의 사진은 조금은 화려한 액자에 꽂혀 있었다.

이 시간에 할아버님이 댁에 계시지 않은걸로 봐서는 돌아가시거나 병원에 입원해 계신듯했다.

"저 사진은 할아버지 사진인가요?"

"네 우리 영감 사진이에요."

"할아버님이 엄청 미남이셨네요."

"여자들이 많이 따랐어...그럼 머하노 기집질만 잔뜩하고, 사람을 속을 얼마나 터쟜는 지 말도 못해."

"잘생긴 분은 원래 유혹이 많죠 하하. 할머니 마음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라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을 하며 할머니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할머니는 내가 조금 편해지신지 조금씩 말씀을 놓으셨다.

"어르신 배가 자꾸 아프다 안아프다 하는거는 검사 꼭 받아보셔야 해요. 지금 또 괜찮으셔도 또 아플 수도 있으니까요 원인을 알아내야되요. 아셨죠?"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냥 안아프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에이 그러시면 안되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재미있는 것도 많이 하시고 그래야죠."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노. 그러고 싶지도 않고"

"왜요?"

"자식 먼저 보내놓고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잠깐이었지만 긴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할머니의 마음이 아픈 게 당연하다'라고 인정한 듯한 느낌을 줄것 같아 억지로라도 무슨 말을 해야만 할 거 같았다.

그런 조급한 마음속에서 적절한 말을 찾아내기란 참으로 힘든 것이었다.

갑작스런 상황이 찾아 왔을 때 적절한 말을 센스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런 능력이 없었고,

"아.. 아드님이요?"

라고 질문을 했다.

"아들이 먼저 갔어요."

라며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근에요?"

라는 의미없는 질문을 했다. 참으로 내가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하지.

"올초에 그만 보냈어요."

라는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를 만난 출동이 그 해의 몇 월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에게 자식을 보낸 그 이후의 세월의 길고 짧음이 무슨 큰 의미가 있었을까.

"어르신 많이 힘드셨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말은 이 말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을 하고 있다는 말을 어떤방식으로 하든 나 스스로 무례하게 느껴졌고, '그래도 건강하게 지내셔야죠'라고 말씀을 드리려고하니 그 말이 무책임하게 그리고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 줄 수 있을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써 힘드셨을것같다는 감정 정도는 나도 절실히 공감할 수 있으니 그정도의 감정이라도 덜어내 드리고 싶다는 말을 표현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아프시면 119에 다시 신고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왔다.


외로움이란 젊은 시절에는 혼자여도 충분히 상대할 만한 존재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찾아오는 그녀석은 훨씬 덩치를 키운 모습으로 나타나 무자비하게 나의 심장만 공격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외로움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외로움과 우울은 죽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서 계속 맴돈다. 그리고 끝내는 위험한 생각을 품게 한다.

즐거움과 행복은 주변에 숨어있다. 물론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외로움과 우울은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 또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갑자기 찾아올 때 그 상황과 같이 찾아온다. 그들은 스스로 발이 달려있기 때문에 최적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래서 노력이 불필요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서 외로움과 우울이 사라질 수 없는 감정이라면,

견딜만한 힘이 있는 사람 또는 그들이 찾아오더라도 최소한의 희망이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견디기 힘든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기 때문에.